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가 안되는 첫째 원인은 '승진제도'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41] 서울형혁신학교 2년의 깨달음②

등록 2013.01.13 18:03수정 2013.01.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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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2년째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는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서울형혁신학교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장학사 장사'는 현 '승진제도'가 낳은 것

최근 주로 불법 돈거래를 할 때 조폭들이 주로하는 대포폰까지 사용해서 돈을 주고 장학사 시험 문제를 빼낸 교사와 장학사가 적발이 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술자리에서 여장학사가 남장학사를 하이힐로 내리친 사건을 계기로 장학사를 사고 판 일이 발각이 돼서 관련된 장학사와 교사들이 줄줄이 파면당하고 징계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장학사 장사'입니다. 

31년차 교사인 제가 그동안 경험한 것으로 보면, 이런 일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사건도 전문 사기범 뺨칠 정도로 수법이 치밀해서 범죄증거를 찾기 힘들었다하니, 이번에 걸린 사람들은 '실수로, 재수없이 걸렸을 뿐'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느냐고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은 몇몇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 이전에 학교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승진제도'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일반 교사가 부장교사를 거쳐 장학사, 연구사, 교감, 교장이 되는 것을 '승진(昇進)'이라고 합니다. 왜 교사들이 '승진'을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승진하면 먼저 수업을 하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 승진을 꿈꾸는 교사들 중에 나이가 들면 수업하기 힘들어서 승진하려 한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승진하게 되면 일반교사보다 직급 수당이나 그 밖에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따는데 유리하고, 성과금에서 일반교사보다 돈을 더 많이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승진')는 우월감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승진제도'에서는 알게 모르게 수업을 하는 교사를 외려 낮게 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이 증거는 학교 사회에서 '교육전문직'이라는 말을 일반교사가 아닌 장학사와 교육연구사를 말할 때 쓰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생각은 직책을 '권력'으로 착각하게 되고, 결국 자기 생각으로 좌지우지하려는 태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이상하게 장학사와 연구사, 교감과 교장이 되면 사람이 180도 바뀐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기만 해서는 승진할 수 없습니다

학교 사회에서 승진은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학교에서 승진은 수업을 잘 하는 교사가 되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승진을 하려면 아이들만 열심히 가르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업만 열심히 하면 외려 승진점수를 딸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승진'한 친구들의 솔직한 얘기를 들어보면 승진점수 따기 위한 각종 보고서와 업무처리 하느라, 아이들 수업 참 많이 빼먹고 소홀히 했음을 고백합니다.

승진을 하려면 일찌감치 승진에 필요한 점수관리를 해서 필요한 점수를 확보해야 합니다. 또 점수 관리만 필요한 게 아니고, 인맥관리도 필요합니다. 학교 사회는 뻔해서 학교를 옮기면 '꼬리표'라는 그 사람의 평가가 달려갑니다. 한번이라도 교감이나 교장한테 대들었다간 승진은 포기해야합니다. 먼저 관리자한테 잘 보이고 충성해야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부장이라는 직책입니다. 부장도 아무 부장이나 되면 안되고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이 되어야 승진점수 따기가 쉽고 빠릅니다.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은 학교에 한 명씩밖에 없어서 교무와 연구부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30대부터 줄을 서 있을 정도입니다.

대부분 학교에서 교무와 연구부장은 승진에 뜻을 둔 교사로 관리자가 임명합니다. 초빙교사제를 이용해서 다른 학교에서 초빙해 오기도 하는데, 교무와 연구부장 직책을 맡는 것에서 밀리면 승진을 할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부장을 정하고, 학년말에 근무평정 점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전해지는 여기서는 차마 할 수 없는 기가막힌 얘기들이 많습니다.   

