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출간된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2판)에는 박정희의 일본명이 '오카모토 미노루'로 나와 있다.
도쿄대학 출판부
한편, 이로부터 1년 뒤인 2006년 8월 9일자 <세계일보>는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은 왜 두 개였나' 제하의 기사에서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의 해방 전 일본식 이름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몇몇 재중동포들이 기억하는 '마쯔모도'도 있지만 이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박정희의 또 다른 일본식 이름도 있을 수 있을 개연성을 암시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그간 나온 것을 토대로 했을 뿐 새로운 소스는 제공하지 않았다. 신문은 두 일본식 이름은 시기와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고는 '다카키 마사오'의 경우 언론인 조갑제씨의 저서 <박정희-불만과 불운의 세월>(까치, 1992)에 실린 내용을 인용했다. 조씨 책에는 "군관학교에서 한국인 생도들에게 1주일씩 휴가를 주며 '고향에 가서 창씨개명을 해오라'고 시킨 것이다. 퇴교 등 명시적 협박은 없었으나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동기생들은 말한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는 "이 이름(다카키 마사오)엔 원래 박정희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목(木)은 박(朴)에서, 정(正)은 정희(正熙)에서 따온 것이라서다. 이처럼 강압적 분위기에서 원래 이름의 흔적을 남기며 창씨개명 하는 게 그 시대엔 흔한 일"이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의 '高木'의 '高'는 '고령(高靈) 박씨'에서, '木'은 '박(朴)씨'의 나무 목(木)을 따온 것이다. 또 개명(改名)인 '正雄'의 경우 '正'은 본명 '정희(正熙)'에서, '雄'은 일본식 남자 이름의 어투에서 따온 것이다.
반면 신문은 '오카모토 미노루'를 두고 "우선 조선이름 '박정희'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썼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신문이 '오카모토 미노루'의 근거로 든 것은 앞에서 언급한 문명자씨의 책과 '일본백과사전'을 들고 있는데 이는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을 지칭한 듯하다.
또 기사 말미에서는 김병태(당시 79세) 건국대 명예교수의 말을 빌어 "박정희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관동군 23사단 72연대에 배속됐는데 거기 연대장의 이름이 오카모토였다"며 박정희가 그 연대장의 성을 따서 창씨개명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세계일보> 기사는 문젯점이 많아 보인다. 첫째,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함께 박정희의 또다른 일본식 이름이라고 주장하면서 '몇몇 재중동포들의 기억'을 근거로 든 점이다. '몇몇 재중동포'들은 박정희가 간도특설대 출신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분명 사실이 아니다. 당시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던 송석하(예비역 육군 소장, 작고), 신현준(전 해병대 사령관, 작고) 등은 "박정희를 본 적 없다"고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두 번째, '오카모토 미노루'의 근거로 이미 출간된 문명자씨 책과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을 든 것도 그렇거니와 김병태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도 그렇다. 우선 김 교수의 증언은 기본적인 '팩트'가 사실과 다르다.
박정희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견습사관을 거쳐 배속된 곳은 열하성 흥륭현 소재 만주군 보병 8단(團, 연대급)이었다. 단장은 중국인 당제영(唐際榮)이었으며, 그의 계급은 상교(上校), 우리로 치면 대령이었다(당시 보병 8단에는 박정희를 포함해 이주일, 방원철, 신현준 등 한국인 장교가 4명 있었다. 1997년 필자는 방원철, 신현준 두 사람을 인터뷰하였는데, 그때는 이런 것이 화제가 아니어서 물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카더라' 수준의 주장"... 북한이 퍼뜨린 것이라는 주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