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에게 인정받는 법, 간단하다!

[서평] 이선웅, 정희창의 <우리말 우리글 묻고 답하기>를 읽고

등록 2013.02.05 13:18수정 2013.02.05 13:18
0
원고료로 응원
두 아이가 교무실에 들어온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다. 녀석들은 성큼성큼 내게로 와 대뜸 묻는다.

"선생님, '돼'와 '되'는 어떻게 구별해요? 글을 쓸 때마다 헷갈려 죽겠어요."


녀석이 다짜고짜 내뱉은 말은 한번 따져보겠다는 듯한 어조다. 우리말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지 모르겠다는 투가 역력하다. 그때 함께 온 녀석이 친구에겐지 내겐지 모르게 말한다.

"'돼'와 '되'는 아무것도 아냐. 난 '안'과 '않'을 가려 쓰는 게 정말 어렵던데…."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작년 한 해도 '어깨동무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생활글 쓰기 활동을 했다. 한 편 두 편 글이 쌓여 갈 때마다 아이들의 글쓰기 감각이 놀라울 정도로 예민해지는 걸 느꼈다. 공책에 첨삭을 하거나 총평을 하면, 아이들은 글쓰기 규범과 관련하여 지적해주는 오류들을 비교적 잘 바꾸는 편이었다.

그런데 쉬이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의 '돼'와 '되', '안'과 '않' 같은 것들이다. '다르다'와 '틀리다', '로서'와 '로써'도 아이들이 혼동을 많이 하는 항목들이다. 첨삭을 할 때마다 말하고, 수업 시간에 힘주어 꼼꼼하게 설명을 해도 도통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심지어 '이 아해들이 내게 일부러 이렇게 하는 건가' 하고 혼자 의심하며 서운해할 때도 있었다.

<우리말 우리글 묻고 답하기>는 소장 국어학자인 이선웅과 정희창이 쓴 책이다. 이 책은 평상시에 우리가 무심결에 잘못 쓰는 말들의 예를 통해, 그 올바른 쓰임새를 간명한 설명과 함께 풀어주고 있다. 위에 소개한 말들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심코 잘못 쓰는 한국어 용례집으로 부를 만하다.


a

이 책은, 쉽게 틀리고 잘못 쓰는 우리말 우리글 표현과 이에 대한 간명한 해설을 함께 실은 일종의 용례집이다. ⓒ 태학사


어문 규범은 필요하면서도 불필요한 모순적인 두 측면을 갖고 있다. 말글살이의 혼란이나, 이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을 생각하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도한 획일주의에 따른 언어 다양성의 감소는 어문 규범의 불필요성에 대한 주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어문 규범은 원리,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그야말로 지혜롭게 결정되어야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제시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국어 어문 규범이란 무엇인가'를 제목으로, 우리말의 어문 규범 7가지, 곧 '한글 맞춤법', '표준어',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법', '표준 발음법', '표준 화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를 개관한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어문 규범인 '표준어' 대목의 한 부분을 보자.

'현대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서울말'(필자 주-'표준어'의 개념)이 서울 토박이의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표준어로 설정된 현대 서울말은 이전의 서울 토박이말에 여러 지역의 말이 뒤섞여 새롭게 형성된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3쪽)

달리 말해 '표준어'에서 규정하는 '현대 서울 말'이 서울 토박이의 말과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서울 토박이말에 여러 지역의 말이 뒤섞여 새롭게 형성된 언어'라고 규정해 놓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표준어를 사정하는 심의위원들인 일부 국어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추상적인 언어 체계가 아닐까.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 말'이라는 '표준어' 개념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부에서는 '국어 어문 규범 묻고 답하기'라는 제목으로, '한글 맞춤법' 이하 7가지의 어문 규범과 관련한 구체적인 용례를, 혼동하여 잘못 쓰기 쉬운 말들을 중심으로 항목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각 항목은 '질문', '답', '해설'의 순서로 되어 있다. '해설' 부분에는 해당 항목과 관련한 문법적인 설명이 구체적인 예들과 함께 간단명료하게 제시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잘못 쓰는 표현이 어떤 이유 때문에 비문법적이고 어문 규범에 맞지 않는지를 짤막한 한 단락의 설명으로도 충분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체제인 것이다.

글머리에 소개한 예로 돌아가 보자. '돼'와 '되'는 말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돼'는 서술어 '되다'의 어간(말의 줄기로 활용할 때 변하지 않는 부분) '되-'*에 어미 '-어'가 결합할 때 생성되는 '되어'가 축약된 말이다.(되-+-어 = 되어 = 돼)

(가) 그렇게 되었으니(=됐으니)/*됬으니** 참 안 되었네(=됐네)/*됬네.
(나) 그렇게만 하면 되어(=돼)/*되.

