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34화

"박근혜, 황제적 통치스타일... 재벌 로비도 안 통할 것"

[e사람]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

등록 2013.02.20 09:44수정 2013.02.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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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박사. ⓒ 권우성


웃음보가 터졌다. 그도, 기자도 그랬다. 그의 말 첫마디는 '박 당선인', '박 대통령'으로 시작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박정희, 아니 박근혜 대통령이…"이라며 겸연쩍은 듯 웃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입에 잘 안붙네"라고 했다. 기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연대 준비위원이다. 그를 안 지도 10년이 넘어선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와 비슷하다. 정 위원 역시 장 교수와 함께 복지국가와 사회적대타협을 꾸준히 이야기해 온 학자다.  지난 2005년 장 교수와 함께 낸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선 노무현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로 규정하면서 날선 비판을 들이대기도 했다.

사회 경제적 양극화 심화는 결국 2007년 보수적 정권 교체를 가져왔다. 이어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서구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고 여야 정치권에선 복지국가를 외쳤다. 보수집권 여당이 빨간색으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다. 장하준 교수는 작년 기자에게 "뒤통수를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라고 할 정도였다.

정승일 위원도 장 교수처럼 입담이 센 편이다. 말투나 어휘 선택도 직설적이다. 박근혜 통치 스타일을 '여왕'과 '황제'에 빗대고, 야당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었다. 지난 15일 오후 그와의 만남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서울시 마포구의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다.

"매년 27조 원 복지에 돈 뿌려지면 분위기 확 달라져"

- 요즘 복지국가 이야기 들으면 느낌이 어떠세요.
"(웃으며) 글쎄. 우리가 복지국가 떠들고 한 것이 2005년인가? 그랬죠. (기자가 2003년에 만났을 때도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자) 아, 그랬나요? 7년, 10년 만에 이것을 하겠다고 선거에 나서서… 뭐, 놀라울 뿐이죠."

- 이 정도 빨리 정치권에서 받아서 (복지국가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
"그렇죠. 예전 책(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도 그랬지만, '쉽게 안될 것이다. 하지만 (복지국가가) 가야할 길이다'고 했지, 이렇게 빨리 진행될 거라고는…."


- 요즘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에서 공약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공약은 어떻게 보세요.
"공약 자체로만 보면 파격적이죠. 물론 민주당 공약도 있지만. 그것은 우선 논외로 치더라도 1년 평균 27조 원을 복지에 쓴다는 건데, 아마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가면 아마 연 35조 원에 달하는 돈이 복지에 쓰일 거예요."

정 위원은 "아직 우리 국민이 제대로 된 복지 혜택을 누려보지 않아서 반신반의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신 매년 수십조 원의 복지관련 예산이 집행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보수언론을 비롯해 정부 주변에서 공약 수정을 들고 나오는 이유도 돈 때문인데요.
"박 당선인이 이야기 했잖아요. 공약은 지켜야 한다고. 요즘 모든 노인들에게 20만 원씩 준다는 것을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원래대로 해야 돼요. 삼성 이건희 회장도 20만 원을 받아야죠. 물론 이 회장에겐 20만 원이 돈도 아닐 수 있겠지만. 부자들도 그에 걸맞게 세금을 내고 복지혜택을 누려야죠."

- 과연 그 돈을 다 댈 수 있느냐는 건데요.
"분명히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돈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까 증세가 필요하죠. 물론 당장은 못 하겠죠. 국민이 자신이 낸 세금으로 복지를 누릴 시간이 필요하죠. 아마 정권 출범하고 2~3년 후면 본격적인 증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박근혜는 여왕스타일... 시장만능의 이명박정부와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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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박사. ⓒ 권우성


- 박 당선인쪽에서도 일단 증세없이 공약을 추진하겠다고는 했죠."(고개를 끄덕이며) 증세를 하려면 법에 손을 대야 해요. 근데 지금 정치권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지금 나오는 여러가지 세금혜택 등을 줄인다는 거 아니에요? 직장인 신용카드 공제혜택부터 시작해서 기업들에 줬던 연구개발 세금감면 등…. 이게 사실상 증세나 마찬가지예요."

- 요즘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 인사들이 발표되는데.
"아직 다 발표가 안 됐죠? (그렇다고 하자) 근데 지금 인수위나 이렇게 보면 유럽의 황제, 여왕 스타일이예요. 박 당선인 스스로 독일 여성총리인 메르켈씨를 좋아한다고 하고, 독일식 경제와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나름 생각도 보이고."

정 위원은 독일에서 오래 공부했다. 서울대를 다니다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쳐 91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10여 년 가까이 베를린에서 머물면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땄다. 박근혜 정부의 독일 모델 벤치마킹에 대해 그는 "비스마르크 시대의 복지국가 정도만 해도 큰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독일 비스마르크는 말 그대로 철혈 제상이라고 하잖아요. 전통 보수주의자인 그는 19세기말 전쟁을 통해 중화학공업으로 산업화를 이끌었죠. 그러면서 노동자계층의 노동권 인정 등을 비롯해 사회보장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고요. 사람을 쓰는 방식도 그렇고요."

