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 권 읽는 것보다 한 번 가보는 게 낫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②] 실크로드 바닷길 답사 종합

등록 2013.01.27 15:34수정 2013.01.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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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지난 답사 돌이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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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리아 극장에서 바라 본 로마시대 유적과 지중해 ⓒ 이상기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한 바퀴 돌아 마지막 지점 카이로에 왔다. 날짜로는 1월 24일이다. 이제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는 일만 남았다. 1월 25일이 이집트 혁명 2주년 기념일이어서 그런지 카이로 시내가 술렁인다.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는 벌써 텐트가 쳐지고 경비가 삼엄하다. 우리는 구시가지에 있는 카이로 최대의 칸 카릴리 바자르 방문을 포기한다. 그래서 비교적 이른 시간에 기자에 있는 아라만테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시간 여유가 있어 이렇게 지난 답사를 돌이켜 본다.


이번 답사를 위해 텔아비브에 도착한 것이 1월 12일이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답사는 13일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찾아간 곳이 헤롯왕이 바닷가에 만든 항구이자 궁전인 카이사리아다. 이곳에서 우리는 로마시대 극장, 궁전터, 마차 경주장, 십자군 시대의 도시 흔적, 수도교 등을 보았다. 이들은 상당부분 무너지고 훼손되었지만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특히 파란 지중해변에 펼쳐진 카이사리아가 내 눈에도 명당으로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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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의 수태고지 교회 ⓒ 이상기


카이사리아 다음으로 찾아간 도시는 나사렛이다. 예수의 흔적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많이 하고 또 듣는다. 그것은 '유다의 왕 나사렛 예수(INRI)'라는 말을 통해 확인된다. 나사렛에서 우리는 수태고지 교회를 보았다. 수태고지란 천사 가브리엘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잉태를 마리아에게 알려줌을 말한다. 나사렛에서 우리는 가르멜산을 넘어 하이파로 간다. 하이파는 이스라엘 제3의 도시다.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대표적인 무역항으로 지중해로 나가는 배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출항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바하이 묘당과 정원을 살펴보았다. 바하이 정원은 산 중턱에서 거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바하이교의 성지다. 바하이교는 바하이에 의해 창시된 신비주의 종교로 중동지역에서는 꽤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묘당과 정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스라엘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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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돌로로사 14처 예수그리스도의 무덤 ⓒ 이상기


이스라엘 답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누가 뭐래도 예루살렘이다.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2박을 하면서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집중적으로 보고, 베들레헴과 헤브론을 방문했다.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3일 만에 부활한 땅이다. 그래서 기독교 최고의 성지다. 또 유대교의 성지인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이다. 거기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들 세 종교의 성지가 된다.


예루살렘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것은 유대교이고, 두 번째가 기독교이며, 세 번째가 이슬람교이다. 그 때문에 예루살렘은 유대인 지역, 기독교인 지역, 아르메니아인 지역,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져 있다. 그 중 무슬림 지역이 가장 넓고 볼거리가 많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통곡의 벽과 바위돔 그리고 비아 돌로로사다.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고난을 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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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론의 아브라함 성전 ⓒ 이상기


예루살렘 주변에는 종교적인 성지가 두 군데 더 있다. 하나는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이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묘가 있는 헤브론이다. 베들레헴과 헤브론은 모두 무슬림 지역에 있어 경비가 삼엄하다. 우리 같은 관광객들은 비교적 출입이 자유롭지만, 무슬림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상당히 통제를 받는 것 같았다. 거의 2,000년 동안 이 지역을 지켜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2류 시민이 되어 천대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제리코(Jericho)다. 제리코는 성경에서 여리고로 불리는 곳이다. 그러나 현지 무슬림들은 야리하라고 부른다. 제리코는 사해(Dead Sea) 근방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지중해 해면보다 250m나 낮다. 그 때문에 기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 일행은 제리코에서 처음으로 여름을 느낄 수 있었고, 사해에서 해수욕도 할 수 있었다. 내 몸이 워낙 가벼워 조금만 연습하면 공중부양도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시나이 반도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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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바 검문소 ⓒ 이상기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 넘어가는 육로는 크게 네 코스다. 가장 북쪽이 케렘 샬롬 검문소다. 이 검문소는 가자 지구에 연해 있다. 그 아래로 니차나 검문소가 있다. 이들은 시나이 반도의 북쪽에 있다. 중간 지역에는 국경을 넘는 검문소가 없고 남쪽 아카바만 근방에 두 개의 검문소가 있다. 하나가 에일라트 검문소고, 다른 하나가 타바(Taba) 검문소다.

우리는 그 중 가장 남쪽 아카바만에 연해 있는 타바 검문소를 통과한다. 검문검색이 비교적 삼엄한 편이다. 타바 검문소를 나온 다음 우리는 누에바, 다합을 거쳐 시나이 반도 남쪽 끝에 있는 샤름 알 셰이크까지 간다. 샤름 알 셰이크는 아카바만과 홍해를 끼고 있는 중요한 항구도시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홍해변을 따라 수에즈 운하까지 올라간다. 버스를 무려 11시간이나 타고 나서야 우리는 카이로 서쪽의 기자 아라만테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기자에서 북서방향으로 난 사막도로를 타고 알렉산드리아까지 간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프토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로 지중해변에 있다. 이집트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을 뿐만 아니라 유럽적인 냄새가 나는 도시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틀 동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시대 그리고 이슬람 시대의 문화유산을 보았다. 카타콤베, 원형극장, 폼페이의 석주,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등이 기원전 프톨레미시대와 로마시대의 흔적이다. 그리고 카이트베이 요새와 몬타자 궁전이 이슬람의 문화유산이다.    

