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 '양심의 소리'를 들어주세요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무단침입죄로 기소, 법정 최후 진술합니다

등록 2012.11.28 12:08수정 2012.11.2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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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맨 앞에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것인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요즈음 법원의 모습이 과연 존경스러운지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권력의 횡포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그래도 법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헌법 책에서 "법원은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라는 글귀를 읽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고 판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판사로 임관이 된 후에는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라는 성경 말씀(시편 82장 3절, 4절)을 마음에 새기며 재판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법원을 나오고 보니 제가 판사로 있을 때 과연 정의롭게 재판을 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법원 안에서 보는 세상과 법원 밖의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재판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가 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공감을 얻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저 역시 억울한 사람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재판을 적지 않게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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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공사가 한창인 강정마을 구럼비의 전경(정우철 영화감독 촬영). 제주도엔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해병대 제주부대 개편이 예고되었고, 공군도 남부탐색구조 비행전대 기지 혹은 공군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주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관광의 섬이 아닌 군사요새화 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정우철 감독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석연치 않은 입지 선정, 회유와 기만에 의한 유치결의, 강정주민 의견 무시, 환경영향평가의 총체적인 부실, 절대보전지역의 무단 해제, 항만 설계의 오류 의혹, 부실·불법 공사, 민·군 복합관광미항의 허구성 등 숱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저는 강정주민들이 법원에 절대보전지역변경처분 취소 등 소송을 제기했을 때 법원이 문제투성이인 제주해군기지 사업에 제동을 걸음으로써 권력의 횡포로부터 강정주민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권력의 통제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사명에 충실한 정의로운 재판을 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저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일방적으로 정부와 해군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함으로써 잘못된 권력행사에 면죄부를 줬습니다. 법원이 그렇게 판결을 하자 정부와 해군은 안하무인격으로 법 위에 군림하면서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불법·탈법을 마음껏 자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해군은 구럼비 해안가에서 여성 평화활동가를 폭행했고, 대학생들도 폭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처벌을 받은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송강호 박사가 기도하러 구럼비 해안가로 가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해군의 특수부대(SSU) 대원들에게 폭행과 물고문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고문하는 것은 전쟁 때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강정주민들과 제주지역 시민단체들은 격분하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형사 고발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해야 할 경찰은 해군과 공사업체의 용역으로 전락하여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불법 체포·연행을 일삼았습니다. 저 역시 그 불법 체포·연행의 희생자입니다. 또한 체포·연행의 과정에서 경찰의 심한 폭행으로 평화활동가들은 이빨이 깨지고 턱이 찢어지는 등 심한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평화활동가들이 그 불법성을 울부짖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거나 검찰에 고발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강정마을은 인권의 사각지대로 전락했다는 사실만 절감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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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위해 강정 앞바다에 투하된 아파트 8층 높이인 약 20미터에 무게만 1개당 8800톤이 나가는 케이슨이 태풍 볼라벤과 덴빈에 의해 7개 모두 파손됐다. 이 가운데 2개는 유실됐다. ⓒ 강정마을회 제공


해군과 공사업체는 공사를 하면서 건설기술관리법위반, 환경영향평가 협의사항 위반 등 온갖 불법·탈법을 밥 먹듯이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도지사는 솜방망이 제재만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번 여름 태풍 때 바다에 가설치한 방파제 건설용 케이슨 7개가 모두 파손되었고 그 이유가 부실공사 때문이라는 공사장 인부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상규명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케이슨 제작은 계속 그대로 강행되고 있습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부는 해군기지 사업과 관련하여 2010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650여 명을 체포·연행했습니다. 그 중 22명이 구속되었고, 480여 명이 기소되었습니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2년 한 해 동안 10월까지 390여 명이 체포·연행되었습니다. 최근에는 2013년도 예산확보 차원에서 경찰력을 동원하여 24시간 공사까지 강행하면서 이를 저지하는 강정주민들 및 평화활동가들과 날마다 충돌하여 강정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부가 이처럼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체포·연행, 구속까지 하면서 공사를 강행하는 근거는 2012년 2월 29일 김황식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내린 공사추진결정입니다. 그 결정은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입출항이 가능하다고 한 「크루즈선 입출항 기술검증 결과 및 조치계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는 그 보고서를 토대로 제주해군기지는 민군복합관광미항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공사추진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의 '민군복합형관광미항크루즈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이하, '기술검증위') 회의록 공개와 기술검증위 위원이었던 김길수 교수의 증언에 의해 총리실이 제주해군기지가 실상은 해군기지임에도 민군복합관광미항인 것처럼 꾸며 공사추진이 가능한 쪽으로 기술검증위 회의를 유도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총리실이 국민을 속이고 공사강행의 거짓근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만일 그 보고서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작성되었더라면, 그래서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입출항이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민군복합관광미항은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져 제주해군기지 공사는 진행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수백 명의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체포·연행되고 또 몇몇은 감옥에까지 가는 그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을 속이는 정부의 위와 같은 행태로 인해 엄청난 인권유린이 벌어졌음에도 정부 관계자 중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처럼 정부와 해군의 불법은 모두 용인이 되어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 강정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정의롭지 못한 법원의 판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재판을 받고 있는 이 사건 역시 강정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불법 철거, 불법 체포 등으로 정작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수사조차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저를 비롯한 피고인들은 억울하게 체포당하고 이렇게 재판받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원 밖에 나와 보니 판사가 정의롭게 재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정의롭지 못한 재판은 이 세상을 타락시키는 주범입니다. 그런 재판이 횡행하면 불의한 자들은 활개를 치게 되고 의로운 자들은 핍박을 받게 됩니다. 힘이 곧 법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사람의 영혼까지 병들게 만듭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저는 판사들이 강정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러면 법원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훗날 역사의 법정 앞에 서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법원이 강정의 현실을 계기로 통렬한 반성을 통해 권력의 편에 서는 법원이 아니라 권력의 횡포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법원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는 그런 법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래서 법원이 진정한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 자리매김하여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법원이 그렇게 변하면 우리 사회도 새롭게 바뀔 것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께서 그렇게 재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신용인 기자는 지난 6월 18일 구럼비바위를 무단침입했다는 이유로 기소, 11월 27일 오전 10시 제주지방법원에서 최후진술을 했습니다.

- 이기사는 제주지역 인터넷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군기지 #법원 #정의 #기본권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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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헌법가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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