다산(多産) 모임

등록 2012.11.10 20:48수정 2012.11.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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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모임을 통해 알게 된 네 가정의 부부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납니다. 야무진 신앙생활, 똑부러지는 취미활동은 각각 다른 데서 하고 이 모임은 그저 밥이나 먹고 이야기하는 것이 다이기 때문에 마실꾼처럼 부담없이 어슬렁거리고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듯 명분도 목적도 없이 두루뭉술한 만남을 되풀이하던 중 웬걸, 다른 모임에는 없는 우리만의 뚜렷한 특징을 찾았습니다. 다름 아니라 연배가 같은 네 쌍의 부부 밑으로 아이들이 무려 15명이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 하나나 둘, 많아야 셋인 우리 세대에서 네 집이 모여도 보통 16, 17명이 고작이지만 우리 네 가정은 온가족이 모두 23명이나 되고, 게다가 한 집은 애들 할머니까지 모시고 삽니다.

자녀가 다섯인 집이 한 집, 넷인 집이 각각 두 집, 우리집만 둘뿐이라 미리 알았더라면 애초 모임에 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아이를 다섯 둔 집의 부인은 저하고 같은 50살인데 놀랍게도 막내가 다섯 살, 그 바로 위도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우리 부부를 뺀 나머지 세 부부는 자식 자랑이 대단합니다. 하나만 더 낳는 건데, 그랬으면 우리도 다섯이잖아, 우린 아직 안 끝났어, 곧 다섯에 도전할 거야, 그럼 우린 가만 있나? 하나 더 낳아 여섯 만들지. 주거니 받거니 흥부네 부럽잖게 자식농사가 아직도 한창인 양 호기롭습니다.

제 먹을 건 타고 난다는 말을 요즘도 하면 온전한 정신 취급 못 받겠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모임은 자식 많은 순서대로 형편도 넉넉합니다. 사는 게 풍족하니 자식을 원하는 대로 둘 수 있는 건지, 자식이 자꾸 생기니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해서 결과적으로 남보다 잘 살게 된 건지 여튼 세 집 모두 유유자적입니다.

자식많은 사람들 공통으로 하는 말, "자식은 많고 볼 일이야. 내가 한 것 중에 제일 잘한 게 애 여럿 둔 거지." 하는 것까지 세 집이 똑 닮았습니다. 아마도 우리 자랄 때처럼 집안에 애들이 뒹굴뒹굴, 고물고물 저희들끼리 놀고 싸우고, 큰 애들이 동생들 챙기고, 동생들은 큰 애들 보면서 저절로 배우고 무럭무럭 크는 모양입니다.


여럿은커녕 하나, 둘 가지고도 전전긍긍, 키운다는 표현조차 황공할 정도로 '자식을 모시고' 사는 요즘 세상에 '자식 키우는 재미' 운운하는 자체가 생경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집안의 '상전'이니 어미 아비된 도리와 책임으로 따끔하게 야단을 치는 일도,마음 터 놓고 푸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도 쉽진 않으니까요. 부모가 못해 놓고는 공연히 학교 탓이나 하고 막상 학교가 개입하면 이번에는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니 새중간에서 애들 버르장머리만 나빠지고 더 심하면 사회적 통제도 불가능해지는 게 현실이지요.

북한이 못 쳐들어 오는 이유가 남한의 무시무시한 청소년들 때문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더니 집집마다 조막만할 때부터 애들 때문에 생몸살을 앓고 크면 큰대로 휘둘리느라 재미는 고사하고 언제 한번 맘 편할 때가 있는가 싶습니다.

한 둘도 이런데 여럿 자식이면 오죽할까 싶은데 모임에서 들어보면 자식 숫자대로 부모 노릇에 치이고 골병드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우리 '다산 (多産)모임'은 부모도 자녀도 자신들의 역할에 각자 '베테랑' 인 것 같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부모 자식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할까요. 말하자면 부모 자식 간 서로가 서로의 생물환경, 심리환경에 화순하고 위순하게 반응하며, 동물적 본능의 얼개를 보다 본능적으로 감응하고 있다는 느낌같은 것인데, 관계의 유대와 접착력이 크고 더 따뜻하고 자신감이 강하고 외부에 대한 면역력도 셉니다. 한마디로 가정이 매우 건강하고 화목합니다. 유연한 물처럼 부모 자식의 관계에 서로 흠뻑 빠져들어서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 둘 아이에 집착하며 주물러 기어이 터뜨리고 마는 불안하고 시들시들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아이를 많이 낳기를 '강추'합니다. 이를 위해 직접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우리 다산 모임은 더 이상 할 일 없이 밥이나 먹고 개갤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자식 많이 낳기를 권하는 중요한 사람들로 거듭 나야할까 봅니다.
#다산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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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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