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국' 베네수엘라는 어떻게 무상교육 하나

'혁명의 아이콘' 차베스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

등록 2013.03.07 13:03수정 2013.03.0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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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해왔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평등과 정의가 살아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이다.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석유를 실제 소유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 계급사회인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국가가 부유하다는 것과 국민들이 잘사는 것과는 항상 별개의 일이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외환위기를 겪은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주도하는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신자유주의식 경제 처방을 받는다. 석유 및 공공부문 민영화, 사회보장제도 축소 등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조치로 인해 빈부격차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물가가 폭등해 많은 사람들이 IMF와 정부의 정책에 분노했는데, 그 모순이 폭발하는 사건이 1989년 2월에 일어난다.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일어난 봉기라는 의미를 가진 카라카소(Caracazo) 사건인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이다.

이전까지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정치가 가장 안정된 국가로 평가됐다. AD와 COPEI라는 두 당이 번갈아 집권을 하면서 소위 미국식 양당정치가 확립되었고, 1950년대 이후로는 남미에서 흔히 일어나는 쿠데타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실상은 AD, COPEI 로 대표되는 보수 정당들이 1958년에 맺은 Punto Fijo 협약을 통해 기만적인 보수대연합을 실시해서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나눠먹고 수십 년간 민중들은 정치에서 소외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계속된 모순들은 카라카소 민중봉기를 통해서 한꺼번에 터져버렸고, 기존의 보수 정치세력들은 민중들에게 총탄을 퍼부은 것이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선거로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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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 당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유세 모습 ⓒ 연합뉴스/EPA


이전부터 군부 내에 MBR-200(볼리바르 혁명운동 200)이라는 혁명세력을 조직하고 있던 우고 차베스(당시 중령)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1992년 2월에 당시 학살 사태의 주범인 페레즈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려는 좌익 쿠데타를 시도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쿠데타는 실패하게 되고 차베스를 포함한 주도세력들은 감옥에 갇힌다. 얼마 후 페레즈 대통령은 부패혐의로 탄핵을 당하게 되고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라파엘 칼데라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1992년에 쿠데타를 시도한 군인들을 석방하게 된다.

당시 차베스 및 좌익 쿠데타 군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특히 차베스에 대한 지지는 대단해서 기존 보수 정당 COPEI 소속 대통령 선거 후보가, 차베스가 감옥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정도였다.

석방된 차베스는 군부 내의 혁명세력과 진보적인 민간운동 세력을 규합하여 MVR(제5공화국운동)을 창당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56%에 이르는 최다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AD와 COPEI 두 보수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던 베네수엘라는 차베스가 이끄는 MVR에 의해서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된 것이다.

차베스는 당선되자마자 공약으로 내걸었던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제헌의회 소집하는 이유는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역할은 기존의 의회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통해서 제헌의회 소집을 승인받은 후 제헌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를 통해 131명의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제헌의회 의원 중 차베스 지지파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제헌의회를 통해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라 불릴만한 '볼리바리안 헌법'을 만들게 된다. 대통령 소환제를 포함한 수많은 권리를 민중들에게 부여하는 이 헌법을 통해 베네수엘라는 이전의 제4공화국 틀을 벗어던지고 국명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꾼 제5공화국으로 들어서게 된다.

수많은 권리를 민중들에게 부여하는 '볼리바리안 헌법'

그렇다면 헌법 개정 수준이 아니라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제헌의회를 소집한다는 혁명적 발상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헌법이 발효되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한 민주적 체계를 세우는 의미를 가진다.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면 개혁적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개정조차 안 되고 있는 현실이나, 개혁적 법안들이 기득권 세력의 방해 때문에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모습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는 제헌의회를 소집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였다. 헌법 자체를 새로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낡은 헌법과 법률들은 한꺼번에 폐기되었다. 제헌의회 의원 대부분이 진보적 인사들로 구성되었고, 제헌의회를 통해 새로 제정된 '볼리바리안 헌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적인 내용을 담게 되었다. 이렇게 제정된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헌법의 기초위에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률들이 제정되었다.

둘째, 근본적인 정치권력의 교체가 가능한 국면을 만든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진영은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의 국가기구를 한꺼번에 접수하고 세력관계를 단번에 역전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구헌법이 폐기되고 신헌법이 발효되는 순간 차베스는 대통령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변경된다. 왜냐면, 차베스는 구헌법을 근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차베스가 대통령일 법적 근거가 없다. 그것은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의회도 해산된다. 사법부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국가기구는 구헌법의 폐기와 함께 해체된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서 새로운 국가기구를 건설한다. 차베스 진영은 새로운 헌법에 의거해서 2000년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 등 모든 선거를 한꺼번에 새로 치렀으며, 사법부도 새로 구성을 하게 되었다. 차베스 진영이 모든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차베스가 추진한 제헌의회 소집의 핵심은 대통령 선거 승리의 공간을 이용해 전면적 사회개조를 수행하는 혁명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 있다. 바로 그 시점에서 민중은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게 속한 정치권력을 자신의 손아귀로 틀어쥐게 되는 것이다. 1999년에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이미 한 해 전인 1998년에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상황이었고, 기존의 보수 세력이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제헌의회를 통해 의회, 행정부 및 사법부 등의 국가기구를 판갈이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1998년에 형성된 보수적인 의회가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제대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베스는 1970년대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보수적 의회에 발목 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결국은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실패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차베스는 선거에 참여하면서 지속적으로 제헌의회 전술을 강하게 주장해왔고 대선에 당선된 후에 실제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선거를 통한 제헌의회 전술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치권력을 획득했다고 해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경제권력이야말로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부의 원천은 석유이다. 하지만 차베스 정부 이전에 베네수엘라 석유에서 나오는 부는 제국주의 석유자본과 그에 기생하는 베네수엘라 자본가 계급의 전유물일 뿐이었다. 사상 유례 없는 빈부격차와 빈곤층의 증가는 부의 재분배를 총기에 의지할 정도로 사회를 망가지게 만들었다.

