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돌이불 덮고 잔 망자는 행복했을까

'세계문화유산' 전남 화순 고인돌 유적지

등록 2013.01.29 11:55수정 2013.01.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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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덮개돌 채석장까지 발견된 화순 고인돌 유적지. 지난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이돈삼


고인돌은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주변에 너무 흔했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여기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전쟁놀이를 하며 바위를 넘나들기도 했다.

학교 소풍 날이면 단체놀이 장소로 쓰였다. 어른들은 들일을 하다 새참을 먹는 장소로 활용했다. 길을 걷다가 쉬어가기에도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한 행동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이다. 고인돌군은 공동묘지인 셈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전남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다. 가히 '고인돌 왕국'이라 할 만하다.

특히 화순의 고인돌유적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지난 2000년이었다. 돌을 캐고 무덤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이 있어서다. 산속에 있어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한정된 공간에 모여 있는 것도 한몫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상석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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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숙 문화유산해설사가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서 부모와 함께 온 한 어린이에게 고인돌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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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 유적지의 선사체험장. 고인돌을 옮겨보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 이돈삼


지난 23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모산마을에 갔다. 고인돌길의 출발점이다. 여기서부터 춘양면 대신리 지동마을까지 4㎞ 구간 구릉에 고인돌 596기가 분포돼 있다. 기원전 5∼6세기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전문기관에 의해 발견됐다.

흙길을 따라 들어가니 선사체험장이 반긴다. 움집이 군데군데 서있다. 마당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덮개돌을 옮겨볼 수도 있다. 선사시대로 가는 타임머신에 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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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 유적지의 마당바위 채석장에서 내려가는 길. 나무데크가 놓여있어 쉽게 오갈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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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바위 채석장의 덮개돌들. 고인돌의 덮개돌로 쓰일만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 이돈삼


체험장에서 나와 한 모롱이 돌아간다. 날이 풀리면서 눈이 녹아 길이 질컥거린다. 마당바위 채석장이 보인다. 채석장은 고인돌의 덮개돌을 캐내던 곳이다. 고인돌과 본격적으로 만나는 지점이다. 산정의 마당바위까지 나무계단이 높여있다.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산봉우리에 덮개돌로 쓰일 만한 바위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바위도 평평하고 넓다. 엔간한 산골학교의 전교생이 앉아도 될 성싶다.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월곡저수지 풍광이 멋스럽다. 도곡 들녘도 한 폭의 그림이다. 가을에 황금색으로 물들면 더 멋있겠다.

한편으로 이런 곳에서 어떻게 덮개돌을 캐고 옮겼는지 아득해진다. 바위에 홈을 파서 나무를 끼워 넣고, 거기에 물을 부어 돌을 떼어냈다지만 상상하기 버겁다. 그 돌을 끌고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을까. 또 다치고 죽었을까.

마당바위에서 내려오면서 옛사람들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본다. 다른 건 몰라도 공동체 의식만큼은 대단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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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유적지의 관청바위 채석장. 고인돌의 덮개돌이 무리 지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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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바위 채석장으로 탐방로가 예쁘게 놓여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탐방로를 따라 걸어갈 수 있고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 이돈삼


월곡저수지 앞으로 펼쳐진 관청바위 채석장도 드넓다. 마당바위와 달리 평지에 가깝다. 크고 작은 덮개돌이 줄을 지어 있다. 꽤 너른 바위에는 열댓 명이 올라앉을 수 있겠다. 돌을 캐던 흔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옛날 보성원님이 나주목사를 뵈러 가다가 여기서 잠시 쉬셨답니다. 때맞춰 한 백성이 찾아와서 민원을 냈는데 바로 처리해줬답니다. 보성원님이 쉬면서 관청 일을 봤다고 해서 관청바위라 불렀답니다."

문화관광해설사 양해숙(52)씨의 설명이다.

