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정비사에서 농업인으로

고향에서 배 재배하며 과일주스 생산하는 전남 나주 이기선씨

등록 2012.12.05 14:37수정 2012.12.0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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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히 살고 싶었어요. 먹고 살만큼만 농사지으면서 취미생활도 하고요.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게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왔죠."


전남 나주에서 배를 재배하며 배와 오디, 사과 등을 이용한 과채주스와 음료를 만들고 있는 이기선(44·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씨의 얘기다. 그는 항공기 정비사를 그만두고 귀농을 했다.

"농고를 졸업했어요. 군대 제대 후엔 취직을 했죠. 돈을 벌려고요. 대한항공의 항공기 정비팀에서 일을 했는데요. 돈은 벌었죠. 근데 저의 꿈은 날이 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제 꿈은 말씀드렸듯이 농사짓고 사는 것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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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정비사에서 농업인으로 변신한 이기선 씨가 과일주스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이돈삼


이씨는 과감히 직장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고향 나주로 돌아왔다. 1994년의 일이었다. 고향에서 그는 배 재배를 시작했다. 땅은 여기저기서 빌렸다. 일도 열심히 했다. 농사도 잘 지었다.

배를 10년 넘게 재배하며 과수농으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배 가격이 들쭉날쭉했다. 농사를 잘 지어도 좋은 값을 받기가 어려웠다. 시세의 영향이 컸다. 투자에 비해 이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지만 않았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정직한 농사꾼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도시민을 대상으로 주말농장도 운영했다. 배따기 체험행사도 열었다. 서서히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이 늘었다. 바이어를 직접 찾아다니며 홍보도 했다.


그 결과 대도시 유명 백화점에 납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상품으로 팔고 난 나머지가 골치였다. 가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공은 또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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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선 씨가 꾸린 좋은영농조합법인에는 과일주스 생산을 위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다. 법인의 생산공장에서 컵 모양의 과일주스가 세척기를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배즙을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다. 농산물 가공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법인을 구성하고 시설을 갖췄다. 제조허가 등 각종 인·허가도 얻었다. 식약청으로부터 위해요소 중점관리 우수식품(HACCP) 인증도 받았다. 2006년이었다.

이렇게 만든 배즙을 학교 등 단체급식으로 납품했다. 학생들이 입맛에 딱 맞다며 좋아했다. 유기농 야채수프를 개발한 것도 이 때다. 조심스럽게 내놓은 유기농 야채수프까지 인정을 받자 자신감이 생겼다.

이씨는 이날부터 유기농 농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음료 개발에 들어갔다. 오디와 키위 주스를 개발했다. 유자, 사과, 포도 주스도 만들었다. 가공식품이 갈수록 늘었다. 본격적인 유기농산물 가공업에 뛰어 든 것이다. 2008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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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초가을 불어닥친 태풍으로 나주지역의 배가 대부분 떨어져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기선 씨는 이 낙과를 사들여 과일주스로 가공, 농업인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 이돈삼


주변 농업인들도 반겼다. 무엇보다 값이 들쭉날쭉했던 농산물을 제 값 받고 팔 수 있어서다. 이 씨 또한 보람이었다. 특히 올 초가을 태풍으로 떨어진 낙과를 많이 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밤낮없이 뛰었다. 낮에는 마케팅 활동에 분주하고 밤엔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맛을 본 소비자의 반응도 선별하지 않고 전부 공개했다.

"처음부터 소비자들의 음용 후기를 완전 공개했었죠. 홈페이지를 통해서요. 부정적인 의견이 올라오면 어쩌나 걱정도 됐는데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좋은, 윈-윈이 되더라고요. 저는 소비자 의견을 귀담아 들어 제품을 개선시킬 수 있었고요. 소비자들은 더 좋은 제품으로 만족하고요."

이씨가 생산하고 있는 과채주스와 음료는 현재 모두 9개 품목. 컵 모양에 담은 컵주스 형태다. 유기농 현미를 가공한 액상차 형식의 현미차도 있다. 무와 무청, 당근, 표고버섯 등을 함께 가공한 야채수도 내놓았다.

다 유기가공식품 인증을 받은 것들이다. 이씨는 이 제품에 마을이름을 딴 브랜드 '이슬촌'을 붙였다. 이슬촌은 해마다 12월 25일을 전후해 크리스마스축제를 여는 마을이다. 녹색농촌체험마을로도 지정돼 있다. 제품은 모두 학교나 병원, 기업체 등 단체급식으로 나간다. 아직까지 소매는 하지 않고 있다.

"혼자서 생산하고 제품 개발하고. 마케팅까지 다 하려니까 버거웠죠. 힘들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 모든 과정을 제가 알고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평범한 농사꾼으로 여유를 갖고 살기 위해 귀농을 했다는 이 씨였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농도 일구고 있다. 그에게서 농업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사명감이 묻어난다.

"바쁘죠. 하지만 후회 없어요. 농촌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땀 흘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데요.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야죠. 유기 가공식품 개발을 계속 확대하고요. 과채주스와 음료의 대중화에도 앞장서야죠. 생산자도 좋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소비자도 좋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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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선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좋은영농조합법인에서는 배와 사과, 오디 등 과일주스를 생산하고 있다. 법인회원들이 생산된 과일주스를 상자에 담고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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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선 씨가 법인의 과일주스 생산공장에서 출하를 앞둔 제품의 관리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 과일주스는 학교나 기업체, 병원 등의 단체급식용으로 나간다. ⓒ 이돈삼


#과일주스 #이기선 #좋은영농조합법인 #이슬촌 #나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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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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