나일강을 따라 올라갈 때는 기차로, 내려올 때는 배와 비행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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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아스완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 ⓒ 이상기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자로 돌아온 우리 문명교류 탐사단은 야간열차를 타고 나일강 중류의 아스완까지 간다. 그리고 나서 나일강 크루즈를 통해 이집트 문명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의미 있고 재미있었던 것이 3박4일간의 나일강 크루즈다. 나일강 중류의 아스완에서 크루즈를 타고 룩소르까지 내려오면서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문화유산을 집중적으로 탐사했기 때문이다.

아스완에서는 람세스 2세의 신전 아부심벨을 보았다. 네 개의 거상이 낫세르호를 향해 있고, 그 안에 대석주홀, 소석주홀, 지성소가 있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의 업적을 기리는 신전이다. 람세스 2세는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왕으로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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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옴보 신전의 기둥 ⓒ 이상기


나일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두 번째로 본 신전은 콤옴보 신전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악어의 신 소벡(Sobek)와 새의 신 하로에리스(Haroeris)를 기리는 신전이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신전이어서 그런지 조각이 아주 선명하다. 콤옴보 신전에서 하류로 70㎞를 내려가면 에드푸 신전이 나온다. 이 신전 역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 이름이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이다. 호루스(Horus)는 매 모양을 한 신으로 악을 대변하는 신 세트(Seth)를 물리치는 내용이 벽면에 조각되어 있다.

에드푸에서 배는 에스나를 지나 룩소르로 내려간다. 배가 강에서 다니려면 수심이 4-8m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에스나는 수심이 얕아 갑문을 설치, 수위를 높인 다음 배가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야간에 에스나를 지난 다음 새벽쯤 배는 룩소르에 정박한다. 1월 23일 우리는 하루 종일 룩소르의 문화유산을 탐사했다.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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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쳅수트 장제전 ⓒ 이상기


오전에는 나일 서편에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Necropolis)를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 장례와 제례를 위해 만든 집인 장제전(葬祭殿)이 있다. 그리고 아멘호텝 2세의 왕궁터가 있다. 이 중 우리는 왕들의 계곡에 있는 네 왕의 무덤에 들어가 본다. 투탕카문, 람세스 3세, 메렌프타, 람세스 9세의 왕릉이다. 이 중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나와 현재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들 유물을 우리는 24일 이집트 박물관에서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왕비들의 계곡을 살펴보지는 못하고, 그 입구에 있는 하쳅수트(Hatshepsut) 왕비 장제전만 살펴볼 수 있었다. 하쳅수트는 투트모시스 2세의 부인이었으나 그가 죽자 왕이 된 여장부였다. 그녀는 22년간 통치하면서 18왕조를 번성시켰던 왕으로 유명하다. 왕비들의 계곡을 나오는 길에 발굴과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람세스 2세 장제전인 라메세움을 지나 멤논의 거상을 살펴보았다. 멤논의 거상은 아멘호텝 3세의 석상으로 두 기가 나란히 서 있다. 아멘호텝은 그리스어로 표현하면 아메노피스(Amenophis)가 된다. 멤논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0년 이곳을 방문한 그리스 역사학자 스트라보(Strabo)에 의해 처음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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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크 신전의 하쳅수트 오벨리스크 ⓒ 이상기


오후에 우리는 나일 동편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를 신전을 살펴보았다. 이 두 신전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신전 건축 중 백미다. 그것은 규모가 가장 크고 건축과 조각이 다양하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나크 신전은 아문(Amun)신에게 바쳐진 신전이지만, 후대에 수많은 신전들이 증축되었다. 룩소르 신전은 나일강에 연해 위치하고 있어 크루즈선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룩소르 신전은 카르나크 신전과 마찬가지로 아문신에게 바쳐졌으며, 카르나크 신전에 비해 규모가 작아 소신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룩소르에서 우리는 3박4일간의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국내선 비행기인 이집트 에어를 타고 카이로로 간다. 룩소르에서 카이로까지 거리는 500㎞ 정도로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전 11시에 카이로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이집트 박물관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집트 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게 유감이었지만, 그 유물들 하나하나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었다.

이날이 1월 24일이었는데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 공보관으로부터 가급적 구시가지에 진입하는 걸 삼가달라는 연락이 왔다. 현대사를 전공한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는 타흐리르 광장으로 한 번 가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이드가 2년 전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며 극구 말린다. 그러면서 이집트 박물관이 문을 닫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우리를 위로해 준다. 아쉽지만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장이 1950년대 공부했던 카이로 대학교를 잠깐 방문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1월24일 밤 이집트 카이로에서 썼다. 그런데 인터넷 사정이 여의치 못해 오늘에야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이번 기사는 15일 동안의 답사를 종합하고 개괄하는 내용이다. 앞으로는 이틀에 한 번 꼴로 구체적인 답사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실크로드 바닷길 #예루살렘 #카이로 #아스완 #나일강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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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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