(가), (나)에서 '*됬으니'와 '*됬네', '*되' 등이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이유는, '먹었으니'와 '먹었네', '먹어'를 '먹ㅆ으니', '먹ㅆ네', '먹'으로 말하거나 쓰면 안 되는 이유와 같다. '먹ㅆ으니'나 '먹ㅆ네'는 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밥을 먹."이라고 말하는 한국인 또한 결코 찾아볼 수 없지 않겠는가.

'안'과 '않' 역시 본말과 줄어든 말 사이의 관계에 얽힌 문제를 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부정 표현이라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안'은 부정 부사 '아니'가 줄어든 말이고, '않'은 '아니하다'라는 부정 서술어의 어간인 '아니하-'가 줄어든 말이다.

(다) 밥을 많이 안/*않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고 잠이 오지 않아요/*안아요.

(다)를 보면, '아니(=안) 먹어서'는 자연스럽지만 '아니하(않) 먹어서'는 매우 부자연스럽다. 또 '잠이 오지 아니해요(←아니하아요)'***는 무난하지만 '잠이 오지 아니아요(←안아요)'로는 절대로 쓸 수 없다. 결국 '돼'와 '되', '안'과 '않'이 헷갈릴 때에는 '돼 = 되어', '않 = 아니하' 공식을 떠올려 해당 문맥에 대입해본 후 그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우리말은 어렵다. 우리말을 글에 쓸 때는 그 어려움이 더욱 커진다. 아이들은 편지나 쪽지 한 장, 짧은 메모를 남길 때도 국어 교사인 내 앞에서 쩔쩔 매곤 한다. 좀더 대담한(?)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우리말, 우리글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녀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어 단어에서 철자 하나만 잘못 써도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많아. 영어는 원어민 발음이 중요하다면서 현지인 영어 교사를 모셔오는 데 많은 돈을 쓰기도 하지. 그런데 그렇게 다른 나라 말의 철자를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작 우리말은 함부로 대하는 이가 많아. 의미만 통하면 되지 맞춤법이며 표준어, 띄어쓰기와 같은 규범이 뭐가 필요하냐면서 말이야. 그럴 때마다 난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어. '그러면 가령 Thank you를 Thang you나 Tank you로 써도 되겠네요? 뭐, 그렇게 말해도 의미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어문 규범을 필요선이나 필요악으로 여기는 건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당신이 대외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면, 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면, 그 규범을 따르는 것이 당신에게 이득이다. 나는 당신이 띄어쓰기나 맞춤법과 같은 어문 규범에 탁월한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면, 지금 분명히 직장 상사로부터 당신의 능력을 (실제 이상으로?) 인정받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와 반대로, 당신의 부하 직원이 제출한 보고서나 기획안의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엉망진창인 경우를 상상해 보라. 그 부하 직원이 과연 예쁘게(?) 보일까. 당신이 그 부하 직원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사서 사무실 책상 위에 놓아 두어야 한다. 물론 시시때때로 이 책을 펼쳐 보기 위해서 말이다. 직장에서 인젇받는 법은 의외로 간단한 법이다!

* 어떤 말의 앞이나 뒤, 혹은 양쪽에 쓰이는 가운데줄표('-')는 그 어떤 말의 앞이나 뒤, 혹은 양쪽에 다른 어떤 말(들)이 반드시 함께 쓰여야 함을 의미하는 문법 기호다.
** 어떤 말 앞에 쓰이는 별표('*')는, 언어학적인 설명에서 그 말이 문법적으로 잘못 되었음을 가리키는 관습적인 부호다.
*** '않아요'는 원래 '아니하아요'가 줄어든 것이다. 우리 국어에서 '아니하아요'는 활용 과정에서 '아니해요'와 같은 불규칙적 형태로 귀결된다. '좋아하여서'나 '공부하여서'가 '좋아해서', '공부해서' 등으로 활용되는 것도 모두 '하다'가 활용되는 과정의 독특한 측면을 말해 준다.

이선웅 · 정희창(2010), 우리말 우리글 묻고 답하기, 태학사. 450쪽. 값 16,000원.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우리글 묻고 답하기

이선웅.정희창 지음,
태학사, 2010


#이선웅, 정희창 #<우리말 우리글 묻고 답하기> #어문 규범 #띄어쓰기 #맞춤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AD

AD

AD

인기기사

  1. 1 군산 갯벌에서 '국외 반출 금지' 식물 발견... 탄성이 나왔다
  2. 2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3. 3 광주 찾는 합천 사람들 "전두환 공원, 국민이 거부권 행사해달라"
  4. 4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두려움에 떨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