결국 학교교육의 문제는 '승진제도'의 문제입니다

현재 학교가 비민주적인 것이고, 비교육적인 활동이 많고, 비리 투성이가 된 것의 중심에 승진제도가 있습니다. 현행 승진제도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학교와 교육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현행 학교사회의 승진제도는 관리자한테 찍 소리하나 못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승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관리자의 횡포가 심합니다. 승진을 앞둔 교사는 관리자가 원하는 학교운영에 적극 찬성해서 일반교사들을 설득하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잔심부름에다가 집안 대소사까지 빠짐없이 참여해야하고, 관리자가 저지르는 비리도 앞장서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교구선정위원회 프로그램업체 선정과정에서 교장이 원하는, 누가봐도 부실한 업체를 교감과 행정실장과 부장들이 표를 몰아주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교장이 원하지 않는 교구를 선정했다고 부장에게 교구선정협의록을 다시 작성해서 오도록 요구한 일도 봤습니다. 그 방법이 옳지 않은 것은 알지만, 승진을 앞에 둔 부장들은 관리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교무부장은 교장이 요구하는 업체가 선정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자, 그 뒤로 바로 이유없이 교무부장 자리에서 잘린 일도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두 해만 더 교무부장을 하면 승진을 위한 점수를 채울 수 있는데, 이 일로 몇 해를 더 고생하거나 승진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정과정에서 교장이 원하는 쪽을 도와줘야하는지 무척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가봐도 차이가 많이 나는 쪽 형편없는 교구를 선정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일 때문에 앞으로 승진을 못하게 되더라도 마음은 편하다고 했습니다.

현재의 승진제도가 학교와 교육의 문제에 중심이 된 것은, 승진하는 과정이 오직 윗사람한테 잘 보여야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 않고 남보다 점수를 더 많이 따야하는 치열한 경쟁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승진과정에서 치욕적이고 힘든 과정을 겪기 때문에, 승진을 하고 나면 오직 권력을 휘두르려는 일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싶습니다.

가끔 승진라인에 선 친한 교사가 제게, 승진해보려고 하니 돈은 돈대로 들고, 몸도 힘들고, 치사하고 더러운 꼴 봐 넘겨야 해서 못살겠다고, 그렇다고 그만두려니 지금까지 한 고생이 너무나 억울하고 아까워서 그만둘 수도 없다고 눈물로 호소해 오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승진라인에 들어선 순간부터 개목걸이를 찼다고 말합니다. 교육적 소신을 버려야하고, 반대는 더욱 해서는 안되는 충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학교의 승진제도입니다.

학교에서 가장 훌륭한 교장은 '없는 것!'

관리자의 역할이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선배교사로서 교육활동에서 힘들고 어려운 후배교사를 다독거리고 이끌어주고, 관리자로서 교육활동을 원만하게 잘 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해 주는 일이 아닐까요? 학교 운영 전반적인 것을 통합적으로 파악해서 학교운영 어느 곳 하나 빈 곳 없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하고, 학교에 문제가 생기거나 의견이 다르면 서로 조정하고 조율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나 현재의 승진제도에서는 이런 역할을 배우지 못하고 승진을 합니다. 조정과 조율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 많습니다. 교사들이 교육활동을 잘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닌, 오히려 못하게 막거나 방해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교사들이 가장 훌륭한 교장을 '없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현행 승진제도에서 승진한 교장들 대부분은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못하고 품지 못합니다. 오직 자신의 의견에 따르길 바라고, 다른 의견이 있는 교사를 부정적인 교사라고 낙인을 찍기 바쁩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수업을 열심히 하는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하지 않고, 관리자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자신한테 충성하고 자신한테 유리하게 업무를 잘 처리하는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늘 칭찬하고 다닙니다.

교장이 되면 저절로 우러러보고 존경할 줄로 알고 있는 교장들이 많습니다. 존경은 '자리'가 아닌 제 역할을 제대로 잘 해냈을 때 저절로 우러나와서 되는 것을 모르는 관리자들이 아직도 참 많습니다. 이런 관리자들 역시 관리자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 관리자의 제 역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관리자가 되는 현행 승진제도의 피해자들입니다. 피해자는 결국 가해자가 되어서 오히려 교육이 잘못가게 하는데 앞장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지요.

그동안에도 느껴왔지만, 서울형혁신학교를 2년동안 운영하면서 더욱 현행 승진제도가 학교사회에 남아있는 한, 학교와 교육 혁신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용린 신임 서울시교육감이 주장하는 '행복교육'도 '꿈과 끼를 살리는 진로교육'을 많이 실시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아이들의 '꿈과 끼를 죽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닌 승진제도부터 개선하면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 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서울형혁신학교 2년동안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 관련기사 : 교장 선생님, 혼자 넓은 곳에 계시지 마세요
덧붙이는 글 현행 승진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으니, 우선 교장자격증이 있는 교장을 중심으로 한 공모교장제도와 교장자격증이 없는 내부형공모제도를 100% 확대하기만해도 현행 승진제도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문제는 많이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교사회를 중심으로 학교운영을 하면서 교사들이 선출한 대표교사를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이 없는 학교, 선출보직제 학교도 다양하게 운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형혁신학교 #교사승진제도 #행복한 학교 #행복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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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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