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로망, 직거래시대 열리나"

안성 김장거리 직거래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등록 2012.11.18 15:27수정 2012.11.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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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김장시장이 열리는 현장. 어제에 이어 오늘은 둘째 날. 날씨는 겨울날씨. 한쪽 귀퉁이엔 드럼통에 나무 때는 '시장표 드럼통 난로'가 있다. 거기에서 몇 농민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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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배추 농민 직거래 시장인 김장시장인 안성에 열렸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배추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앞에 보이는 생산자 표시 등의 푯말은 농민이 직접 작성한다. 가격도 농민 본인이 직접 결정한다. ⓒ 송상호


그러다가 손님이 오면, 모두 시선 집중. 김장시장은 소비자도 낯설고, 농민도 낯설다. 모두가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농민들은 영 장사 자세가 안 나온다. 물건 앞에 자리를 꿰차고 앉아 당차게 외쳐야 할 텐데. 도리어 누가 손님인지 주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농민들이 언제 장사를 해봤어야지. 묵묵히 농사만 짓고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남성농민보다는 여성농민이 훨씬 장사실력이 낫다. 왜? 그녀들은 평소 장을 보니까. 소비자 마음은 소비자가 잘 안다. 평소 자신의 마음을 역으로 생각해 팔다보니 남성보다 나은 건 당연지사. 한 남성 농민은 장사하는 거 보면서 멋쩍은 '아빠 미소'만 연신 날리고 있다.

한 중년 여성이 남편을 대동하고 김장거리를 사러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한 곳 배추를 먹어보고 하는 말, "이 배추가 고소하네. 아저씨 이걸로 주셔". 이 말이 떨어지자 여러 농민이 달라붙어 싸고 나르고 난리다. 손님보다 주인이 더 많다.

그 여성, 알고 보니 수원에서 왔단다. 아하, 어떻게 수원에서 여기까지 왔을까. 남편의 직장이 안성이라 남편 소개로 왔다네. 안성 사람들도 이 시장 모르는 사람 많은데. 참 재밌는 일이다. 그 여성은 준비해온 승용차 트렁크에 한 짐 실고 수원으로 떠나간다. 수원에서 배추 사려고 그 아침에 온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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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시장 안성농민들과 안성시민들이 핝리에 모여 직거래 김장시장 한마당을 펼치고 있다. 이걸 계기로 앞으로 내년 4월에 봄채소 직거래 시장을 할 계획이라고 안성농민회장 김종석 씨가 밝혔다. ⓒ 송상호


근처 아파트에서 왔다는 한 주부. "우리 동네 할머니가 여기 좋다고 해서 왔다"며 미소 짓는다. 그렇다면 첫 날인 어제 김장거리를 사간 할머니가 벌써 입소문을? 그렇다. 입소문은 느리지만, 최고 확실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던가.


고삼면에서 농사짓는 조현선 농민은 바쁘다. 동료 농민과 수다를 떨다가도 손님이 오면 달려간다. 공통점은 자신의 농산물도 아니라는 것. 마치 자신의 일처럼 물건도 싸주고, 날라주고, 좋은 말로 지원사격도 해주고. 이런 걸 두고 '아름다운 오지랖'이라 해야 되겠지.

죽산면에서 왔다는 박금옥 농민. 그녀도 한참 김장거리를 팔기에 신이 났다. '품명 대파, 생산지 죽산면, 생산자 박금옥, 가격 2000원, 생산자 연락처 010-1234-OOOO'이라고 적힌 푯말이 농산물 앞에 놓여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야무지게 팔고 있다.

미양면 이영이 농민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왜? 장사가 잘되니까.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내 얼굴이고 내 자식이니까 예쁘게 팔았다"고 한다. 그렇군.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이니 물건에 대한 확신이 누구보다 강할 듯. 설명에서부터 확신이 넘치니 소비자가 안 넘어 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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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시장 농민직거래 시장인 김장시장이 열린 곳에 현수막이 내붙었다. 이번엔 11월 15~17일(목금토)와 11월 22일~24일(목금토)에 시행한다. ⓒ 송상호


"어제 하루 종일 밭에서 작업했다. 새벽 2시 반까지 출하준비 했다. 3시간 자고 여기로 달려왔다. 그런데도 장사가 이렇게 재밌는 줄 미처 몰랐다."

이영이 농민은 50평생 장사는 처음이란다. 하지만, 어제도 다 팔고, 오늘도 다 팔고. 심지어 대파를 대량으로 주문까지 받아 놓았단다. 내일도 이 자리에 나와 팔라고 소비자가 당부할 정도라니. '기른 사람과 파는 사람이 동일하다'는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 현장을 전두지휘하며 동분서주하는 이가 있다. 양성면 김종석 농민(안성농민회 회장)이다. 그도 이번 시장에 농산물을 내놓으려고 만발에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인가. 추수 때 즈음해서 고라니가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것. 고라니 때문에 자신의 채소를 팔진 못했지만, '우리 안성 농민들의 채소'는 힘을 모아 팔고 있다.

그와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몇달 동안 농민교육을 했고, 이제야 선을 보인다. 25농가가 참여하기로 했다. 이것은 농가 본인이 가격을 결정하고, 본인이 배달도 하고, 본인이 책임지는 시스템이다"며 설명해준다.

그는 "사실 농사가 어려운 게 아니라 농산물 판매가 더 어렵다. 그동안 농민 개인이 알음알음 직거래를 해왔다. 늘 직거래 시스템이 아쉬웠다. 앞으로 농민 직거래 시장뿐만 아니라 '직판장개설, 꾸러미 사업(가정으로 농산물 배달하는 시스템)진행'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며 계획을 밝혔다. 바야흐로 농민들의 로망인 직거래 시대를 열고 있다.

이어서 그는 "지금의 김장시장은 시범사업이다. 이 시장을 운영해 문제점을 보완한 후 내년엔 본격적으로 운영한다. 내년 4월엔 봄채소 직거래 시장을 열 계획이다. 그 땐 농민들도 회원제로 운영된다. 안성농민 누구에게나 참여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사업의 숙제를 '농민들의 이해 부족, 기존 상인들과의 이해관계 조율, 홍보 부족' 등으로 꼽았다. "이 사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업이 아니라 어쩌면 농민들의 사활이 걸려있다"며 절실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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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사진은 양성면에 사는 김종석 농민(안성 농민회장)이 배추를 들고 찍었다."대농보다 소농이 많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분들이 기동력이 떨어져 참여하기 힘든 점이 마음 아프다"고 그는 밝혔다. ⓒ 송상호


무슨 말일까. 그렇다. 지금은 FTA시대다. 값싼 수입농산물은 자꾸만 밀려오고, 농민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간다. 농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속출하고, 농촌은 텅텅 비어가고. 이때 농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이 해답의 하나로 '직거래'를 붙들고 있다. 단순히 직거래를 해서 좀 더 남긴다는 차원이 아니다. 농민들은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다.  이 처절한 현실과 오늘 김장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순박한 얼굴이 겹친다. 
덧붙이는 글 이 김장시장은 금주 15~17일(목 금 토)과 다음주 22~24일(목 금 토) 아침 6시30분부터 10시까지 안성천변(아양주공아파트 뒤편)에서 이루어진다. 이 김장시장은 안성시청 농정과에서 펼치는 로컬푸드운동의 일환이다. 문의 하려면 안성시청 농정과(678-2520)로 하면 된다.
#직거래 #로컬푸드 #안성시청 #김장시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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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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