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가시려고요? '벌금 폭탄' 조심하세요

[타이완 여행기①] 타이완의 중심, 중정기념당과 총통부

등록 2013.01.30 10:43수정 2013.01.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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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한 날(13일) 제일 먼저 들은 것은 타이완에 연일 맹추위가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한국 동장군의 기세를 피해 바다 건너 따뜻한 남쪽나라로 휴가 왔더니만 여기서도 추위라니…. 하긴 비가 잦은 타이완의 겨울 날씨는 기온과는 달리 체감온도가 낮아 우리나라 겨울과 버금간다고 들은 참이다.

공항 바깥을 나서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듣던 대로 습했다. 서늘한 날씨에도 실내 곳곳에서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다. 제습을 목적으로 켜둔 것. 그나마 넓고 높은 건물 안에서야 그렇다고 해도, 타이베이로 향하는 공항버스 안에서의 에어컨은 고통이었다. 마치 냉장고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열대 기후의 나라에서 한 시간 가까이 난데없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최저 기온이 고작 섭씨 10도 초중반인 날씨에도 타이완 사람들이 두꺼운 바람막이 점퍼와 오리털 파카를 입은 이유를 알 듯했다. 낮에는 기온이 20도를 훌쩍 넘기는 곳이지만, 겨울은 어디까지나 겨울이라는 듯 사람들의 옷차림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버스 기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내려야 할 곳을 직접 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캄캄한 밤에 버스 내 안내 방송과 지도 한 장에 기대 숙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우리나라의 모범택시 기사인 양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줬고, 어설픈 중국어에도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등 이방인에게 무척 살가웠다. 타이완의 첫인상이었다.

정렬 또 정렬... 칼 같은 줄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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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의 줄 서기 어느 곳에서든 '줄 서기'가 보편화되어 있다. 타이완 사람들, 질서 의식 하나는 투철하다. ⓒ 서부원


휴가 둘째 날은 되레 화창하고 쾌적했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마치 우리네 가을 하늘 같았다. 초대 총통을 지낸 장제스를 모신 중정기념당과 현재 총통이 집무하고 있는 총통부를 찾아볼 요량이다. 타이베이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접근이 쉬운 데다, 타이완의 중심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어 대개 여행객들이 맨 처음 알현하듯 찾는 곳이다.

전세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면, 중정기념당이나 총통부 등 타이베이 시내를 여행하자면 대개 'MRT(지에윈)'라고 불리는 지하철을 이용하게 된다. 나름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교통수단. 지하철이야 전 세계 웬만한 도시마다 다 있다지만, 타이베이의 지에윈은 정시성과 편의성뿐만 아니라 승객들의 이용 모습 등에서도 남다른 구석이 많다.


우선 객차 내부는 물론, 플랫폼 등의 공간에서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지하철에서는 음식은커녕 물을 마셔서도 안 되고, 껌을 씹을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네 지하철역 구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점이나 자판기 시설도 전혀 없다. 아무것도 팔지도, 먹지도 못하니 굳이 쓰레기통 같은 걸 둘 리 없다.

또, 플랫폼마다 탑승라인이 그려져 있는데, 마치 '앞으로 나란히' 하듯 줄을 서서 타고 내리는 모습이 낯설다. 타이완 사람들의 '정렬하는' 모습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한 줄로 서고, 왼편으로는 바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열어둔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다.

지하철 내 환승 동선도 짧고 편리하게 돼 있다. 지방을 연결하는 기차와 고속철도 역까지 겹쳐있는 타이베이역 정도를 제외하고는 출퇴근 시간조차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상 위의 고가 전철역과 지하의 역을 환승할 경우, 한 번에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또 오가는 사람이 섞이지 않도록 곳곳에 난간이 마련돼 있다. 출구를 나서면 바로 버스 승강장이다.

물론 충전식 교통카드 한 장이면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물론 가까운 교외를 오가는 시외버스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더욱이 타이베이의 지에윈은 내리면 바로 매표소라고 할 만큼 유명 관광지를 직접 연결해주고 있어 시내버스나 택시를 단 한 번도 타지 않고 타이베이 관광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객차 안에는 반드시 빈자리가 있다. 다른 좌석과는 달리 파란색으로 칠해진 '박애석'은 온전히 노약자와 임산부·어린이를 위한 자리다. 건국자인 쑨원이 갈파한 '두루 사랑하라'는 박애 사상을 후세에 일깨우려는 듯 소소한 현실에 대입시켜놨다. 아무리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출퇴근 시간조차도 대개 비워져 있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조차 그곳에 앉기를 꺼려하는 눈치다.

자유광장이긴 한데... 주변엔 감시의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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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기념당의 정문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해 새긴 '자유광장'이라는 문구가 또렷하다. 자유중국의 심장부로 들어서는 문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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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 전경 정문 왼편에 있는 건물이 국가희극원이고, 오른편이 국가음악원이다. 중정기념당 본관 입구에서 본 모습이다. ⓒ 서부원


역 출구로 나오니 바로 중정기념당이다. 시내 한복판 빌딩 숲 사이에 이렇듯 넓은 광장과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는 게 놀랍다. 국가적인 기념행사와 공연 등이 행해지는 곳으로, 모방한 것 같기도 하지만 형태와 규모로 따지면 베이징 천안문 광장 저리가라다. 건물의 황금색 지붕과 바닥의 하얀 타일, 그리고 푸른 하늘이 서로 도드라지면서도 웅장함을 더한다.

