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으로 소를 바치는 축제, 왜?

안면도 황도 붕기풍어제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13.02.18 11:05수정 2013.02.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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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를 품고있는 천수만은 길쭉한 안면도가 외해를 가려 아늑하다. 파도는 해수면을 스치는 바람이 키운다. 당연히 천수만은 해수면을 지나는 바람의 궤적이 짧아 파도가 크게 자라지 못한다. 난쟁이 파도들이 밀물과 썰물에 떠다니는 곳이 황도를 품은 천수만 바다다. 순한 바다를 지극 정성 섬기는 황도주민의 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순하고 풍성했다. 800kg의 수소를 잡아 겨울바람에 차가워진 사람들의 마음과 속을 따뜻하게 해줬다.

지난 16일,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에서는 주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가 치러졌다. 황도붕기풍어제다. 이 제사는 1991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황도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안면도의 연육교를 지나자마자 동쪽으로 6km 정도 거리에 있다. 섬이지만 연육교가 있어 차를 가지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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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홍성IC->AB방조제->안면도-->황도 ⓒ 구글지도


안면도와 황도를 잇는 연육교를 지나서 약 1km 정도 직진하면, 초등학교 마당이 있다. 낮 12시께 도착했는데 넓은 마당은 차로 가득차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사물놀이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기대했는데, 조금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펄럭이는 오색 깃발(풍기)과 떼로 모여 있는 사람들 쪽에서 풍겨오는 음식냄새에 서운함이 금방 사라졌다.

잘잘한 간월도 굴로 끓여낸 떡국의 별미

어디 가든 일단 배를 채워야 한다. 뱃속이 허전하면 사물을 똑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면 항상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머릿속에 새겨 놓는 이유다. 흐린 눈으로, 흐린 기억을 하고, 흐린 추억을 가지고 돌아오면, 다음날 머릿속에는 선명한 후회만 가득하다는 것을 옛사람들도 느꼈기에 저런 말이 전해져 내려왔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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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제사가 시작되는 곳. 이곳에서 굴 떡국을 먹었음. ⓒ 허관


음식 냄새의 근원은 떡국이었다. 잘잘한 간월도 굴만 듬뿍 넣고 끓인 떡국이었다. 천수만의 굴은 잘지만 씹으면 입 안 가득 풍기는 바다냄새가 일품이다. 그 유명한 간월도 어리굴젓에 쓰이는 굴이다. 특히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굴이 가장 맛있다. 서해는 수심이 얕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다. 갯바위에 붙어 하루의 반은 바닷물 속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반은 햇빛을 받으며 자라서 천수만의 굴은 맛이 깊다. 조선 초대 왕인 태조 때부터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다.

떡국 두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토속주를 맛봤다. 한눈에 봐도 마을에서 직접 띄운 진갈색의 토속주다. 맛이 달착지근하니 혀에 딱 달라붙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각 지역별로 빚는 술은 여행 시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혀에 달라붙는 맛에 홀려 한두 잔 마시다 보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여행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울려 퍼지던 소리가 트로트에서 장구와 북·꽹과리 소리로 바꿨다. 뱃속이 든든해지고, 맛만 본 술기운이 더해지자 신명난 소리를 따라 갔다. 소리의 진원지는 당집이었다. 당집은 섬의 가장 북쪽에 위치했으며, 주변에 몇백년 된 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 성황당과는 달리 세 개의 건물이 있었다. 왼쪽부터 원당·산제당·창고였다. 원당에는 화려한 다섯 개의 그림(사해용왕장군·삼불·사해오방신장 등)이 있었고, 중앙 산제당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호랑이를 쓰다듬는 백발노인' 그림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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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 황도 당집 ⓒ 허관


안면도 황도 붕기풍어제의 유래
옛날 안개 자욱한 밤이면 지금의 황도 당산에서 밝은 불빛이 발하여 항로를 잃고 표류하는 배들이 무사히 귀향할 수 있게 하여 당집을 짓고 제사를 모시며 신성하게 여겼다 한다.

