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절반 먹은 배추, 사람은 괜찮을까?

원시농법으로 지은 배추와 무로 김장 만들기... "행복합니다"

등록 2012.11.19 14:23수정 2012.11.1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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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 날씨가 영하로 뚝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지난 16일 김장배추를 뽑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오전에는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 배추, 무를 뽑는 데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김장배추라고 해 봐야 텃밭에 심은 100포기 정도의 배추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주 귀한 배추입니다. 배추 포기가 제법 크게 결구가 되어 있습니다. 겉잎은 거의 벌레들이 포식을 하고 속 배추만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절반은 배추 애벌레들이 먹고 절반을 수확해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배추 애벌레가 공존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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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은 배추애벌레들이 먹어치운 배추 ⓒ 최오균


그래도 배추를 뽑는 마음은 즐겁고 행복합니다. 지난 8월 23일 심은 배추를 그동안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워왔는지, 녀석들이 마치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배추를 심기 전에 퇴비만 한 번 뿌려주고 비료도 일체 주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포기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비료·농약 없이 배추 키우기, 그 결과는?

매일 배추 애벌레를 잡아내느라 무진 애를 먹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나무젓가락으로 잡아내다가 나중에는 핀셋으로 잡아서 배추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녀석들을 방생(?)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했지만 배추 절반을 녀석들이 먹어치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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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애벌레 잡아주기(9월 8일 촬영)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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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먹은 배추(9월 8일 촬영) ⓒ 최오균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고 채소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배추 애벌레가 먹지 못하는 채소는 인간도 먹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시중에 나오는 잎이 반질반질하고 온전한 채소는 모두가 농약을 살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유기농 농약을 쓴다고는 하지만 농약을 살포해서 연약한 배추 애벌레가 살지 못하는 생태계는 인간에게도 해를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풀을 손으로 뽑았습니다. 잡초를 뽑아서 밭이랑에 그대로 거름이 되도록 놓았습니다. 사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나 잡초도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이로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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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벌레들이 거의 다 먹고 결구가 된 배추포기 ⓒ 최오균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이다>란 책을 쓴 미국의 식물학자 조셉 코캐너에 따르면, 해롭고 성가신 것으로만 여기는 잡초들이 토양 깊숙한 곳으로부터 미네랄을 끌어다 황폐해진 표토 쪽으로 옮겨다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잡초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영양소들을 농작물 뿌리 쪽으로 끌어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을 '만물의 공존 법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식물들 간의 공존과 유대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살리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먼 동화 속 이야기로만 들리는 소리지요. 그러나 원시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은 제초제도, 비료도, 농기계도 없었으니 잡초와 함께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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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배추를 뽑아내고 난 배추밭 ⓒ 최오균


쇠스랑으로 밭을 일구는 저희 집 텃밭은 거의 원시적인 농사를 짓고 있는 셈입니다. 내 손으로 쇠스랑과 괭이로 이랑을 만들고, 호미로 풀 뽑고, 벌레 잡고.... 그러나 이런 농사는 어찌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방법입니다.

과학이 발전해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기계와 화학비료, 농약을 써서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에 원시시대 농법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먹을 적은 양의 채소는 원시농법으로 지을 수 있겠지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벌레가 살지 못하는 생태계는 인간도 생존 할 수 없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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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서 뽑아낸 무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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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김치를 담을 알타리무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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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알타리무 ⓒ 최오균


배추를 뽑은 뒤 무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무를 부직포로 덮어 두었기 때문에 다행히 얼지는 않았습니다. 모래밭에 심은 무도 비료를 주지 않은 탓인지 작습니다. 총각무를 뽑는데 녀석이 어찌나 귀엽게 보이던지....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무 옆에 당근을 심었는데 당근 뿌리도 그런 대로 밑이 꽤 들어 있군요. 붉은색 당근 뿌리를 뽑아내어 바라보니 군침이 나옵니다. 당근은 분명 우리의 식탁에 맛을 돋구어주는 고마운 채소입니다. 내친김에 파도 뽑았습니다. 배추와 무, 당근, 파까지 뽑으니 김장 준비를 거의 다 한 느낌입니다.

작업이 거의 다 끝날 무렵,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라서인지 빗방울이 무척 차갑게 느껴집니다. 비를 맞으며 배추와 무를 우선 거실로 옮겨놓았습니다. 밖에 두면 얼어 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잎이 푸른 배추와 무를 거실로 옮겨 놓으니 집안이 건강해 보입니다. 금년 텃밭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푸른 채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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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로 옮겨놓은 배추 ⓒ 최오균


내일은 배추 겉을 벗겨내 시래기를 만들고, 속 배추만으로 김장을 담기로 했습니다. 무도 잎을 따내서 시래기를 만들고, 총각무로는 총각김치를 담기로 했습니다. 무는 깍두기를 담기로 했습니다. 거실로 옮겨놓은 배추와 무를 바라보자니 할 일은 태산 같지만 마음은 부자가 된 것 같군요. 내 손으로 땀을 흘려가며 직접 기른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 
#김장배추 #무 #알타리무 #자연농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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