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과 국회의원 연금법 통과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등록 2013.01.05 10:50수정 2013.01.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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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레미제라블>이란 영화를 추천받았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는 추천인의 이야기였다. 설득 후 예매를 서둘러 영화를 보고 엔딩에서 힘껏 박수를 쳤다. 그리고 영화 속 대한민국을 봤다.

4일 국회의원에게 연금이 지급될 수 있는 예산안이 무사히 통과됐다. 현 국회의원 중 대다수가 예산안에 찬성했다. 273명 가운데 202명이 찬성 표를 던졌다. '다문화'를 외치던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부터 '젊은층이 탈 정치로 한국미래를 걱정한다'며 트위터에 글을 올린 민주통합당 추미애 의원까지 국회의원 선거 때 늘상 말하던 '특권없는 국회', '국민을 위한 정치'는 어디로 가고 집단의 이익을 위한 공동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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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탐욕을 쫓던 대표적 인물 테나르디에(사챠 바론 코엔)의 모습 ⓒ Universal


결과를 보니 영화 속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숙박업소를 차려놓고 손님의 모자부터 반지까지 모든 것을 털면서 끝까지 탐욕을 쫓던 테나르디르와 그 부인의 모습이 비춰졌다. <레미제라블> 속 본인의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한 장발장이나 목숨을 걸고 혁명에 앞장서는 마리우스의 모습은 없었다. 평론가나 지식인들이 사명감이나 혁명을 외치던 영화 속 모습을 우리나라에서 보았다는 말들은 대체 어떤 이나 집단을 빗대어 한 말인가?를 되묻고 싶었다. 정확히 말해 2013년 현재 한국의 정치판에는 자신들의 탐욕 채우기에 급급한 테나르디르와 같은 사람들만 보일 뿐이다.

특권은 없다? 하지만 '있다'

정치인들이 매번 언론에서 말하는 래퍼토리는 식상할 만큼 똑같다. '특권을 내려놓겠다',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겠다' 등의 멘트는 이제 이별을 노래하는 가사보다 더욱 친숙하다. 허나 행동은 정 반대이다. 국회의원의 세비 삭감, 정수 축소, 겸직 금지 등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연금관련 예산안만 일사천리 통과됐다. 대선 전 연금법 개선을 주장했던 새누리당과 폐지를 주장했던 민주통합당은 단일팀처럼 예산안 통과를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수 많은 특권은 계속해 논란이 됐다. 이번 통과된 예산안도 그 중 하나다. 국회의원 연금법은 정확히 말하면 국가원로 단체인 대한민국 헌정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다. 헌정회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전직 국회의원들이 모인 단체로 소속된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들은 법안의 내용대로 월 120만 원씩 국가로 부터 지원을 받게 된다. 2013년도 연금 예산안은 128억2600만 원으로 책정됐으며 표결을 통해 재빨리 통과시킨 것이다.

이를 본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지적되는 연금법안의 모순은 크게 세 가지다. 첫번째, 국회의원들은 재직기간 중 연금 명목으로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일반 국민 기준으로 연금 120만 원을 받기 위해서는 30만 원씩 약 30년을 내야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특혜다. 두번째, 재산소득 상관없이 연금은 지급된다. 지난 4.11 총선에서 2조194억을 신고했던 정몽준 의원도 65세 이상 헌정회 소속이 되면 똑같이 120만 원을 받게 된다. 세번째, 재직기간의 기준이 없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하루만 일해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


타 연금과의 형평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6.25 참전용사 연금이 월 15만 원에 비해 국회의원 연금은 8배나 높은 수치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변명이라고 내놓은 것이 예산안은 통과 시켰으나 해당 법안에 대해서는 폐지 및 개선이 되도록 당에서 협의 중이라는 소리다. 예산안은 찬성표를 던지고 폐지를 주장하는 말들은 영화 속 테나르디르 만큼이나 뻔뻔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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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사회 속 혁명을 꿈꾸던 청년 마리우스(좌)와 앙졸라(우) ⓒ Universal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들의 큰 실망

관객들은 영화 속 앙졸라가 입던 붉은 옷과 함께 혁명을 위해 흔들었던 붉은 깃발, 희생을 통해 흘린 붉은 피를 연속해서 보며 탄식을 쏟아낸다. 긴장감 속에서 큰 의미를 내포하는 붉은색은 박근혜 당선자와 새누리당을 상징한 붉은색과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내심 관객들은 앙졸라가 병사들의 총에 맞아 죽는 순간 비치던 붉은 깃발의 모습을 보고 기존 정치에 변화주겠다며 붉은색을 강조했던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이번 연금법 통과로 한 순간 무너졌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던 박 당선인의 신념이 낳은 첫번째 결과물이 연금법이었다는 것에 지지했던 국민 다수가 실망했다. 자칭 진보라는 이름을 내걸고 국민의 편에 서겠다던 민주통합당도 박기춘 원내대표부터 법안에 찬성했다. 진보정의당은 투표권을 가진 7인 전원이 예산안에 반대했지만 영향을 끼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국민들은 문은 언제 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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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활짝 문을 열 그날은 언제일까? ⓒ Universal


혁명을 위해 앙졸라와 마리우스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바리케이트를 쌓고 시민들의 참여를 기다리지만 그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도와주지 않는다. 하지만 청년들의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당장이 아닌 훗날 그들의 행동이 씨앗이 되어 변화를 이룰 것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가 아닌 한국의 70~80년대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거리에 나섰던 수 많은 젊은이들. 그들의 희생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반면 요즘은 정치적인 관심은 높아졌으나 힘을 모아 권력자들의 모순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시민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정치인 중 상당수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신념을 갖기보다 색깔론에 빠져있거나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국민을 속이려는 사기꾼들이다.

우리나라만큼 특정 후보나 정당에 문을 활짝 열어줬던 국민들도 드물다. 하지만 그동안 문을 열었다가 속고 또 속아 이제 지칠대로 지친 국민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의식의 변화와 성장에 큰 밑바탕이 될 기회이다. 이번 연금법 통과는 기존 정치와는 다른 국민을 위한 희생이 우선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해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갈망이 계속되면 기존의 정치적 사고에서 깨어난 국민들이 늘어나고 지역색에 의한 특정 정당의 지지나 이름값으로 뽑혔던 특정 후보들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깨어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박근혜 당선인이 얼마나 이해하고 5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박 당선인이 말했던 것처럼 본인의 희생을 내걸고 국민 편에 서서 오랫동안 지속되던 정치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국민들도 문을 활짝 열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감이 막 시작되려면 순간 이번 연금법의 빠른 처리는 아쉬운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견마지로의 자세로 일할 수 있는 레마제라블 속 마리우스와 앙졸라 같은 이들이 계속해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혁명보다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레미제라블 #국회의원연금 #국회의원연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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丈夫出家生不還 -梅軒 尹奉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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