제의식을 주관하는 제주는 1년간 부정하지 않은 사람으로 선출하며 제물로는 동쪽에서 구한 부정하지 않은 소를 잡아 사용하는데, 돼지는 제신으로 모시는 뱀과 상극이라 해 마을에서 기르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그리고 문의 방향이 정면이 아닌 왼쪽으로 난 맨 마지막 건물이 궁금해서 문을 열어봤다. 피비린내에 조금 전에 먹은 굴이 식도를 따라 역류하는 것을 겨우 밀어 넣었다. 건물 안에는 800kg의 황소를 부위별로 나누고 있었다(이후로 참석자에게 제공되는 소고기 꼬치구이·소고기 삶은 고기·갈비탕 등을 먹지 못했음). 제사의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인 피고사를 치르기 위해 준비하던 중이었다.

첫날 풍기붕어제의 의식 절차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됐다. 소를 잡아 각 부위별로 살을 떼어서 제물로 바치는 피고사, 무당이 당에 오르기 전에 집집마다 풍어와 일 년 동안 안녕을 기원하는 세경굿, 그리고 제물을 앞세워 당집에 오르는 당오르기, 그리고 본격적인 굿이 시작된다(도착했을 때 피고사는 끝났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실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지 못하고, 세경굿과 당오리기 굿의 일부 만 봤다).

집집마다 풍어와 1년 동안 안녕을 기원하는 세경굿·당오르기

세경굿은 원래는 제주 집에서 지냈는데, 현재는 마을회관에서 지냈다. 마을회관은 당집과 약 300미터 떨어져 있다. 마을의 가정마나 안녕과 운수를 기원하는 굿이다. 신명 난 범패소리와 어깨가 들썩이는 장구소리, 이를 이끄는 날카로운 피리소리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무당이 마당에서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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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굿 세경굿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가 마을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 허관


세경굿이 끝나면 사물놀이패를 앞세워 펄럭이는 오색기(붕기)를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당오르기 행사가 이어진다. 붕기는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사용하는 깃발로, 만선의 상징으로 바다를 터전으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겐 희망의 상징이다. 붕기는 대나무 끝에 오색 천을 달았다. 붕기를 들고 마을 한 바퀴 도는데, 마을 곳곳에 있는 전깃줄로 인해 붕기를 든 사람들이 곤혹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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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오르기 마을회관에서 당산까지 가는 길 ⓒ 허관


원래 붕기는 선주들이 들었는데, 지금은 젊은 남성 관광객이 주로 들었다. 선주가 많지 않고, 대나무가 꽤 무겁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집에 도착하기 전 300미터 지점에서 붕기를 들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맨 먼저 당집에 도착하여 붕기를 세우면 그 선주는 그해 만선을 이룬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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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기를 든 관광객 제사행렬을 따라 봉기를 든 관갱객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 허관


당오르기 행사까지 끝나면, 본격적으로 당집에서 굿판이 벌어진다. 접신을 한 무당은 눈동자를 풀어헤치고 희번덕거리며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그 무언가에 괴로운 듯이 몸을 움직이지만, 관광객이 내민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에 희번덕거리던 눈의 초점이 지폐로 꽂힌다. 돈 앞에 허술해 지는 신이 정겹다. 절대적이지 않아서 좋다. 때론 인간에게 군림 당하는 신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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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에서 벌인 한바탕 굿판 당오르기를 끝내고 당집에서 굿을 하고 있다. ⓒ 허관


피고사를 지내기 위해 잡아 놓은 소를 부위별로 삶아 제상에 올리고, 참여한 주민 및 관광객들은 꼬치를 만들어 구워먹었다. 이들은 정겨운 신을 모신 무당과 밤새워 잔치를 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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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꼬치구이 800kg의 소를 잡아 살은 꼬치구이로 구워먹고, 뼈는 삶아서 곰탕으로 뜨끈하게 먹었다. ⓒ 허관


황도붕기풍어제는 1000여 년 동안 이어져 왔다고 한다. 아시아대륙 동쪽 끝 한반도, 그리고 반도에 깨알처럼 붙어있는 황도란 섬에서 이어온 역사다. 인간이 터를 잡고 사는 곳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풍습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 이전에 신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동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실시간 적으로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접하는 정보들은 뿌리가 없는 정보요, 영혼이 없는 정보들이다. 영상 매체를 통해 세계 각지의 갖가지 축제를 볼 수 있지만, 이번에 접한 황도붕기풍어제처럼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오는 기나긴 그리움 같은 것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붕기풍어제 #황도 #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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