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홍수시대, 이게 길잡이가 될 겁니다

[서평] 아이들의 상상력·창의력을 열어주는 '좋은 엄마' 프로젝트 <책 쓰는 엄마>

등록 2013.01.02 17:00수정 2013.01.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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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엄마> 겉표지 ⓒ 출판이안

최근 들어 '부모교육'을 찾는 학부모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요구에 맞게 인성교육에 바탕이 되는 인문학 강의와 도서 그리고 부모교육 프로그램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EBS에서 제작한 다큐프라임 <엄마가 달라졌어요>는 많은 엄마들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까지 만들어졌다. 이 세상의 엄마라면 누구나 꿈꾸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이러한 도서와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고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시도가 참 좋아 보인다.

다만 이러한 좋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은 엄마들이 가정으로 돌아와 막상 아이들을 대할 때 느끼는 2%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EBS 다큐프라임 <엄마가 달라졌어요>는 "아이들에게 화내지 마세요. 부모가 내는 화가 아이들에게 굉장한 트라우마를 남깁니다"라고 엄마들에게 가르친다. 언제까지? 평생!


딱 여기까지다. 책과 강의가 엄마에게 전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겠는데 이걸 어떻게 내 상황에 맞게 실천할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마음과는 달리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엄마들에게 '부모교육'에서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실행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실천하는 엄마들의 이야기 <책 쓰는 엄마>는 그 부족한 2%를 채워줄 듯하다. 엄마가 먼저 책을 읽고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현실에 활용하는 지혜를 찾아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이끄는 선순환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는 노력과 실천이 읽혀진다.

앨리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주인공 아이는 낯설고 신비로운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굴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두려움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 책을 읽은 엄마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 아이라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대부분은 호기심 보다는 무서움에 기겁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앨리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니까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그런데 책이나 강의에서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를 위해서는 도전 정신이 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현실과 교육의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많은 아이들은 미지의 세계를 만났을 때 두려운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때 부모의 대응 방법에 따라 아이는 두려움에 머무르기도 하고 호기심을 갖고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기도 한다. 책에 나오는 사례 한 토막을 보자


"엄마, 203동 뒤에 고구마 캐고 있어요. 저 친구들이랑 가서 고구마 이삭 주워 올게요!"
"안 돼, 신발에 흙 다 묻히고 옷도 엉망이 될 테고 밭에 가는 길도 울퉁불퉁 위험하고…."
"작년에 엄마랑 같이 가 봐서 저도 알아요.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신발도 제가 닦을게요. 큰 봉투 두 개만 담고 금방 올게요, 제발요, 네?"
"큰 봉투 두 개? 거길 가득 채우면 얼마나 무거운데? 그럼 엄마랑 같이 가자."
"엄마도 참, 친구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구요. 제가 많이 많~이 캐가지고 올게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문득 내 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앨리스야, 앨리스야, 이번엔 무슨 동굴이야? 이만큼 컸다고 또 뭘 보여주고 싶은 거야?' 나도 모르게 내면의 소리를 듣고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커다란 장바구니 두 개를 내줬다. 보내놓고 마음 편할 리 없었지만, 솔직히 고구마 이삭줍기가 요령이 있어야 하는데 한 봉투나 담아 오려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40분쯤 지났을까? 벨이 울렸다. 문을 열고 보니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고구마 이삭이 흘러넘치도록 꽉 들어찬 가방을 양 어깨에 둘러 멘 큰 아이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석기시대에 도끼 자루 하나 없이 사냥에 성공한 용맹한 남성처럼 의기양양했다.

순간 나도 어떤 동굴 앞에 선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엄마와 아들이 아닌 엄마인 '여성'과 사춘기 아들인 '남성'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겪어보지 못하고 지나온, 머리로는 알더라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아이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아들에게서 변성기와 같이 눈에 띄는 신체적인 변화를 발견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이미 어떤 변화의 성장곡선을 그려오고 있었음을 보았다.    

아침에 티격태격 힘겨루기를 하고, 점심에 땀 뻘뻘 흘리며 축구로 뒹굴고, 저녁에 개구쟁이 모습 그대로 어깨동무하는 또래의 남자아이들... 진작에 들어가 봐야 했던 '남자'아이의 세상에 나도 앨리스처럼 폴짝 뛰어들었다.

1년 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이며 '나에게 대들었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제일 먼저 다가왔다. 그건 어쩌면 '저는 당신과 달라요!'가 아니었을까? "학교 다녀왔습니다."와 동시에 가방을 내려놓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친구들과 다시 우루루 몰려가는 횟수가 잦아진 일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무리 사춘기라도 그렇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이해가 안 됐던 것이 아니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로 커가고 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때 그 '남자'(아이)... 어쩌면 나보다 더 답답했겠지?

동굴 속에서 낯설었던 시간들을 맞추다보니 퍼즐조각처럼 이가 딱딱 맞는다. 멈추었던 톱니바퀴가 다시 맞물려 돌아가는지 째깍소리에 발걸음도 맞추어본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소설이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코앞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는 살짝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덧 남자로 어른 세상에 들어선(? 내 곁에 선) 아들을 환영하고 축하해주고 응원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어머나, 어머나!"를 연발하며 묵직한 가방을 받아드는데 이 '남자'아이, 전쟁터를 다녀온 무사처럼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엄마, (헉헉) 있잖아요..."

- <책 쓰는 엄마> 182~183쪽 일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일상에서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실전 상황이다. 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떨어진 앨리스의 마음을 떠올리며 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엄마들이 두려움을 참고 내 아이가 신나고 즐겁게 낯선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혜를 실천하려는 노력과 고민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책 쓰는 엄마>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여덟 명의 엄마들이 책을 읽고 실천하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들 스스로 인생의 블루오션을 찾는 독서법, 창의적인 독서 방법 등을 실전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이야기가 있다. 쭉쭉 뻗고 잘생긴 나무는 가장 먼저 잘려 세상으로 흘러들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폼도 나지 않아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못생긴 나무가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킨다는 이야기다. <책 쓰는 엄마>는 사람마다 각자 생긴 모습이 다른 만큼 강점과 재능이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깊이 뿌리 내려 산을 지켜내는 든든한 동량으로 자라나도록 이끄는지 그 실마리를 던져주는 지혜가 담긴 책이다.
덧붙이는 글 <책 쓰는 엄마> (서희북클럽 씀 | 출판이안 | 2012.12. | 1만5000원)

책 쓰는 엄마 - 삶 속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실천하는 엄마들의 이야기

서희북클럽 지음,
출판이안, 2012


#독서 #창의력 #비폭력대화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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