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 가더라도 우리 함께 역사의 정도를 걷자

지난 대선을 뒤돌아보며

등록 2013.02.24 15:11수정 2013.02.2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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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란 사실이 요즘처럼 고맙게 느껴질 때가 없다. 지난해 12월, 그토록 뜨겁던 정권교체의 열망도, 대선패배의 충격과 허탈함도 이제 우리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 삶의 치열한 전장터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난 대선 석패의 아쉬움과 그 역사적 함의를 곱씹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도 번쇄한지 모르겠다. 공지영 작가의 지적처럼 어쩌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야말로 억세게 운좋게 태어났던 '실수'가 아니었던가 하고 탄식하던 그의 자조가 가슴에 와닿는다.

과거 수십년 동안 군사독재 정권을 겪으면서 온갖 고초를 당한 뭍 선각자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굴절된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면 어디서 부터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야할지 막막하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은 "역사란 결코 건너뜀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엄중한 사실이다. 익히 알려진 바 대로 박정희의 뼛속 깊은 친일행각은 일제 패망 후 친일파 청산에 투철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하고, 박근혜의 당선은 독재자의 환생이란 역사의 업보로 준열히 우리를 꾸짖고 있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가 진정한 의미의 혁명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박정희의 5·16 쿠테타에 좌절되었듯, 80년 5·18 광주민주화 항쟁도 전두환의 12·12쿠테타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87년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기화로 또 다시 한번 민주세력의 총결집을 이루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지만 양 김의 뼈아픈 분열로 패배하고 만다. 그 후 양 김의 대권욕은 결국 수구 기득권 세력을 등에 업고 정권 창출에 성공했지만, 익히 알다시피 그 개혁이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나는 최근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불행 중 하나는 87년 양김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그 후 양김의 '야합'에 의한 어설픈 정권 교체였다고 생각한다. 기실 청산되었어야만 했던 세력과 손을 맞잡고 개혁을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신의 잇속만을 챙겨온 반민족 수구세력과의 결탁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바로 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선언과 다름 없었다. 생각해 보라. 바로 엊그제까지 군부 종식을 목놓아 외치며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들이, 하루 아침에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자들과 손잡고 한솥밥을 먹는다는 게 도무지 말이 되는가. 

우리 현대사에서 90년 3당 합당의 기만성과 몰역사성은 두고두고 비판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는 정당의 이해 득실에 따른 이합집산의 정치공학문제 이전에,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관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우리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의미했다. 하룻밤 사이에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대립구도가 무너지고, 바야흐로 우리 사회는 양심과 윤리가 총체적으로 붕괴된 도덕 불감증의 사회로 전락하고 만다. 소위 말해서 '정치허무주의'가 만연하고 그 파급력은 특히 젊은이들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섰던 학생운동이 그 후 하향곡선으로 추락함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YS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의 3당 합당을 합리화 했다. 그러나 그 후 우리 사회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저항과 반발로 인해 어정쩡한 개혁 흉내만 내다가, 그 사이 우리 국민들은 개혁 피로감으로 제풀에 지쳐갔다. 그 집단 최면의 절정은 어쩌면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정치 검찰이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로 스스로의 방어막을 쳤던 사실이다. 개혁과 청산의 최일순위에 놓인 자들에게 개혁의 칼자루를 맡긴 꼴이었다. 지금까지 29만 원으로 버티는 전두환의 배짱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논리의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대표적인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폐기를 극렬히 반대하던 기득권세력의 본질은, 바로 민족을 배반한 친일세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제시대 효과적인 식민통치와 독립투사들을 탄압하는데 악용된 '치안 유지법'이 지금의 국가보안법의 모태가 되었다고 하니, 해방된 민족으로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 대표적인 악법을 개정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의 전도된 역사를 실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훈은 긴 안목으로 역사의 정도를 걷지 못한  우리의 조급증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YS는 3당 합당이 아니라, 또한 DJ는 자민련과의 선거연합이 아니라, 민주세력의 완전한 결집을 위해 고투했어야 했고, 비록 몇 년이 더 지체되더라도 결연히 기다려야만 했다. 그 엄혹한 유신시절도 겪어 왔었는데, 더군다나 직선제 개헌도 이룬 마당에, 무엇이 그토록 조급했었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번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YS 의 자택을 방문하여 그의 지지를 호소했을 때, 나는 YS의 곤혹스런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민주투사로서의 자신의 전 존재 기반을 배반했던 3당 합당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그를 옭죄고 있었던 업보였던 것이다.

역사에 대한 가정처럼 부질없는 것도 없다지만, 만일 노태우 정권 후 또 한 번의 수구세력의 집권을 허용했더라도, 그 후 민주세력의 온전한 결집으로 민주정부가 성공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남미의 베네수엘라 수준의 개혁은 이루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랬더라면 지금 '어디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냐'라는 자조적 비아냥은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박근혜의 당선은 민주세력의 어설픈 개혁 흉내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다고 본다.


우리 사회 빈부격차의 양극화가 절정에 달한 지금, 경제 민주화가 시대의 화두가 된 현실의 강팍한 삶 속에서도, 바람직한 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과 갈망은 분명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 민주화가 법먹여 주냐는 자조적 회의는 철저한 민주주의 실천과 불이행에 대한 조소이지, 우리의 경제적 욕망을 채우지 못한 데 대한 진보세력을 향한 원망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인간은 돈과 물질을 뛰어넘는 영혼을 가진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동안 '민주화가 밥먹여 주었냐'는 주장은 모든 걸 돈으로 평가하는 경제 만능주의자들이 다수 민중을 폄훼하는 모욕적인 언사임이 분명하다. 끼니를 걱정하던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오늘, 우리는 우리 역사가 정도를 벗어날 때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당혹스러운 역사의 인과응보를 지금 박근혜의 당선으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의 실패를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 만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혹여 문재인 후보가 51%로의 지지로 당선되었다고 한들, 이 정도의 지지세력의 한계만으로는 큰 개혁의 추동을 얻기 힘드리라 생각된다. 또 다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비록 더디 가더라도 (설령 몇 십년이 걸리더라도) '역사의 정도'만이 난마처럼 얽힌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유일한 길임을 믿는다. 끝으로 혜암 스님이 해인 총림 방장으로 계셨을 때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주먹만한 실패 뒤엔 주먹만한 성취가 있고, 산 덩어리 만한 실패뒤엔 산 덩어리만한 성공이 있는 법이다." 

낙담한 민주개혁세력이 깊게 새겨야 할 경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선 #민주주의 #진보세력 #친일파 #역사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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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없는자들 편에 같이 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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