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가 두렵네요, '와락' 당신을 안고 싶습니다

쌍용차로 향하는 희망버스, 26일 오후 3시 평택역 출발

등록 2013.01.23 09:47수정 2013.01.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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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쌍용차 대규모 정리해고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김정우 지부장의 41일 단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해 11월 20일에 시작된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조합원의 고공농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쌍용차 사태'에 대한 글을 앞으로 3회에 걸쳐 다룰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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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1월 20일 오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한상균 전 지부장 등 3명이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송전탑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혼자 있기가 두렵다. 글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이제는 가슴팍이 거북 등껍질처럼 딱딱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이어지는 죽음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진중공업에서 들려왔던 비보는 울산으로, 서울로, 용인으로 이어졌다. 이 죽음들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몰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절망스러운 시간들이었다. 뭘 어떻게 설명하고,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암흑의 시간들이었다.

무기력하고도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우두커니 혼자 있는 스스로가 무서워졌다. 덜컥 겁부터 났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원초에 가까운 공포가 온 몸뚱이를 사로잡았다. 부산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장례식장에서 하는 일 없이 며칠을 앉아 있었다. 저렇게 젊은데, 아이들이 참 어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속 타는 질문은 그 순간 소용이 없었다. 늘 낙관과 긍정의 마음으로 지난 4년간 복직 싸움에 임했던 나에게는 낯선 나날들이었다. 또한 혼자 있기가 두려운 사람들이 많아질까 더 두려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쌍용차 공장 안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또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내가 해고되기 직전까지 나와 함께 일했던 형이었다. 온 마음으로 기적처럼 일어나기를 기원했지만 가슴에 켜켜이 쌓이는 죄스러움만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다. 유서에는 힘들었던 경제적 고통, 불안한 쌍용차의 미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해고자들의 올바르지 않았던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보수언론에서 해고자에 대한 원망을 전체인양 부각하지 않아도 지금은 고인이 되신 형님에게 죄스러운 마음만 가득했다. 소위 산 자로 불리던 공장 안의 노동자들 그리고 죽은 자로 불리던 나같은 해고자 사이의 운명이 이렇게 엇갈릴 수 있는지 기막힌 마음뿐이었다. 죽음이 전하는 소식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뒤따랐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다시 공장에 들어오면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중 누군가는 희망퇴직으로 나가야 한다는, 치 떨리는 겁박의 이야기들이.

이는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고통과 절망이 공장 안팎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슬픔의 징표였다. 이는 일자리를 잃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생생한 현실의 공포였다. 또한 지난 중국 상하이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현재 쌍용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가 실제 투자는 하지 않고 투자하겠다고 한 거짓에 대한 환멸이었다. 이는 쌍용차에 대한 미래보다 본인들의 안위에 급급한 경영진들과 국정조사 약속도 지키지 않은 정치에 대한 무기력이었다.

하지만 그 보다 앞서 나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함께 살자고 지난 4년간 목이 터져라 이야기했지만 정말 함께 살기위해 온 마음으로 노력했는지, 해고자라서 갖게 되었던 원망이나 이기심들은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보며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한참을 황망한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장 안팎에서 발견되는 '쌍용차 정리해고'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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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로 향하는 희망버스 '그리움이 또다른 그리움에게' ⓒ 경기시국회의


공장안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작업장에서 스스로의 삶을 버린 다음 날인, 1월 11일 쌍용차와 공장안 기업노조는 무급휴직자 455명을 2013년 3월 1일부로 전체 복귀시킬 것이라며 대대적인 언론발표를 했다. 2009년 77일 파업 끝에 합의된 지 4년 만에, 복귀 시점으로 따지면 3년 만에 복귀였다. 1년 후 복귀라는 노사합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던 쌍용차를 대상으로 한 무급휴직자들의 임금청구소송이 거의 막바지에 있었고, 여야 모두 대선 전부터 여러 차례 약속했던 쌍용차 국정조사가 논의 될 즈음이었다. 서울 대한문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분향소를 차리고, 경찰한테 맞고, 연행 당하며 버틴 지 10개월 즈음이었고, 김정우 지부장이 41일간 곡기를 끊고, 곧이어 3명의 해고자가 15만4000볼트의 송전탑에 올라가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두 달 이어 갈 즈음이었다.

곧이어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무용론을 주장하며 대선 전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고, 쌍용차와 공장 안 기업노조는 공장 밖으로 내몰린 해고자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 장관인 이채필은 국정조사로 쌍용차 경영이 어려워지면 책임질 수 있느냐며 야당의원들에게 일갈했다.

기획부도와 회계조작으로 부당하게 진행된 정리해고에 대해 의혹이 있으니 진실을 규명하자는 국정조사가, 투자약속만 하고 기술만 먹고 튀었던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한 쌍용차 대주주 인도 마힌드라의 투자에 대한 의혹을 밝히는 국정조사가, 이어지는 죽음으로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트라우마에 휩싸이게 한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국정조사가 순식간에 공장 안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해고자들만의 이기적인 주장으로, 야당의 박근혜 정부 발목잡기로 둔갑하였다. 그렇게 절망 앞에 선 채로 쌍용차 해고자들은 버티고 있다. 송전탑의 혹한 속에, 대한문의 무거움 속에, 삼청동 인수위의 약속과 통합이라는 기만 앞에 서 있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절망 앞에서 주눅들거나 움츠리지 않을 작정이다. 약속과 통합의 정치라 이야기하며 거짓과 기만의 정치를 펼치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싸울 것이다. 복귀하기로 약속했던 무급휴직자에게 임금소송을 취하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겠다는 확약서를 쓰지 않으면 복귀시키지 않겠다고 겁박하는 쌍용차 경영진을 대상으로 싸울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짐짓 관계없는 듯한 태도의 쌍용차 대주주 인도 마힌드라와도 싸워 나갈 것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의 무기력함과 절망 앞에서 싸울 것이다. 그렇게 절망을 딛고 다시 싸워 나갈 것이다.

하지만 혼자이기는 여전히 두렵다. 비장한 마음으로 싸워내기엔 우리의 마음은 상처투성이다. 그래서 해고자들 스스로가 혼자가 아님을 믿는 많은 이들과 함께 서로를 응원하고, 북돋으며 우리의 싸움을 이어가고 싶다. 쉽사리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어려운 이때, 절망에 딛고 선 여기에서 다시 방법을 찾자고 호소한다. 1월 26일 토요일 평택역 오후 3시 쌍용차로 향하는 희망버스의 탑승객이 되어 줄 것을 호소한다. 거짓과 기만 그리고 죽음과 슬픔을 딛고 다시 서로를 와락 안아주기를 호소한다.

쌍용차 해고자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혹한의 칼바람 속 송전탑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해고자들만의 절박한 외침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메아리로 화답되었으면 좋겠다. 절망을 딛고 선 모두가 서로를 다시 와락 안고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고동민 기자는 쌍용차해고자입니다. 쌍용차로 향하는 희망버스는 서울 대한문에서도 1월 26일 오후 1시에 출발합니다.
#쌍용차 #희망버스 #철탑농성 #국정조사 #해고자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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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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