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부러워만 할 건가요?

[서평] 정치부 기자들이 쓴 정치학 개론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등록 2012.12.07 11:43수정 2012.12.0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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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불신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지난 4일, 대선 TV토론의 문이 열렸다. 국민공모로 뽑힌, 첫 번째 질문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정치불신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답변의 첫머리를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해야만 했다.


그만큼, 지금의 한국정치는 볼썽사납다. 특히 정치권의 얽히고설킨 비리가 일상처럼 익숙해졌다. 어느 날, 어떤 미디어를 비춰보더라도, 그 비루함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TV토론에서 "우리는 측근과 친인척 비리에서 떳떳한 정부를 가져본 경험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그 말이 지닌 자연스러움이 서글프다.

국회에서 왕왕 펼쳐졌던 싸움판은 다른 나라에선 조롱거리다. 너무도 간단하게, "그만 좀 싸우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말 바꾸기, 온갖 불법과 편법…. 이쯤 되면 '국민을 향하는 정치'를 기대하는 일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치와 멀어졌다. 그나마 정치와 맞닿을 때는, 국민 스포츠로 매겨진 '정치 씹기'를 즐기는 시간뿐이다. 70%를 웃돈다는 OECD 평균보다 한참 낮은 투표율, 각종 설문조사마다 형편없는 정치권 신뢰도가, 정치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을 잘 대변한다.

그래도 정치를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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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책표지 ⓒ 쌤앤파커스

"요람에서 무덤까지."


2차 대전 이후, 영국 노동당이 내세웠던 유명한 구호다. 삶의 첫걸음에서 맺음까지, 사회보장제도로 국민을 돌보겠다는 이상을 표현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정책을 정치가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즉 이 구호는 삶의 전반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치가 볼썽사납다고 무관심과 냉소만을 지닌다면, 돌아오는 것은 팍팍해진 우리의 삶일 뿐이다.

분노와 한탄만으로는 성 안의 사람들을 성 밖으로 불러낼 수 없다. 우리가 성 가까이로 다가가 그들을 향해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달라고 더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줄임) 그러므로 이제 당신에게 정치를 권한다.

전세 가격이 올라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한숨만 내쉰 당신이라면, 회사를 퇴직할 즈음엔 국민연금이 적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소식에 불안한 당신이라면, 어린이집 파업으로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당신이라면, 지금부터 정치하라. -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프롤로그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김경진·김외현·박국희·윤완준·임지선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은 정치부 기자들이 쓴 '정치학 개론'이다. 지은이들이 직접 취재했던 정치현장의 모습과 우리가 꼭 알아야할 정치지식을 담아냈다. 책은 진보와 보수의 벽을 넘어서서,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의 젊은 기자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을 25개의 꼭지로 엮었다.

매 꼭지마다, 흔히 접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정치용어·이슈들의 해설도 덧붙였다.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중립적인 관점에서 한국정치의 민낯을 마주하는 기회를 얻는다. 지은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더 옳은 선택을 위해서, 유권자가 정치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지 선거의 굴레를 벗어나라

이미지 선거가 지나치면 뒷전으로 밀리는 건 정책 비전이다. 2012년 대선 경선 때 민주통합당의 한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의원은 "정책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이미지로 승부가 나는 것 아니냐"며 속내를 털어놨다. 또 다른 한 캠프의 의원은 이런 말도 했다. "정책을 보고 대통령을 뽑지 않죠. 정책 내세워도 아는 국민이 1%나 되겠어요? 선거에서 정책이 이슈가 되는 건 많아야 두어 개죠." -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54쪽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현재의 대선구도를 '극장정치'라고 평한다. 이미지 선거에만 몰두해있는 각 후보들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물론 후보자가 지닌 도덕성, 인간적 품격은 유권자의 선택을 가르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미지에만 몰두하는 나머지, 공약에 대한 검증이나 관심은 상대적으로 멀어졌다.

유권자에게는 선거직전 후보자의 정보, 공약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선거공보물이다. 하지만 선거철마다 그냥 버려지는 선거공보물이 지적될 만큼, 우리의 인식은 제자리를 걷고 있다. 지난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SNS를 비롯하여, 미디어의 다양화로 후보자의 공약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은 맞다. 하지만 현실이 정말 그럴까?

최근, 한 언론사가 대선후보 공약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를 내놓았다. 설문 대상자의 절반 정도만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을 맞혔다. 이는 후보자는 물론이거니와 공약 검증에 힘써야 할 언론조차 이미지에 매몰된 결과물일 것이다.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같은 커다란 이슈에 집중된 선거구도도 원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유권자들 스스로가 공약에 관심을 가지고, 이미지 선거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유권자가 정치의 역할을 고민할 때 정치쇄신은 가능하다

국회의원들은 하소연한다. "이렇게 지역에서 술 마시고 바닥을 기지 않으면 다음번에 당선되기 어렵다. 유권자들이 안 뽑아준다." 실제 18대 때 여의도 국회에서는 안 보이고 지역구에서만 살았던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19대 국회에서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누굴 탓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160쪽

현재 대선구도의 최대쟁점은 두 말할 것 없이, 정치쇄신이다. 글의 첫머리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민의 정치불신은 한계를 넘어섰다.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정수 축소, 비례대표 비율 확대, 특권 타파,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 정치쇄신안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쇄신안의 핵심은 정치권을 '사적이익'이 아니라 '공적이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자는 것이다. 물론 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국민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제도는 무의미하다는 의미다. "'어느 국회의원이 놓은 다리', '어느 국회의원이 지은 주민 체육관' 등등 이런 눈에 보이는 '건물'이 있어야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현실"은 우리의 변화가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국회의원이 지역구만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 없듯, 정치의 역할은 특정 계층·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 개선"을 정치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정치권의 부정과 특권을 비판하며, 제도적 혁신을 주장하는 일은 정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도 정치의 역할을 다시금 고민해야 한다. 그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지역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지역구 의원을 칭찬하는 문화는 어떨까.

대선이 코앞에... 정치를 알아야, 정치가 우리를 향한다

우리가 건넨 얘기가, 정치를 알고 싶어도 무엇부터 알아야 할지 몰라 포기했던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길잡이가 됐다면, 그를 통해 정치와 우리의 삶이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면 우리의 작은 소임은 다한 것이다. 이 작은 시작이 정치를 바꾸고 우리 삶을 바꿀지 모른다. -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에필로그

선거보도를 들여다보면, 공허할 때가 많다. 들끓는 고담준론과 논쟁이 우리 삶과는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거리감에 주눅 들거나 냉소로만 일관하면, 결코 정치는 우리를 향하지 않을 것이다.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은 단순히 정치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독자들에게 정치를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주장한다. 책제목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유권자라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서 정치와의 거리감을 좁혀도 좋겠다.

아직 대학생인 나는 '반값등록금'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한 번도 정책이 실현되기 위한 과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책을 통해서, 반값등록금 법안이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반값등록금은 고등교육법 개정이나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신설로 실현될 수 있다고 한다.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자신의 삶과 직면한 정책·법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정치를 논하는 것이 온당할까. 하물며 그것이 정치권에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리 만무하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의 말이다. 한국정치가 볼썽사나운 것은, 바꾸어 말하면 국민의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삶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정치를 공부하고 그에 걸맞은 인식을 지닐 때, 정치는 우리를 향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그것도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정치를 공부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김경진·김외현·박국희·윤완준·임지선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2012년 11월, 1만6000원.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김경진 외 지음,
쌤앤파커스, 2012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정치불신 #정치쇄신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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