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지지하는 서민들, 이해 못할 거 없다

[5년 뒤 진보진영 집권을 위해 할 일④ - 마지막회]

등록 2013.01.16 16:18수정 2013.01.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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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진영에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사회에 세대 투표를 처음으로 만들면서 진보진영을 미래세력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 이전엔 지역주의가 선거를 좌우했기에 영남에 기반한 보수정당이 연승했고 야권은 DJP 지역연대로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뤘다.

진보진영은 세대투표가 나타났던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박원순 재보궐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세대투표가 없었던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선 패했다. 2012년 총대선은 세대투표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특이한 선거이다. 유권자의 고령화를 고려하지 못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세대투표가 나타나면서 오히려 패하게 된 것이다.

복지의 가장 큰 수혜계층인 노령층과 서민들은 왜 새누리당을 지지할까.

한국 사회에 계층투표가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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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선거 날인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언주중학교에 마련된 삼성2동 제3투표소에서 유권자가 기표를 마친뒤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탓 그만...진보 소통해야 이긴다"에서 진보정치인, 지식인들이 이미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를 보며 가정했던 계층투표가 우리 사회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도 나오듯이 경제가 어려울수록 진보적 사상은 중산층 대학생들에게나 통하는 사치품이다. 기층민들은 혁명군에게 동참하지도 문을 열어 그들을 보호해주지도 않았다.

이미 복지국가가 된 나라에서는 계층투표가 나타나는데 왜 우리 사회엔 없는 것일까. 서민의 계층투표는 노동조합을 통해 의식화되거나 복지의 혜택을 직접 경험해보고 그것이 더 좋은 대안이라는 걸 깨달아야 나타난다.

이번 대선 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자가 문재인 후보를 48.1% 박근혜 후보를 43.1% 지지한 것으로 나온다. 지난 대선까지 노동자 일부는 좌파정당을 다수는 보수정당을 지지했었다. 오랜 노조활동과 야권연대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보수정당을 더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노조활동을 통한 의식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조가입률은 10%로 OECD국가 중 최저에 속한다.


서구유럽에서도 일부 중산층이 노동자보다 문화적으로 더 진보적이며 복지정책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자 중에는 월급을 화이트칼라보다 더 많이 받는 사람도 많지만 화이트칼라보다 보수적인 편이다. 농림어업민과 저소득층, 주부의 보수성도 일관된 발견이다. 왜 그럴까.

사람을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에 대한 이해 필요

일단 사람은 보수로 태어난다는 명제가 정확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나온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태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청소년기의 경제적 조건과 교육이다.

1) 청소년기에 경제적 궁핍과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면 자아실현 욕구가 발현되면서 주권의식이 생긴다. 어렵게 자라 자수성가한 사람이 보수적인 반면, 어려서 풍요를 만끽했던 중산층 자제가 진보적인 이유다. 현재의 경제적 조건보다 청소년기의 경제적 조건이 사람의 진보성을 결정하기에 월급을 더 많이 받는 노동자가 화이트칼라보다 보수적일 수 있다.

2) 전 세계적으로 사람을 진보적으로 만드는 공통된 변수는 교육이다. 대학생이 모든 운동의 전위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교육을 받을 정도이면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교육과 계층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서구에서 구체제를 무너뜨린 시민혁명은 모두 중산층이 주도했다. 68혁명의 핵심도 중산층 자제들이었고, 한국의 4·19, 5·18, 6·10 민주화항쟁 또한 모두 대학생과 넥타이부대로 표현되는 중산층이 주역이다. 먹고 살만 해야 권리의식이 생기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연대할 사회적 자본이 생기기 때문이다.

