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개정안, '글자'만 바꿨을 뿐이다

[주장]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을 금지한다'는 건 2008년부터 있어 온 말

등록 2013.01.31 09:33수정 2013.01.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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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지난 1월 28일 임명 선후에 상관없이 사립학교의 이사장의 친인척 교장 임명을 금지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 교육과학기술부


"학교법인의 이사장과 친인척 관계의 사람은 이사장의 선임과 학교의 장 임명 간 선후와 관계없이 당해 학교법인이 설치 경영하는 학교의 장에 임명될 수 없도록 함."

지난 28일 교육과학기술부(아래 교과부·장관 이주호)가 입법 예고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내용이다. 사립학교법은 2000년대 내내 교육계와 국회에서 개정 여부를 두고 대립이 일었던 법령이다. 이번에 나온 입법 예고안을 보면 교과부가 이사장의 친인척 교장 임명을 금지함으로써 족벌 사학을 규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법 예고안은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당선인의 사립학교법에 대한 기존 입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상은 달라진 것이 없이 생색내기용이라는 게 밝혀져 빈축을 사고 있다.

새누리당과 사학법인연합회·보수성향의 개신교계 등은 '사유 재산인 사립학교는 국가가 간섭하는 게 옳지 않으니 사학법인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전교조·참교육학부모회 등은 '사학비리척결과 사학 민주화를 위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대선 TV 토론회에서도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이에서 사학법 개정이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학비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크고, 사학비리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사학의 족벌 운영과 이사회의 폐쇄적 운영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사장의 친인척 교장 임명 문제와 개방이사 도입 문제는 사립학교법 개정의 최대 쟁점이었다. 박근혜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은 2005년과 2006년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며, 국회 밖 장외투쟁을 하며 촛불을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정권이 넘어가는 시기에 언뜻 보기에 사립학교의 족벌 운영을 규제하는 듯한 내용의 개정안이 입법 예고돼 의아심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미 금지된 내용을 문구만 바꿔 마치 새로 금지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개정안? 이미 2008년에 이야기된 내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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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법제처의 사립학교법에 대한 법령해석 보도자료. 이미 현행 사립학교법으로도 선후에 상관없이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 임명은 금지돼 있는 것으로 확정돼 있었다. ⓒ 법제처


28일에 입법 예고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이사장과 학교장 임명 선후에 상관없이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잘못 읽으면 이전에는 학교장의 친인척이 이사장으로 임명되는 게 가능했던 것처럼 보인다.

현재 사립학교법 제54조의3(임명의 제한)은 "학교법인의 이사장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관계에 있는 자는 당해 학교법인이 설치 경영하는 학교의 장에 임명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이사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을 받은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은 이사장 친인척의 학교장 임명을 금지하는 것뿐 아니라 학교장 친인척의 이사장 임명도 금지하는 게 입법 취지임이 이미 확정돼 있었다.

지난 2008년 6월, 법제처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3 제3항(학교장 임명의 제한)에 대한 교과부의 법령 해석 질의에 대해 "먼저 임명돼 재임 중인 사립학교장의 배우자·직계 존·비속 등의 관계에 있는 자가 학교 이사장으로 나중에 선임된 경우, 재임 중인 사립학교장이 계속 재임하려면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법령해석 2100-2718)고 밝힌 바 있다. 즉, 이사장과 교장 임명의 선후와 상관없이 친인척 교장 임명은 단서 조항을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금지된다는 이야기다.

이 해석을 통해 법제처는 일부 사립학교가 법률이 선후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는 점을 악용해 이사장이 될 사람의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을 먼저 사립학교장에 임명한 뒤 나중에 이사장의 선임 절차를 밟는 것은 현재 사학법으로도 금지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법제처에 이 법령 해석을 의뢰한 것이 교과부라는 점에서 교과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교과부가 이미 금지된 내용을 문구만 바꿔 새로 금지하는 것처럼 해 족벌 사학을 규제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교과부 개정안, 실효성 없는 '빛 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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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 ⓒ 교육과학기술부

이번에 나온 개정안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개정안과 상관없이 이 조항은 실제 족벌 사학 규제, 특히 이사장 친인척 학교장 임명 금지에 아무런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53조의3에는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 임명을 금지하면서도 단서 조항으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사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이 있는 경우에는 이사장의 친인척이라도 학교장을 맡을 수 있다.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은 대개 실세 중의 실세로 이사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은 없으며, 이사회에서 의결돼 승인 요청을 한 학교장에 대해서 관할청인 시도교육청이 안 된다고 금지할 법적 근거는 없다. 또 이 조항을 근거로 이사장의 친인척이 학교장에 임명되지 않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알려지지 않았다.

2007년 사립학교법 재개정 당시 이사장 친인척 학교장 임명을 금지한 본문 조항이 단서 조항을 통해 완전히 사문화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유가 이런 것이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이 주도해 개정한 사립학교법에는 이 단서 조항이 없었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의 장외투쟁과 사학법인들의 집단 거부로 결국 2007년 재개정되면서 이 단서 조항이 신설됐다.

이번 교과부의 개정안에 대해 전교조는 '족벌 체제 못 건드리고 변죽만 울리는 사학법 개정안'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전교조는 "독소조항 방치한 채 '눈 가리고 아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비판 근거는 사립학교법의 한계에 있다.

이 단서 조항을 삭제하거나 개정하지 않는 한 사학의 족벌 운영을 제한하는 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과부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것과 같다.
#족벌사학 #친인척 이사장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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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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