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산은 모스크바보다도 더 먼곳에 있습니다

고향의 뒷산, 운주산을 잊지 못하는 한 재일동포 시인에게

등록 2013.03.03 15:59수정 2013.03.0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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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김두권 선생님 전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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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권 선생(88세) ⓒ 박도

김두권 선생님! 저는 고국 강원도에 사는 박도입니다.  선생님께서 지난해 11월 5일 보내주신 옥서를 받고, 또 올 2월 13일에 보내주신 선생님의 시집 <운주산>과 옥서를 받고도, 이제야 답장 올림을 용서하십시오.

사실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라는 책의 원고를 집필한다고, 거기에 온 정신을 쏟느라 좀 바쁘기도 했습니다. 지난 연말에 집필을 끝낸 다음 올 초에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고, 지난 주말 2교를 보았으니 빠르면 이달 중순이나 하순쯤이면 책이 출간될 듯합니다.

엊그제는 3.1절로 저는 모처럼 텔레비전의 여러 특집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고, 문득 도쿄에 계시는 <종소리> 시인회 회원들과 김 선생님에게 받은 시집과 옥서 등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즉시 답장을 쓰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작심을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깁니다. 그 무엇이 저로 하여금 이렇게 늦게야 답장을 쓰게 하였거나 주저케 하였는지는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섭섭하셨을 겁니다. 구구한 변명의 말씀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오늘 아침 이 답장을 쓰고자 선생님의 옥서와 보내주신 시집 <운주산>을 다시 펼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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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의 <운주산> ⓒ 산도깨비산악회


운주산

                - 김두권


운주산
어찌하여 요즘 자꾸
내 눈앞에 떠오른 것일까

잊지 못할 고향의 산아
가만히 그 이름만 외워도
수려한 그 모습 안겨오네

향수에 젖는
내 고향의 못 잊을 산아
얼마니 많은 해와 달이 지나갔는가
내 고향에 돌아가면
맨 먼저 운주에 오른다고 다짐하던
청춘시절 그때로부터

운주는 사철이 아름답지만
여름의 운주가 제일이야
어릴 적 여름방학이 되면
너의 푸른 자락에 해종일 뒹굴었더라
철이랑 순이랑 어깨동무들과 함께

우거진 잡목 밑
졸졸 흘러내리는 계류를 따라
참나물을 캐던 일
지금도 이 눈에 선히 떠오르네
참나물 그 향기 이제도
바람결 따라 풍겨 오는 듯

해 솟는 운주
해 지는 운주
가없이 푸른 너의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에 꿈을 실어 보내며
내 꿈을 키우던 곳

운주는 첫 발자국이 찍힌 산
내가 찾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어머니 숨결이 어려 있는 내 고향

요즘 꿈속에 자꾸 찾아오네
고향의 운주
정다운 운주

고향 갈 차비를 다그치란 말인가
아, 운주가 나를 부른다
운주가 나를 부른다 (1991년)

어린 시절 고향의 뒷산

저는 대한해협을 건너 도쿄 한복판에서 어린 시절 고향의 산을 그리는 선생님의 망향 사연을 매우 느꺼운 마음으로 읽은 뒤 인터넷에서 '운주산'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과 영천시 자양면, 임고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과 영천시 자양면, 임고면의 경계 상에 있다. 해발 806.2m로, 포항 지역을 관통하는 낙동정맥의 한 줄기를 이룬다. 멀리서 보면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보여 '운주산(雲柱山)'이라고 하였다. 산세가 험난해 방어지로 적합하여 임진왜란 때 백암 김륵의 부대가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하여 왜적과 항전을 벌였으며, 1910년대 산 아래에 있던 안국사가 포항 지역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陳)의 근거지로 알려져 일제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산 중턱에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어 전쟁 때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된 동굴이 있다. [두산백과]

재일 종소리 회원들이 펴낸 <치마저고리>라는 시집의 날개에서 김두권 선생의 약력도 보았습니다. 1925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교토 인문학원 수학, 교토조선학교 교원, 교무주임, 문예동 중앙사무국장, 부위원장 역임… 등

선생님께서 팔십 평생 그리면서도 끝내 찾아보지 못하는 고향은 사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닙니다. 도쿄 나리타나 하네다 공항에서 두 시간이면 김해국제공항에 닿을 수 있고, 거기서 승용차를 타면 두 시간 내에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곧 이른 아침 도쿄에서 출발하면 점심은 운주산 아랫마을에서 고향의 산 산채비빔밥을 드시고, 저녁은 도쿄 신주쿠 선생 댁에서 드실 수 있도록 세상은 참으로 좁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의 고향 운주산은 선생님께는 모스크바보다도, 남극 킹 조지 섬보다도 더 먼 곳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10여 년간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여러 곳을 근현대사 자료 수집 목적으로, 독립전사들의 유적지를 답사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조국 한반도에만 있을 줄 알았던 38선, 휴전선의 철조망이 곳곳에 쳐있음을 알고 매우 가슴 아팠습니다.

