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국사의 길' 걸어보세요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인문학 탐방길

등록 2013.03.02 20:03수정 2013.03.0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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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스러움이 남아있는 창성사 절터 ⓒ 김홍범


광교산 '국사의 길'은 고려시대 두 명의 국사가 기거했던 광교산에 있는 창성사지(진각국사(眞覺國師):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보물 제14호)와 서봉사지(현오국사(玄悟國師):현오국사탑비 보물 제9호)를 이어주는 길이다.


주요한 루트는 상광교버스종점(창성교)에서 내려 고은시인 자택을 시작으로 창성사->두꺼비바위약수터(가칭)->창성사지->439계단->토끼재->종루봉(비로봉)->김준용장군전승비->지네절터->양지재->물의계곡(가칭)->서봉사지->너울길->성복동사지->백년수 약수터->생태연결녹지->문암골에 이르는 길이며 총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광교산 '국사의 길' 주요 루트 ⓒ 김홍범


상광교버스종점(13번)에서 내려 고은시인 광교산 자택을 구경 후 조금 내려와 포도농원 앞 물길을 건너 산을 타고 40여분 올라가면 창성사지에 도달할 수 있다. 창성사지 가는 길에는 2기의 돌들을 쌓아놓은 소원탑이 있고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있다.

창성사지 가는 길은 두 개의 물길을 건너게 된다. 첫 번째 물길을 건널 때와 두 번째 물길을 건널 때의 주변 풍경은 그 분위기가 다르다. 두 번째 물길을 건너기 전에는 기괴한 모양의 나무나 절을 하는 모습의 나무가 있는가 하면 뿔이 달린 기괴한 모습의 나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마지막 물길을 건너면 그러한 분위기는 사라진다.

창성사지에는 3기의 우물터가 있고, 복숭아나무가 주변 곳곳에 있으며, 절터 안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하나는 수령 250년이 되어 보이며 곳곳엔 장대석과, 기단석, 주초석 등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고려 말의 국사 화엄종사였던 명승인 진각국사(1305~1382)의 사리탑과 함께 건립된 대각원조탑비(보물 제14호)가 이곳에 있었으며 지금은 화홍문에서 삼일상고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옮겨놓았다.


창성사지에서 종루봉(비로봉)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중간에 바로 종루봉(비로봉)으로 오르는 길과 439계단과 토끼재를 거쳐 종루봉(비로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있다. 창성사지에서 토끼재를 거쳐 종루봉까지는 30여분 소요된다. 종루봉에서 양지재 방향으로 10여분 내려가면 청나라 군대를 물리친 김준용장군 전승비가 있다.

김준용장군전승비에서 장군바위를 끼고 돌아가면 지네절터로 갈 수 있다. 지네절터는 깊숙한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지만 장군모양의 큰 바위와 바위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풍경이 볼만하며 두 줄기의 큰 바위줄기가 이곳을 향하고 있어 신비한 기운마저 느낄 수 있다. 특히 이곳엔 대부분의 나무가 바위 위에서 자란다.

지네절터에서 바로 산줄기를 타고 10여분 내려가면 평평한 큰길이 나오게 된다. 좌측방향으로 10여분 걸어가면 양지재로 올라가는 길이다.

양지재는 광교산 주요한 등산로와 함께 등산객들이 많이 오가는 곳으로 등산객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형제봉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양지재에서 아래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30분 정도 내려가면 좌측으로 서봉사지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15분 걸어가면 서봉사지에 다다를 수 있다.

서봉사지를 둘러보고 천년약수터 방향으로 가면 중간에 성복동사지를 지나 20여분 더 걸어가면 등산길 교차로에서 100년수 약수터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곳부터는 생태연결녹지가 나오며 10여분 더 걸어가면 문암골에 도착할 수 있다. 국사의 길에 의미를 더하고자 한다면 수원천을 따라 화홍문에 위치한 진각국사비를 만나보는 것도 국사의 길의 의미를 더할 수 있다.

가칭 '국사의 길'은 앞으로 지역의 문화콘텐츠가 중요해지는 시점에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길로 우리시대 뿐만 아니라 다음세대에도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좋은 길이다.

또한 지역의 명소로 개발된다면 숙박할 수 있는 체류형 관광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인 요소도 두루 가지고 있어 앞으로 국내를 찾는 관광객에게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지역으로서도 좋은 콘텐츠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 주요 볼거리 (주요루트)

비로봉에서 바라본 광교산 풍경 ⓒ 김홍범


1. 광교산 ('국사의 길'을 품은 산)

경기도 남부권 일원을 포용하면서 경기산하의 모체라 할 수 있는 한남정맥은 경기도의 주요한 산맥으로 경기수부지역인 수원을 비롯한 용인, 광주, 과천, 안양, 의왕, 부천, 시흥, 김포, 화성, 오산, 평택, 안성 일원을 포용하고 있다.