3) 대공황이나 전쟁과 같은 충격적인 정치적 사건도 사람의 의식화에 영향을 미친다. 평범한 세법 변호사였던 노무현이 문재인을 만나면서 인권변호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 한 예이다. 오랜 탄압과 민권운동을 경험하면서 흑인이 백인에 비해 진보적으로 변하는 것, 5·18민주화항쟁을 경험한 호남민의 진보성 등은 의식화로 설명된다. 직장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여성이 주부보다 진보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4) 성인을 진보적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복지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엔 저소득층과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의 지지자였던 중하층(월 가구소득 150만 원~250만 원) 유권자가 참여정부 5년간 진보화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계층적 지지가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의 필요조건이 계층투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보정치인, 지식인, 언론인이 평생 하지 못한 일을 노무현이 5년 만에 해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지지도가 낮았던 이유는 세 집단으로부터 지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고 비난한 구좌파세력,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영남에 대한 구애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일부 호남유권자, 새정치하라고 뽑아줬더니 세금 올리고 복지에 투입하자 등을 돌린 중상층이 그들이다.

이 중 중상층은 노 대통령 서거 이후 다시 노무현 지지자로 돌아왔지만 지난 지방선거의 시도지사 선거와 지난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을 지지했고 광역의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에 몰표를 던진 스윙보터가 되었다. 구좌파세력은 아직도 참여정부 실패론을 부여잡고 민주당을 진보당만큼 좌클릭시킨 장본인이다. 지난 총대선이 구좌파담론으로 치러지자 중상층이 이익투표를 함으로써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다.

구좌파 연대, 중상층 이익투표로 집권 어려워

이들 세 집단은 민주화에는 한 목소리이지만 경제적 쟁점에서는 분열한다. 향후 민주당이 우클릭하든 좌클릭하든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 우클릭하면 구좌파가 등을 돌리고 좌클릭하면 중상층이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엔 아직도 구체제의 몰상식과 몰양심이 판을 치고 있다. 시민혁명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이른(혹은 뒤늦은) 구좌파담론의 득세로 중상층이 진보연대에서 이탈하면서 시민혁명도 미완으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좀 더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정권교체가 실패하면서 이어지는 노동자의 죽음을 보면서 도대체 한국의 진보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이제 진보진영도 바람에 의해 표를 얻는 시대는 갔음을 깨달아야 한다. 진보진영이 진보적 의제로 정면승부를 원한다면 시간이 걸리지만 가장 확실한 길을 택해야 한다.

5)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진정성을 얻는 것이다. 리더십의 대가 맥그리거 번스교수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저소득층이 보수적인 건 당연하다며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 속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민노당의 활동가들이 풀뿌리에서 생협, 농민단체 등을 조직한 건 높이 살 일이다.

보수는 박정희 시절부터 새마을운동으로 주민을 조직했고 각종 관변단체에 이권을 나눠주며 저소득층의 저변에 뿌리를 내렸다. 특히 민주정부 10년간 이들은 복지를 좌파정책으로 규정하고 '발전주의' 이념을 토대로 정당의 재연합을 이뤘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개인 리더십의 탁월함으로 집권한 후 소수정부를 간신히 운영하느라 힘겨워할 때 한나라당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석권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독재정권에게서 풍부한 물적, 인적 자산을 물려받았다. 민주정부 10년간 장악한 지방정부를 근간으로 전국을 돌며 대대적인 사상교육을 통해 한나라당 조직을 강화시켰다. 한나라당이 단순한 보수정당이 아니라 '발전주의'라는 우리 국민에게 익숙한 보수 정체성을 기반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2007년 이명박의 당선은 노무현과 무관하게 이러한 한나라당의 정당재연합에 의해 가능했다. 2007년 대선에서 세대효과가 발견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의 민주당 지지는 낮았던 데 비해 이들이 한나라당에 새롭게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나라당 정당재연합의 대표적인 증거이다.