무얼 보려고 하든 많이 걷고 고개를 높이 치켜들어야 한다. '자유광장'이라고 적힌 아치형 기념물에서 광장 양 옆의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청을 지나 곧장 가면 본관인 장제스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중정기념당이 나온다. 이곳은 한때 타이완 민주기념관으로도 불렸던 곳으로, 우리로 치면 독립기념관과 시청 앞 광장·예술의 전당을 모두 합쳐 놓은 셈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많지만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다. 입구마다 경비가 삼엄해 접근 자체가 제한된 곳이 많다. 특히 2층에 자리한 장제스의 동상 앞에는 두 명의 경비병이 미동 하나 없이 종일 지키고 서 있어 권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의 생전 유품과 사진 등을 전시한, 그다지 특별하달 게 없는 1층에서도 입구의 '자유광장'이라는 글귀가 무색하게 곳곳마다 감시의 눈빛이 번득인다. 경건하다고 해야 옳을 듯하다.

흐트러짐 없는 질서의식,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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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본 총통부의 모습 일본 점령 시기 총독부로 사용되던 건물로 지금도 총통의 집무실로 쓰이고 있다. 경비가 삼엄해 근접 촬영이 금지돼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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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졔스의 동상과 경비병의 모습 중정기념당 본관 2층, 장졔스의 동상 위로는 타이완의 상징인 '청천백일'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서부원


중정기념당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총통부의 삼엄한 경비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야말로 '철통 보안'이다. 비록 오전 두 시간 남짓일 뿐이긴 해도 관광객들에게 일부를 개방한다는 것이 외려 의아할 정도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것은 물론, 총통부 주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도, 함께 웃거나 떠들 수도 없고, 심지어 걷다가 잠시 멈춰 서는 것도 안 된다.

총통부는 우리로 치면 청와대 격이니 그럴 수밖에. 도심에서 비켜나 북악산을 등지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사통팔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까닭이다. 경비병이 담벼락처럼 에워싼 정면에서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관람객이 출입할 수 있는 입구가 나온다. 여권과 휴대품 검사를 받은 후 입장을 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건 개인별 관람은 안 되고 줄을 서서 인솔자를 따라다니며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곳은 전시관으로 꾸며진 1층만 개방돼 있는데, 곳곳에 부동자세의 경비병이 늘어서 있어 큰소리로 떠들거나 함부로 카메라를 꺼냈다가는 곧바로 제지당하게 된다. 숨죽인 채 다른 관광객들과 섞여 한 시간 가량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면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한숨을 푹 내쉴 정도로 권위적인 공간이다.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베이는 인구가 300만 명에 가까운 대도시이지만, 지낼수록 무척 질서 정연하고 정돈된 도시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대륙인들과는 달리 떠들썩하지 않고 대체로 차분하며, 낯설고 불편할 만큼 도시의 구석구석이 깨끗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고지식하다고 여겨질 만큼 질서 지키기가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우선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다. 우연히 들른 몇몇 중·고등학교의 건물과 운동장 바닥 어디에도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건물과 지하철역의 장애인용 승강기를 이용하는 비장애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이 뜸한 불과 5미터도 안 되는 좁은 건널목인데도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는 사람 역시 이곳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단지 위험해서만은 아닌 듯했다.

길거리서 쉽게 볼 수 있는 '벌금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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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의 나라, 타이완 타이완은 스쿠터가 인구 만큼이나 많은 나라다. 마치 '앞으로 나란히' 하듯 주차돼 있는 스쿠터의 질서 정연한 모습. ⓒ 서부원


스쿠터가 인구만큼이나 많다는 나라라지만,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도로에 나서는 이가 단 한 명 없고, 교통 신호와 차선을 위반하는 택시나 버스도 거의 보질 못했다. 오가는 차량이 많지 않은 교외 관광지라면 애타게 손 흔들면 세워줄 법도 하건만, '공차(버스) 전용'이라고 적힌 곳이 아니면 결코 서는 법이 없다.

시내버스 안에서 만난 중년의 타이완 신사 한 분은 이를 사뭇 놀라워하는 내게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 나름 긍정적으로 뿌리내린 결과라고 귀띔해줬다. 1949년 공산당에 패망한 이래 1987년까지 약 40년 동안 독재정권의 계엄령 하에서 숨죽여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생활 태도라는 것.

현재 타이완의 공식 명칭은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지만, 우리에게는 타이완 또는 '자유 중국(Free China)'이 더 익숙한 이름이다. 대내외적으로 '자유로운 중국'을 표방하고 있고, 2006년 세계연감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평가 받았다지만, 마냥 자유롭고 허용적인 분위기는 분명 아니다.

공공시설은 물론 사람들이 모이는 어느 곳엘 가나 볼 수 있는 문구가 그것을 증명한다. 공공질서를 위반한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일일이 게시해 놓고 있다.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7만5000원까지, 우리 돈으로 치면 2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이니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하긴 타이완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일찍이 다녀왔다는 지인이 맨 처음 건넨 조언이 바로 '자칫 벌금을 물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자유 중국의 이면에는 치안국가로서의 권위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어쩌면 오랜 독재의 잔재 아닐까 싶다. 타이완 행정원(정부)의 최상위 핵심부서가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내정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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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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