경기도청이 서울에 있었던 1960년대까지는 삼각산이 경기도의 진산으로 자리를 지켰을지 모르나 이젠 광교산(해발 582m)이 경기도의 진산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자면 수없이 많다.

진산이라는 단어는 원래는 풍수지리적인 용어로 하나의 산 자체만으로는 진산이란 칭호를 받지 못한다. 풍수에서 말하는 진산은 도읍을 정함에 있어 공간 배치에서 그 주된 역할을 하는 산으로 우리는 진산 또는 주산이라고 한다.

그럼에 있어 경기남부 주요 도시들을 포용하는 한남정맥의 주봉인 광교산은 경기수부도시 수원을 비롯해 용인, 성남, 의왕 등 경기남부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현재의 경기도 중부권 중심 산하의 상징이자 진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광교산이 경기도의 진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도 광교산은 하고 있다는데 있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가시기 전 나라가 여진족에 의해 전란을 겪어야 했던 병자호란시기 김준용 장군에 의해 광교산 대첩과 같은 나라의 고난과 함께 해온 민족의 성산이자 경기도의 주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원과, 화성시, 오산시, 평택시까지 물줄기로 이어주는 황구지천의 근원을 이루는 수원천의 물주기 또한 광교산을 발원지로 하고 있으며 광교산 일대는 여든아홉 개의 절터와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질정도로 영험한 산이기도 하다.

후백제시절 왕건이 전투에서 회군하는 길에 이곳 광악산(광교산의 옛 이름) 행궁에서 군사들을 위로할 때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여겨 그때부터 광교산(光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 이곳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조선 말기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도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광교산은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도 수천년 우리민족의 문화와 생활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불교문화의 근간을 이뤘던 산이자, 나라의 위기시 전란으로 부터 이겨낸 나라의 고난과 함께해온 민족의 성산이며, 다양한 자연생태의 보고이며 수원화성이라는 문화와 지금의 수원의 태생적 동기를 만들어 주었던 근원지로서의 광교산(光敎山)은 경기도의 진산이라 칭할 수있다.

지금도 광교산 물주기를 따라 오르다보면 곳곳에 절터로 추정되는 터나 기와, 토기, 자기 조각 등이 널려져 있으며, 주춧돌과 기단, 석축, 우물터, 영험이 있는 바위 등 곳곳엔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고은시인 사택 ⓒ 김홍범


2, 고은시인 사택 (3월 완공 예정)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이 향후 수원에서 작품활동에 매진하게 될 광교산 사택은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51 일원 옛 이안과원장 사택을 리모델링해 2013년부터 활용할 예정이다.

광교산 13번 종점에서 절터약수터 가는 길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좌측에 위치해 있으며 본명은 고은태로 1933년 전라북도 옥구 출생. 대한민국 대표적 참여 시인이자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52년 군산 동국사에 출가해 일초의 법명으로 승려가 돼 10여 년간을 참선과 방랑을 하며 시를 썼다.

사택 규모는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고은 시인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집필실과 미술작업실, 서고, 응접실, 침실 등으로 꾸며진다. 차후 시나 인문학 강의와 연계한다면 21세기 문화시대를 맞아 인문학 탐방길의 출발지로도 각광 받을 수 있을 듯싶다.

3. 광교산 창성사

광교산 종점에 위치해 있으며 1960년대 법성사로 창건했으나 광교산이 고려시대부터 불교의 성지였고 89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창성사의 복원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2010년 혜찬 스님에 의해 광교산 창성사로 개칭했다고 한다. 현재는 고은시인 자택(예정)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에는 염험함이 깃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선바위 등이 있다.

4. 창성교

13번 종점 입구에 있는 다리며 1997년 완공됐다.

국사의 길 첫번째 물길 ⓒ 김홍범


5. 폭포농원(식당) 첫 번째 물길

국내의 사찰을 들어가다 보면 꼭 물길을 건너 경내로 들어서게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불교에서도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의 의미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죽은 자의 마지막 찬송으로 '요단강 건너서 다시 만나자'는 대목이 있으며 힌두교에서는 강에서 몸을 씻으며 죄가 없어진다는 의미도 있다. 또한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물은 성수로도 쓰이며 세례의식이 있을 때 쓰이곤 한다.

이곳은 상광교버스 종점에서 안내소 맞은편에 물길을 건너가는 작은 길이 있는데 그 길로 올라가야 창성사지로 갈 수 있다.

