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 낳듯, 물고기도...

[서평] <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

등록 2013.03.02 12:21수정 2013.03.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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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 겉표지 ⓒ 다른세상

꺽지의 산란 시기는 5~6월경이다. 꺽지 수컷은 주둥이와 지느러미로 바위나 자갈을 깨끗하게 청소해 산란장을 만든다. 그런 후 암컷의 배에 머리를 부딪쳐 산란장으로 유인해 알을 낳게 한 후 정자를 뿌려 수정한다. 이후 암컷은 떠나고 수컷만 남아 알을 지키며 지느러미를 흔들어 산소를 공급하는 등과 같은 극진한 정성으로 알을 돌본다.

몸통과 지느러미의 검은 무늬가 특징인 감돌고기는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종이다. 이 감돌고기는 대부분의 물고기들처럼 산란장을 만들지 않고 남의 산란장, 즉 꺽지의 산란장에 몰래 알을 낳는다고 한다.


꺽지가 산란장을 만들면 감돌고기 수컷들은 몸을 검게 변화시켜 꺽지의 산란장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가 꺽지가 알을 낳은 직후 여러 마리의 감돌고기들이 꺽지의 산란장을 침범한다. 워낙 거세게 밀쳐내도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드는 데는 방도가 없다. 꺽지가 잠시 몰리는 때를 기다렸던 감돌고기 암컷은 재빨리 알을 낳고 암컷을 에워쌌던 수컷들은 재빨리 정액을 뿌려 수정하고 만다.

감돌고기의 알은 꺽지의 알보다 작고 노랗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극진한 정성을 쏟는 수컷 꺽지의 보살핌 덕분에 감돌고기의 알들은 꺽지의 알들(부화까지 14일 정도)보다 3~4일 먼저 부화해 산란장을 떠난다.

감돌고기처럼 자신의 산란장을 만들지 않고 남의 산란장에 주인 모르게 슬쩍 알을 낳아 기르는 것을 탁란이라고 한다. 이 탁란은 우리에게는 그간 뻐꾸기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다. 물고기의 탁란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또한 전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감돌고기의 독특한 탁란 현상은 먼저 생태계에 자리 잡고 있던 기존의 물고기인, 우리나라 민물고기 생태계의 가장 위에 있는 포식자인 꺽지와 공존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전략'이다. 참고로 감돌고기만이 아니라 가는돌고기와 돌고기도 꺽지의 산란장에 탁란을 하는데 감돌고기와 돌고기는 우리나라 하천에서만 사는 우리 토종 물고기다.

물고기의 탁란 연구
물고기의 탁란은 전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현상이란다. 1986년 탕가니카 호수(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어류를 통해 물고기의 탁란이 처음으로 발견·보고되었는데 그다지 흔하진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2003년에 이 책의 저자인 김익수 교수 연구팀에 의해 감돌고기의 탁란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4년에 이완옥 박사에 의해 가는돌고기도 꺽지의 산란장에 탁란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2011년) 군산대학교 해양생물공학과 어류연구팀이 감돌고기와 가는돌고기 탁란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어류 탁란의 진화 방향성에 대한 단서를 최초로 제공'한 것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뉴스를 바탕으로 정리/김현자)
뻐꾸기의 탁란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인지, 뻐꾸기를 얌체동물이라며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뭇사람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말할 때 빗대어져 쓰이기 한다.

책에서 만난 물고기의 탁란이 신기해 검색해보니 어떤 사람이 '친노'와 '열린우리당'(글쓴이의 표현)을 '뻐꾸기 탁란족'이라며 부정적으로 말하는 글이 보여 좀 씁쓸하게 읽었다.

뻐꾸기에게도 탁란을 생존전략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사정과 우리가 잘 모르는 생태계의 어떤 비밀이,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우리들이 감히 우리의 기준으로 어찌 평가할 수 없는 그런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탁란'하면 자연스럽게 뻐꾸기 생각이 날 정도로 뻐꾸기의 탁란이 워낙 유명하지만, 원앙과 흰뺨오리, 벙어리뻐꾸기, 두견새, 매사촌 등도 탁란을 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또 이처럼 물고기들도 탁란을 한다. 그러니 애먼 뻐꾸기만 얌체 운운하며 욕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솔한 사고방식과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큰가시고기는 무엇보다 특이한 산란 습성으로 주목받는다. 나는 하천에 올라온 큰가시고기의 행동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하천에 올라온 큰가시고기는 암수로 나뉘어 행동하였다. 수컷은 큰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있는 나무껍질이나 식물조각을 모아 돔 모양의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바닥의 자갈이나 진흙 속에 주둥이를 밀어 넣고 흙을 좌우로 밀어내어 얕은 구멍을 만든 뒤, 그 속에 물풀이나 나무 조각을 채우고 콩팥에서 나오는 끈끈한 점액으로 이들을 붙여 집을 만들었다. 둥지는 수심 30~40cm 되는 곳에서 모래와 진흙이 섞인 바닥에 길이 4cm, 너비 2cm 크기로 만드는데, 많은 곳은 1평방m 2~3개까지 발견되었다."-<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에서

<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다른세상 펴냄)는 평생 민물고기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는 물고기 박사 김익수의 생물에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참종개를 발견, '익수키미아 코리엔시스'란 자신의 이름을 딴 학명을 붙인 이 분야 권위자다. (외에도 17종의 새로운 민물고기를 발견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옛 문헌과 유물 속 물고기'를 근거로 우리 조상들의 물고기에 대한 인을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 하천에서 만날 수 있는 물고기들과 밥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고기, 신비한 생태를 가진 물고기 등 우리 하천과 강에서 살고 있는 우리 물고기들의 흥미진진한 생태적 특성들을 풍성하게 들려준다.