내 조국 백두산도 가까운 길을 두고서 중국을 거쳐 멀리 찾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작가의 신분으로 2005년 북한을 방문하여 묘향산, 백두산을 찾아가 봤지만 아직도 일천만 이산가족 가운데는 세계 방방곡곡은 다 둘러보아도 당신 고향 뒷산을 찾지 가지 못한 아픈 실향민이 부지기 수로 끝내 눈을 감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수리스크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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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권 선생의 편지 ⓒ 박도

         - 박  도

내 십 수 년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해외를 누벼보니까

나라와 겨레를 두 조각낸 38선(휴전선)은
한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베이징에도 있었고,
도쿄에도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워싱턴에도 있었다.

어느 영웅이 나타나
두 조각 세 조각 네 조각으로 찢어진
나라와 겨레의 속살에 깊이 새겨진
38선을 지우고,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낼 수 있을까?

저무는 10월 하순 한낮
극동 러시아 우수리스크 역에서
내 아들이나 조카와 생김새가 똑같은
구릿빛 얼굴의 노동자를 만났다.

나의 안내자는
그들이 시베리아 삼림지대에서 일하는
북한 벌목공들이라고 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들에게 다가가
몇 가지 물었더니 한 노동자가
북한 여기저기에서 온 림업부 소속이라고
대답은 하는데
수많은 눈초리가 경계의 빛으로
우리 두 사람을 죄고 있었다.

나는 그를 덥석 껴안고 싶었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날카로운 철조망이
여러 겹 드리워 있음을 알아차리고
못내 뒷걸음질을 하고는
우수리스크 역 육교에 올라 그들 뒷모습만
카메라에 담았다

내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연해주의 북풍이 몹시 찼다.

위의 글은 제가 2009년 10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그분의 뒤를 좇으며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시크 역에서 쓴 것입니다.

김두권 선생님! 우리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는 이 글에 담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난해 시지 <종소리> 50호 발행 도교 기념모임에 다녀오고도 후배 문인의 충고로 관계 당국에 여행 및 참가신고를 하였습니다. 왜 제 동포를 만나고도 굳이 신고를 해야 하는지 왜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었느냐고 저에게 묻거나 따지시지 말기 바랍니다.

다만 제가 이 답장을 드리는 것은 선생님과 저는 평생 같은 모국어를 사랑하고 후세들에게 이를 가르쳤으며, 지금도 이 모국어로 작품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저 사이는 자그마한 벽도 없기에 만난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 나라와 겨레가 정치적인 이유로 분단이 되고 서로 이산가족이 되어도 후세들이 같은 모국어를 쓴다면 그 언젠가는 그들이 반드시 반갑게 합쳐질 것입니다. 그 거룩한 일에 선생과 저는 가장 앞장선 일꾼입니다. 저는 거기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며 여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마 선생님도 그러실 줄 압니다.

지난해 6월 9일 도쿄에서 열린  시지 <종소리> 50호 발행 기념모임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축하의 한 마디와 선생님의 시 <나그네> 일부를 소개하면서 제 글월 줄입니다.

정말 여러분 장하시고 대단하신 분들로 존경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가령 어떤 국민이 노예의 신분이 되더라도 자기 나라의 국어를 건실하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자기가 갇힌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러분이 종전 후 70년이 다 될 때까지 우리 얼을 지키고 모국어를 지키는 그 뜨거운 조국애에 정말 고개 숙여 경의를 드립니다. 솔직히 저는 여러분의 그 뜨거운 조국애에 감동하여 오늘 여기에 왔습니다.  종소리에 실린 시들은 모두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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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운주산>표지 ⓒ 박도

            - 김두권

…………
타향살이
백년을 한다고 하여
타향이 고향이 될 수는 없고

고향을 떠나
천년을 산다고 하여
고향이 타향으로 될 수는 없거니

나그네는 오늘도 가네
가슴속에 지닌 불 고이 간직하고
이역의 하늘 아래 바람은 사나와도

나그네는 쉼 없이 가네
한번 시작한 길을 끝까지 간다네
가다가 길섶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길을 가네
가고 또 가네
끝없이 가네

되찾고야 말 고향이 있기에
영원히 마음 놓고 살
제 집이 기다리기에 (1987년)

김두권 선생님을 비롯한 시지 <종소리> 회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부디 해외에서 옥체 건강하시옵소서.

2013년 3월 3일
고국 강원도 원주 치악산 아래에서 박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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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장군봉에서 바라본 해돋이 ⓒ 박도


#운주산 #재일동포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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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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