인사하는 나무 ⓒ 김홍범


6. 인사하는 나무

창성사지를 오르는 길에 보면 유난히 다양한 모양의 나무가 서있다. 특히 180도로 굽어 방문객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곳에서 맞절로 목례와 함께 자연에게 예와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창성사 오르는 길에서 만난 우물터(약수터) ⓒ 김홍범


7. 우물터(약수터)

창성사지 오르는 길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으며 오르는 길에 가장 대표적인 큰 바위가 두 개 있다. 두 번째 바위 아래엔 물을 마실 수 있는 우물터(약수터)가 있다.

등산객이 오르며 돌을 쌓아 올리는 소원탑은 길의 안내 역할도 한다 ⓒ 김홍범


8. 두 곳의 소원탑

이곳을 오르는 등산객들에게 조금씩 만들어져 있는 소원탑은 오르는 길에 두 곳 있다.

창성사지 절터 수령 200년이 넘는 나무가 이곳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 김홍범


9. 창성사지 (향토유적 제4호)

창성사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도호부 불우조"에 광교산에 창성사가 있었다는 것과 진각국사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언제 창건되고 언제 폐사 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현재까지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각국사는 알다시피 1382년 창성사에 주석 하다 입적 하였고 20여개 절의 주지를 지냈으며, 영주 부석사를 중창한 것을 비롯하여 전국의 큰절을 창건, 중창 하는데 진력 하였다.
창성사 규모와 건물은 영주의 부석사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이곳엔 수령 200여년이 넘는 소나무가 두 그루 있고, 세 곳에 우물터가 있어 당시 규모를 가늠케 되며 창성사지를 오르는 길에도 절터로 보이는 곳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토끼재로 오르는 439계단 우리는 이 계단은 고행의 계단이라 불렀다 ⓒ 김홍범


10. 439계단과 토끼재

창성사지에서 위쪽으로 오르다보면 종루봉(비로봉)으로 오르는 길과 439계단을 통해 토끼재로 오르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439계단을 통해 토끼재를 거쳐 가면 종루봉(비로봉)으로 보다 완만한 코스로 오를 수 있다.

내면의 경지가 높은 비로봉에서 바라본 광교산 절경 ⓒ 김홍범


11. 광교산 종루봉(비로봉) 488m

'비로'는 불교에서 경지가 '높다'는 뜻으로 쓰이며 '비로(毘盧)자나'는 모든 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의 몸의 빛을 뜻한다. 광교산 최고봉인 시루봉 보다 낮은데 '비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흥미로우며 이곳을 사이에 두고 진각국사의 창성사지와 현오국사의 서봉사지 그리고 지네절터가 모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용인지역은 물론 수원도심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병자호란때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던 김준용장군 전승비 ⓒ 김홍범


12. 김준용장군전승비와 장군바위

병자호란때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던 김준용장군 전승비로 김준용은 선조 41년(1608)에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인조 14년(1636년) 전라병마 절도사로 재임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이끌고 광교산에서 중국 청나라 10만 대군을 무찌르고 청태종의 부마 양고리와 두 재앙을 사살하고 무찌르는 공을 세웠다. 정조 18년(1794) 수원성 축성의 총 책임을 맡았던 영의정 채제공이 그의 업적을 전해 듣고 전승터였던 광교산 바위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비엔 '충양공김준용장군전승지(忠襄公金俊龍將軍戰勝地)'라 새기고, 그 좌우에 '병자호란공제호남병근왕지차살청삼대장(丙子胡亂公提湖南兵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는 전승 내용이 들어있다.

지네절터에서 바라본 광교산 ⓒ 김홍범


13. 지네절터

광교산의 전설처럼 남아있는 지네절터는 김준용장군비를 끼고 돌아가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장군모양의 큰 바위가 있고 밑에는 샘물터가 샘솟는 곳이 있으며 지금도 주춧돌 기단 등이 남아있다. 지네절터는 살생을 금하는 불교 교리에 따라 엄청나게 불어난 지네를 죽이지 못하고 승려들이 절을 떠났다는 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엔 두 곳에 우물터가 있으며 이곳의 나무들은 바위에서 자라는 자연의 신비함도 갖춰져 있다.

특히 거대한 두 줄기의 바위산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어 기운이 쌔며 광교산에서도 가장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진달래가 가장 먼저 핀다고 하는 양지재 ⓒ 김홍범


14. 양지재

양지재는 종루봉(비로봉)과 형제봉 사이에 있으며 지네절터에서 내려와 평평한 길을 10여분 걸어가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광교산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진달래가 가장 먼저 핀다고 한다. 광교산 주요 등산로의 중간쉼터이기도 한 이곳 맞은편엔 형제봉이 있어 그 풍경이 광교산의 운치를 더한다.