고인돌길은 보검재로 향한다. 화순 도곡면과 춘양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보성과 나주를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길이 오른편 계곡과 함께 완만하게 고개를 넘어간다. 보검재 정상을 넘어서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여흥민씨 제각(추원제)이다. 오른편은 춘양면 대신리다. 고인돌길은 대신리 쪽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와 달리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경사도 완만하게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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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숙 문화관광해설사가 핑매바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핑매바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 덮개돌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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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 덮개돌인 핑매바위. '장군바위'로도 불린다. 그 앞으로 난 길을 따라 탐방객이 지나고 있다. ⓒ 이돈삼


갈림길에서 500여m 내려가니 핑매바위가 서 있다. 화순 고인돌유적지의 대표 격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단다. 길이 7m, 높이 4m에 무게가 280t이나 된다. '장군바위'로도 불린다. 바위 아래를 크고 작은 돌들이 받치고 있다. 틀림없는 고인돌이다.

당시 10t의 바위를 옮기려면 100여 명이 동원됐다는데, 이 바위를 옮기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을까. 상상조차 힘들다. 그만큼 이 일대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공동체 생활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렇게 큰 돌이불을 덮은 망자는 힘들었을까 아니면 행복했을까.

핑매바위와 관련한 재밌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바위 위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데, 왼손으로 돌을 던져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다. 처녀 총각이 넣으면 그해 결혼을 하고. 그 때문일까. 핑매바위 위에 수많은 돌이 올려져 있다. 누군가 바위에 올라가 세웠는지 상당한 크기의 돌도 서 있다.

이런저런 얘기로 발길 오래 머물게 하는 핑매바위다. 바위에 여흥민씨 세장산(驪興閔氏 世葬山)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인돌의 가치를 알기 전에 표지석으로 써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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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바위 채석장. 덮개돌의 형태가 갓을 쓴 사람의 형상이라고 이렇게 이름 붙었다. 그 옆에는 채석해 놓은 덮개돌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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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바위 채석장에는 갖가지 형태의 고인돌과 덮개돌이 널려 있다. 그 앞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나 있다. ⓒ 이돈삼


핑매바위에서 내려가는 길이 부드럽게 구부러진다. 아름답다. 왼편으로 감태바위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다. 바위 두 개가 포개져 있는데, 밑에 있는 바위가 사람 형상이고 위의 것이 감태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갓 쓴 사람보다 눈사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덮개돌을 떼어낸 흔적도 여기저기 남아있다. 돌을 떼어내기 위해 파놓은 홈도 또렷하다. 덮개돌을 떼어내 암벽 위에 올려놓은 것도 보인다. 비스듬히 세워놓은 것도 있다.

그 아래로 고인돌이 지천이다. 앉은뱅이 책상만 한 높이의 탁자식 고인돌이 눈에 띈다. 고임돌이 고여진 기반식과 무덤방이 드러난 개석식도 많다. 여러 형태의 고인돌과 돌을 캐고 무덤을 만드는 과정이 다 모여 있다.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굄돌이나 받침돌 없이 큰 뚜껑돌만 올려놓은 것도 부지기수다. 고인돌의 야외 전시장 같다.

고인돌길의 종착지는 대신리 고인돌전시관이다. 발굴지 자리에 보호각을 씌워놓았다. 여러 형태의 선사시대 무덤방과 내부구조를 볼 수 있다. 가락바퀴, 돌도끼, 돌화살촉, 토기조각 등 고인돌에서 나온 유물도 그대로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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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리 고인돌 전시관 전경. 발굴된 유적에 보호각을 씌워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화순 고인돌 유적지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동광주 나들목에서 광주제2순환도로를 타고 광주대학교 앞으로 간다. 여기서 화순도곡 방면으로 817번지방도를 타고 칠구재터널을 지나 전남학숙, 도곡온천지구를 거쳐 지석천을 건넌다. 효산삼거리에서 능주 방면으로 좌회전, 도곡면소재지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화순고인돌유적지 가는 길이 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할 경우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140-2번지’를 입력하면 된다.
#화순 고인돌유적지 #마당바위채석장 #관청바위채석장 #감태바위채석장 #핑매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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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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