그는 "박근혜 스타일은 국가가 주도하는 황제, 여왕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적 관점에서 복지국가를 설정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보수정권이던 김영삼정부나 현재의 이명박 정권과도 분명 다른 길을 갈 거라고도 했다.

- 어떤 면에서 다른 길을 간다는 건가요.
"박근혜 사람들 보면 전통 보수주의 색깔이 분명하죠. 이번에 초기 인사를 보면 알잖아요. 군인과 법조인 중심으로 가는 것이나…. 과거 보수정권은 시장만능주의였죠. 김영삼시대의 세계화나 이후 규제완화, 개방, 개혁 등이 다 그렇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와는 다를  거라 보죠."

- 아까 황제스타일이라고 했잖아요. 보수적인 복지국가 건설로 간다고도 했고요.
"(곧장) 그렇죠. 그게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등 이미 상당 수준 복지국가를 이룬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그래요. 우리 전통 보수주의자들의 뿌리는 유교에 있잖아요. 유교에선 적어도 백성이 굶주리면 임금이, 나라님이 구해주는 거죠. 시장만능은 아니죠. 배 고프면 개인이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그냥 놔두죠."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황제적 통치...재벌 로비도 안 통할 것"

- 보수주의와 유교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쪽은 기독교, 가톨릭의 가르침이 있죠. 이번에 히트를 친 <레미제라블>에서 나오는 신부님 있잖아요. 장발장을 형제라고 하죠. 연대의 개념이죠. 기독교 가르침을 유럽식 복지국가의 뿌리로 볼 수 있죠."

정 위원은 "우리도 민족공동체라는 민족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가족공동체 등 이를 토대로 한 보수적인 관점의 복지국가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식 통치 스타일을 정신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황제적 통치의 모습으로 그렸다.

- 매번 정권초기 때마다 재벌개혁 외치다가 흐지부지 되곤 했는데요.
"얼마 전 최태원 SK 회장이 구속됐잖아요.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아마 전보다 분명 엄해질 거예요. 재벌들의 로비도 아마 안 통할 거예요. (웃으면서) 여왕은 재벌 위에 군림하니까. 전통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외치는 게 법과 질서잖아요."

- 그러니까요. 마찬가지로 노동자 파업이나 단체행동 등에 대해서도 강하게 나올 수 있겠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거예요. 지금 박근혜 정부 인선 등에서 빠진 게 그거예요. 노동이 없어요. 지금 인수위에 노동전문가가 없잖아요. 내각도 아마 정통 보수 관료 중심으로 채워질텐데…. 복지는 보이는데 노동정책이 안 보이죠."

- 유럽쪽 복지의 밑바탕이 대체로 정치권과 노동, 자본 사이의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잖아요.
"독일도 그렇죠. 독일식 경제나 복지시스템의 절반 정도는 노동문제예요. 노사 간 대타협이 없었다면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복지국가는 없었다고 봐야죠. 독일 뿐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도 그래요."

그는 박근혜 정부가 노사정 간 대타협을 끄집어내길 기대했다. 물론 쉽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특히 현행 노동관련법에서 꼭 고쳐야할 것이 있다고 했다.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기업 등에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해놓은 법은 없애야 한다고 했다. 정 위원은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를 시장 논리로 억압하는 것 자체가 기본권 유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전통 건전 보수세력이라면 해야죠. 예를 들면 이거예요. 선비가 '왕이 잘못했다'고 상소를 올리면 나중에 귀양을 보낼 수 있지요. 그렇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대대로 돈을 갚도록 하고 또 못 갚으면 노비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고. 이것이 요즘 노동현장에서 엄청난 민사상 손배소로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는 거 아니에요. 이건 인간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죠. 전통 보수주의 철학이나 사상에도 맞지 않죠."

마지막으로 야당에 할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걱정된다"고 했다. "희망이나 미래가 잘 안 보인다"고도 했다. 유럽의 옛 역사를 들어가며 보수의 장기집권 가능성도 조심스레 내다봤다. 그는 "박근혜정부가 복지정책을 추진할수록 중도성향의 민주당은 설 땅이 없다"고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민주당이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거예요. 지금처럼 있다간 계속 위축될 것이고… 박근혜식 복지에 대항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요. 좀더 왼쪽으로 가는 수 밖에. 또 앞으로 재벌문제 등으로 싸울 일도 없을 거예요. 복지문제로 싸우겠죠.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정치지형도 보수와 자유주의가 합쳐질 것이고 좀더 진보적인 색채가 나올수 밖에 없죠. 민주당이 어떻게 가야할지는 잘 판단해야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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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박사. ⓒ 권우성


#복지국가 #정승일 #박근혜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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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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