차베스는 집권 후 제헌의회를 통해 국가권력을 틀어쥔 이후 석유산업 국유화 추진하면서 경제권력을 소수의 자본가 계급에게서 다수의 대중에게로 옮겨오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석유산업 국유화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국민 대중을 위한 복지정책을 과감하게 펼쳐나갔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계속된 차베스의 혁명

필자는 2007년 초에 베네수엘라를 방문했다. 1인당 GDP가 대한민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MRI를 무료로 촬영해주고 암치료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무상으로 치료를 하는 의료시스템을 목격하고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베네수엘라는 공교육 부문에서도 입시를 철폐하고 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생계비 문제로 대학진학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장학금으로 생계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비교해 1인당 GDP가 두 배가 넘는 대한민국은 과연 재원이 없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못 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주요 산업 부문의 국유화 외에도 협동조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일터의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는 노동자 협동조합 설립을 적극 장려했다. 차베스 이전인 1998년에는 협동조합이 1000개도 안 됐는데 2009년 초 현재 26만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다. 투표로 자기 회사의 대표자를 선출하며 회사의 중요한 결정은 조합원 총회를 통해 승인된다. 이 협동조합기업의 활성화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노동자들은 일터의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98년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50.4%에 달했다. 이 수치는 2009년 28.5%로 떨어졌다. 차베스 집권 이전 1000명당 25명 수준이었던 영아사망률도 10여년이 지난 현재 절반 정도로 낮아졌으며, 같은 기간 인구 1만명당 의사 수는 3배 이상 늘어났다. 양적인 성장세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베네수엘라의 1인당 연간 가계소비지출액은 3679달러(약 390만원)로 13년 전보다 1.5배가량 많아졌다. 또한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베네수엘라는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예상보다 높은 5.5%의 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론 일련의 개혁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2002년에는 석유 국유화 조치에 반발한 기득권 세력과 군부의 쿠데타 시도로 차베스 대통령이 납치돼 살해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으며 2004년 8월에는 차베스 반대파 주도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소환투표를 진행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베네수엘라 민중과 함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건설해왔다. 민중들은 계속된 선거에서 차베스, 그리고 MVR의 발전적 해체를 통해 건설된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차베스의 혁명은 베네수엘라의 국경 안에만 멈추지 않았다. 차베스의 주도로 남미국가들은 남미국가연합을 결성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IMF에 대항하여 2007년 12월 9일에 '남미은행(Banco del Sur)'을 출범시켰다. 남미 은행과 더불어 달러에 대항하는 남미통화 추진도 탄력을 얻고 있다.

2008년 11월 26일에 남미의 좌파 성향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한편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공동통화존'을 결성하는 데 합의했다. 서방 언론을 통하지 않고 세계에 남미의 목소리를 스스로 전하기 위해 텔레수르Telesur 방송국을 설립하고,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남미국가들이 남미판 나토(NATO) 격인 '남미안보협의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모든 움직임에서 차베스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를 뒤흔든 혁명가의 죽음

21세기 사회주의 혁명가, 혹은 21세기 독재자로 세간에서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길고 긴 암투병 끝에 서거했다. 필자가 베네수엘라를 방문했을 때 한국과 13시간이나 차이 나는 시차 때문에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뀐 시차 때문에 고질병인 지루성 피부염이 심해져 본의 아니게 베네수엘라 무상의료의 혜택이 외국인에게도 제공된다는 것을 직접 내 몸으로 경험했다. 어쨌든 낮과 밤이 정반대로 바뀐 시차만큼이나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국제문제를 다루는 국내언론의 방식을 보면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예컨대 베네수엘라 문제를 다룰 때 국내 언론은 보수와 개혁 및 진보를 막론하고 미국이나 서방 언론을 인용해서 보도를 한다. 그러다보니 소위 국내 문제에 있어서는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언론과 한겨레, 경향 등의 개혁적 언론에서 논조의 차이가 나지만, 국제문제에 있어서는 거의 논조 차이가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남미 국가들이 이런 왜곡된 미디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힘을 합쳐 '텔레수르(Telesur)'라는 방송국을 만들어 전 세계로 전파를 쏘지만, 국내 주류 언론에서 텔레수르의 소식을 인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세계를 뒤흔든 혁명가의 죽음 앞에서 자판이나 두들기며 그 무슨 논평이니 전망이니 하는 주제 넘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차베스라는 지도자는 떠났지만 베네수엘라의 민중들은 더욱 단결해서 현재의 혁명 과정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차베스의 그 유명한 말을 전하고 싶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중남미 #라틴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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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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