반면,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분당으로 조직이 망가졌고 복원되기는 했지만 비교적 젊은 핵심지지층과 나이 든 당원의 갈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 민주당의 고질적 문제인 친노와 반노의 대결도 50세 이상의 당원과 2040 모바일 세력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주당은 절반정도의 시도 지방자치단체장을 배출하기는 했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회는 여전히 새누리당이 독식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민주당은 풀뿌리로 내려가 봉사하고 소통하면서 당의 기반을 조직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당을 강화하고 진보적인 생활공동체를 통해 정치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노무현의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박원순의 '마을살리기 운동'은 구좌파의 국가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 참여하는 신좌파운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최장집 교수의 정당강화론에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그가 제안하는 진성당원을 기초로 한 이념정당은 미래 한국정당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또한 국민참여경선이 당을 망쳤다는 주장도 시대착오적이다. 우리 사회엔 분단과 지역주의 정당의 역사로 서유럽과 같은 이념정당이 출연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일부 노동자와 지식인에 의한 좌파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데 실패한 바 있다.

국민참여경선이 정당 강화의 옳은 방향

계급정당을 모형으로 한 서유럽의 정당도 21세기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이념이 퇴조하고 네트워크 정당이 출연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에 이어 가장 이념적이라는 프랑스의 사회당도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한 바 있다. 국민에게 공천권이 돌아가자 기득권이었던 미국의 지방정당은 쇠퇴했지만 중앙당은 오히려 더 강하게 재탄생했다.

우리 정당이 지역정당이었는데 기존 당원의 기득권을 인정해주면 새누리당은 어차피 오너가 있는 정당이니 문제가 없겠지만 민주당은 지역적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줌으로써 민주당의 경우는 오히려 더 강하게 재탄생할 수 있다.

정당의 정체성이 없었던 열린우리당과 손학규, 정세균이 이끌었던 민주당은 비록 2010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정당지지도는 늘 20% 미만이었다. 지난해 초 민주당이 친노와 시민단체활동가가 주축이 된 <혁신과 통합>과 결합하면서 단숨에 35%가 넘는 지지도를 기록했다. 올 대선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맞먹는 역사상 최고의 정당지지도를 기록하게 된 것도 한편으론 이념적 정체성을 뚜렷이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친노와의 통합과 국민참여경선 덕분에 야권이 지난 총선에서 탄핵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의석이라고 할 수 있는 과반에 육박하는 의석을 얻었고 이번 대선에서도 1470만표라는 역대 최고 득표를 한 것이다. 일각에서 일고 있는 친노책임론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뺨 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당,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 연구해야

이번에 2% 득표가 부족했던 건 문재인 캠프가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을 버리고 구좌파연대로 후퇴한 때문이다. 노무현이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정부와 시민사회, 사회 제 세력이 통치에 참여하는) 협치와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엔 미래가 없다고 본다.

신좌파노선의 핵심은 참여민주주의의 강화에 있다. 투표뿐만 아니라 정책의 입안과 실행에서도 국민이 참여할 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진보적이면서도 중상층과 서민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실용적인 정책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국가가 획일적으로 만든 정책은 서로 다른 계층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아래로부터의 정책은 각자의 욕구에 맞게 맞춤형으로 세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심판관이 되고 싶었던 필자는 노무현이라는 시대정신을 만나 꿈을 포기하고 진보진영에 몸담게 되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가장 진보적이었던 노무현을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렸다. 친노마저도 그 위세에 눌려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도 못했고 똘똘 뭉쳐 계파싸움을 이겨내지 못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도 못했다.

필자는 이제 진영논리를 대변하던 논객에서 벗어나 객관적 연구자로 돌아가고자 한다. 학부모, 교사들과 함께 아이를 살리는 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풀뿌리 운동 '느림보학교'( cafe.daum.net/slowschool)에 전념하고자 한다. 그동안 좋은 지면을 제공해 준 <오마이뉴스>와 부족한 글을 읽어준 독자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교육이란 주제를 통해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에도 실렸습니다.
#풀뿌리 #정당강화 #국민참여경선 #진보적 자유주의 #구좌파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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