특히 2장~4장에는 이처럼 탁란을 하는 감돌고기나 돔 모양의 집을 지어 산란을 하는 큰가시고기 이야기 외에 조개 속에 알을 낳는 각시붕어, 아담한 생김새와 달리 짝짓기와 알의 안전한 부화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버들붕어, 신비로운 뱀장어의 일생, 산란하고 부화하기에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세력권 싸움을 하는 은어와 그를 이용한 인간들의 기묘한 낚시법, 공중으로 튀어 올라 떨어지는 곤충을 낚아먹는 열목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고기들의 생태적 특성과 서식지 이야기 등 무척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다.

5장~6장에선 안타깝게도 이미 사라져버렸거나 현재 사라질 위기에 있는 우리 토종 물고기들과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이미 사라져버린 우리 토종 물고기들 자료. 외국학자들의 우리 토종 민물고기 연구와 보유 표본 실태 등을 해당 물고기의 생태적 특성과 함께 들려준다.

이어 7장에선 단군 이래 가장 큰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 때문에 처참한 죽음을 맞은 4대강에서 살고 있던 물고기들과 그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4대강 인근의 생태와 지난해 환경단체들의 큰 반발을 일으킨 녹조현상과 물고기들의 떼죽음 사례와 망가진 하천 복원 사례 등을 소개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공존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금과 같은 환경파괴와 그로인한 기후변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될 경우 2050년의 아이들은 물고기란 생물을 책이나 박물관 등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거란다. 그런데 이는 지구 전체가 처한 환경사정을 고려했을 때만의 예상이다. 우리는 이에 4대강  공사란 자연의 입장에선 사상최악의 재난이라고 할 토목공사까지 강행한 처지다. 그런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이 특히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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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일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국책사업인 '4대강 건설' 평가 관련 기사 일부 ⓒ 포털사이트 뉴스 캡쳐


최근 새 정부 출범 이후 '4대강 사업 재평가' 관련 기사들이 시간을 다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가 어떤 내일을 살 수 있을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라 관심 있게 찾아 읽는 편인데, 어떤 기사 중에 "댐을 건설하면 녹조현상이 생기는 것처럼 4대강에서 발생하는 녹조문제도 공사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식해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라고 한 정부 관계자가 말했다는 부분이 보여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다.

4대강 공사로 인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인식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풀고 해결해야하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강 생태계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생물이다. 물고기가 죽어간다는 것은 먹이사슬에서 물고기보다 하위에 있는 생물들, 말하자면 그 수역에 있는 모둔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죽음의 강'이 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우리는 다른 수중생물들의 죽음은 눈으로 보지 못하여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물고기들의 떼죽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물속의 독극물이나 산소 부족 등, 보이지 않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알게 된다. 물고기는 물속에 사는 생물들의 서식 상황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깃대종인 셈이다. 물고기 떼죽음은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들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경고를 하고 있다."-<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에서


4대강 공사로 수많은 물고기들이 죽었다. 2012년 10월 17일, 금강 상류의 왕진교 근처에서부터 부여군 석성면 일대까지 20km에 이르는 곳에서 떠오른 물고기 사체만 15kg 자루로 200개, 약 5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죽었다. 이후 10월 24일에는 낙동강 하류에서 누치, 쏘가리 등 1000여 마리의 사체가 떠올랐고 이어 메기와 붕어 등의 사체가 떠올랐다. 이처럼 그나마 알려진 물고기들의 죽음 그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가려진 죽음들이 있을까. 

우리는 흔히 물이 맑아야 물고기가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와 달리 사실은 다양한 물고기들이 물을 맑게 한다고 한다. 쉽고 당연하게 쓰고 마시기 때문에 그 근원과 가치를 잊기 쉬운 우리 앞의 물은 실은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만난 수많은 물고기들 덕분인 것이다. 우리는 그 고마움을 알기는커녕 막대한 돈을 들여 죽이고 있는 것이고.

평생 우리 물고기 연구에 검질긴 노력을 해온 어류학자의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4대강 공사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는 그래서 좀 무겁게 읽혔다. 우리 물고기들의 흥미롭고 놀라운 생태를 알면 알아갈수록 우리의 물고기들이 지금도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을 거란 엄연한 현실 때문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ㅣ김익수 | 다른세상 | 2012년 12월 14일ㅣ17,000

그 강에는 물고기가 산다 - 김익수 교수의 민물고기 이야기

김익수 지음,
다른세상, 2012


#물고기 #꺽지 #감돌고기 #탁란 #김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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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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