광교산엔 이름모를 절터가 무수히 많다 ⓒ 김홍범


15. 서봉사지 오르는 길 이름모를 절터들

양지재에서 물길을 타고 내려와 서봉사지로 향하는 길엔 이름모를 절터들이 무수히 많다. 조금만 평평한 곳이 보이면 대부분 암자가 있었던 곳으로 보였다. 이곳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얘기가 하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절에서 떠내려 오는 쌀뜨물이 10리나 흘러내려와 왜적이 물을 따라 올라가서 절을 불태웠다고 전해질 만큼 이곳은 그 규모에서도 큰 사찰이었다.

서봉사지 보물9호 현오국사비 진각국사탑비와는 달리 현오국사비는 그 자리에 위치해 있다 ⓒ 김홍범


16. 서봉사지 보물9호 현오국사비

서봉사 현오국사탑비는 용인의 불교문화 유적으로, 서봉사의 사지(寺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이 발견되어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봉사는 1185년(명종 15) 현오국사(玄悟國師) 종린(宗璘)의 비(碑)가 세워지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창성사지와는 달리 곳곳에 당시 규모를 짐작케 하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산림욕을 만끽할 수 있는 용인 산너울길 ⓒ 김홍범


17. 용인 산너울길

서봉사지를 나와 천년약수터로 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은 형제봉을 중심으로 산중턱을 너울너울 돌아가는 길이다. 또한 길이 아름다워 삼림욕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성복동사지와 약수터 이곳을 오는 길에도 이름모를 절터가 몇군데 있다 ⓒ 김홍범


18. 성복동사지와 이름모를 절터들

형제봉을 끼고 산너울길을 돌다보면 형제봉 아래 양지바른 곳에 절터가 하나 있다. 지금은 성복동사지로 불리며 산포유물로 보아 고려후기에서 조선후기까지 운영되었던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의 절터도 당시 큰 규모를 갖춘 사찰로 추정된다. 절터엔 약수터도 있다.

100년수 약수터의 물맛이 좋다 또한 인근엔 광교산에서 물맛이 가장 좋다고 하는 천년약수터도 있다 ⓒ 김홍범


19. 100년수 약수터

성복동사지에서 100년수 약수터 방향으로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약수터로 대체로 이곳의 약수물은 물맛이 좋다.




문암골 자연생태의 길 ⓒ 김홍범


20. 문암골 자연생태의 길

문암골은 자연생태우수 마을이다. 자연환경이 잘 보전되면서 지역주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특히 생태계가 살아있는 자연풍광을 갖춘 마을로 시민뿐만 아니라 학생 등의 자연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반딧불이가 사는 마을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마을의 문화를 잘 알린다면 지역의 명소로도 급부상 할 것으로 보인다.


21. 수원천

문암골에서 도로로 나오면 맞은편엔 광교저수지가 있다. 광교공원부터 수원천을 따라 수원화성 화홍문까지 물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수원천은 자연생태하천으로 발원지를 광교산으로 하고 있다.



진각국사(眞覺國師):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보물 제14호 ⓒ 김홍범


22. 진각국사(眞覺國師):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보물 제14호


고려 말의 승려 진각국사 천희(千熙, 1307~1385)의 탑비이다.


진각국사 천희는 충숙왕 6년(1319) 반룡사로 출가 충숙왕 12년에 승과에 급제하여 김생사·부인사·개태사 등에 머물렀다. 나라의 스승인 국사로 책봉받고 국사로서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이 되었으며, 1372년부터 10여년간 부석사 주지 무량수전과 조사전 등 전각을 크게 중창 1382년(우왕 8) 6월 16일 수원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어떤 사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 내용을 돌 등에 새겨 세운 것으로, 불교에서는 선종이 유행하면서 승려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 부도와 함께 건립되었다. 이 비는 직사각형 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우진각 지붕 모양의 개석(蓋石)을 얹었다.  비문은 이색(李穡)이 지었고, 글씨는 권주(權鑄)가 썼다.






※ 광교산 '국사의 길' 가는 방법

대중교통 : 수원역에서 상광교동 가는 13번 버스가 7분 간격(06:05)~23:00)으로 다닌다. 버스는 광교산 상광교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자가용 : 1번 국도 따라서 지지대고개 넘어서 5km 직진하면 수원교육청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을 한 후 계속 직진 경기대3거리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꺽어 광교저수지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된다. 평일엔 상광교 버스종점 부근까지 갈 수 있으나 주말엔 자가용은 통제를 하기 때문에 광교공원 주차장에 세워두고 버스를 타는게 편하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수원시티넷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사의 길 #광교산 #수원 #수원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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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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