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에 넋을 잃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21] 나일강 거슬러 오르기

등록 2013.03.07 10:55수정 2013.03.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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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도로를 따라 다시 기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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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톨게이트 ⓒ 이상기


알렉산드리아 운하 주변으로는 공장지대와 유전지대가 보인다. 사실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려면 농사만으론 안 된다. 제조업으로 불리는 2차 산업, 상업과 서비스로 불리는 3차 산업이 있어야 도시민들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운하 주변으론 무성한 갈대숲을 볼 수 있다. 갈대는 물가에 사는 식물 중 생명력이 가장 강하다. 그래서 극지방부터 열대지방까지 전 세계적으로 자생한다.


운하를 지나자 기찻길이 나오고, 잠시 후 알렉산드리아 경계를 알리는 헬레니즘 양식의 톨게이트도 만난다.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면서 이제 본격적인 사막도로가 시작된다. 1박2일의 알렉산드리아 답사를 마치고 차는 기자를 향해 내달린다. 중간 중간 마을과 도시 그리고 농장을 볼 수 있다. 마을에는 모스크가 눈에 띄고, 농장에는 오렌지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가끔 연기를 뿜어대는 공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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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 이상기


우리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중간에 휴게소에 들른다. 나는 잠시 CD와 DVD 전문점에 들러 이집트의 음악에 대해 알아본다. 진열된 DVD 중에는 옴 콜숨(Om Kolthoum)의 것이 가장 많다. 20장짜리 전집도 나와 있다. 그 외에 파리드(Faryd), 사디야(Sahdia), 와르다(Warda)의 것들도 보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콜숨은 이집트 최고의 여가수였다. 1898년 나일강 하구의 다칼리아(Dakahlia) 주에서 태어나 1975년 카이로에서 죽었다. 그녀는 1940/50년대 가수와 배우로 이슬람 세계에서 황금기를 누렸다.

콜숨은 1920년대 아랍의 고전음악을 배웠고, 훌륭한 작곡가와 연주가 그리고 후원자를 만나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었다. 1923년 카이로에 정착했고, 1932년 아랍궁정극장 공연에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중동 전역으로의 리사이틀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때 방문한 도시가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베이루트, 트리폴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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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콜숨의 1968년 모습 ⓒ 이상기


그녀의 노래 중 유명한 것으로는 1941년 발표한 라크 알 하비브(Raq el Habib: 연인의 마음)가 있다. 1946년에는 종교적인 내용을 고전 아랍 스타일로 노래한 살루 칼비(Salou Qalbi: 내 마음에 물어봐)가 큰 성공을 거뒀다. 1949년에는 이슬람교를 창시한 선지자 무함마드를 노래한  울리다 엘 후다(Woulida el Houda: 선지자가 태어나셨다)로 전 아랍세계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50년대 들어 고전 아랍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 페르시아 출신 시인 오마르 카얌(Omar Khayyam)의 루바이야트(Rubaiyat: 4행시)를 아랍어로 번역해 불렀다. 이들 노래에는 쾌락과 속죄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1966년에 나온 알-아트랄(Al-Atlal: 폐허)가 유명하다.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콜숨의 대표적인 노래로 불린다. 그녀의 음악은 아랍권 차원을 넘어 전 세계 차원에서 사랑받고 있다. 쟝 폴 샤르트르, 살바도르 달리, 마리아 칼라스, 밥 딜론 등이 그녀의 음악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게소 음악 DVD점을 나오니 이집트인 기사 아흐메드(Ahmed)가 강수찬, 신영길 선생과 어울린다. 큰 키에 우람한 체구를 한 아흐메드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관광 내내 우리 차 운전을 했는데, 아주 여유 있고 차분하게 운전을 잘 한다. 나는 그들 셋을 사진에 담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세차기사가 자신의 사진도 찍어달라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상인의 기질이 있는지, 붙임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 붙임성이 관광객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자 피라미드와 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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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리는 기자의 피라미드 ⓒ 이상기


다시 버스를 타고 기자 시내로 접어드니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운다. 기자 톨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기자 IT 신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오라클 등 유명 IT회사의 건물이 보인다. 이러한 회사들 때문에 기자에 일자리가 생기고, 그로 인해 기자의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 기자의 인구는 362만으로, 카이로,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이집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상업구역이 시작된다. 까르푸, 댄디 등 유명 쇼핑몰이 보인다.

우리는 기자 역으로 가기 전 저녁을 먹기 위해 피라미드 지역으로 간다. 저녁이 되자 피라미드 주변으로 새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다. 석양이 어스름하게 내리는 저녁, 삼각뿔 모양의 피라미드 위로 새들이 나는 모습이 향수를 자극한다. 새로 하여금 자신의 소식을 고향에 전하고자 했던 수많은 여행객들의 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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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역 풍경 ⓒ 이상기


저녁을 먹고 우리는 기자역으로 향한다. 기자역으로 들어가는 길 주변에는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우리 버스는 기자역 앞까지 가서 우릴 내려준다. 그 덕에 상인들의 호객행위를 비켜갈 수 있었다. 기자역 앞에는 나일강을 따라 이어질 6박7일 여행의 가이드 김은희씨가 나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아주 당찬 모습의 그녀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한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역 안으로 들어간다. 인구가 360만이나 되는 도시의 역치고는 규모나 시설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기차가 올 때까지 한 시간 쯤 기다려야 한다.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가 8시에 출발하기 때문이다. 마침 플래트홈 옆자리에 이집트 현지인이 앉아 그와 대화를 좀 나눌 수 있었다. 아스완에서 향수, 향신료, 파피루스 등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무하마드 파룩이라는 젊은이로, 카이로에 일이 있어 왔다 아스완으로 돌아가는 중이란다. 아스완에 가면 꼭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준다. 아스완에서 1박2일을 머물게 되는데, 그게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기차를 타고 기자에서 아스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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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일출 1 ⓒ 이상기


기차는 30분쯤 늦은 8시 30분에 출발한다. 2인 1실의 침대칸을 사용하게 되는데, 대부분 관광객을 위한 침대 열차다. 차에서는 특별히 할 게 없어 짐을 풀고 글과 사진을 정리한 다음 잠자리에 든다. 이 기차는 밤새도록 나일강을 따라 달려 오전 8시 아스완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러므로 12시간을 꼬박 달리는 셈이다. 기자에서 아스완까지 거리가 900㎞쯤 되니 시속 80㎞쯤 달리는 셈이 된다.

중간에 베니 수에프, 엘 미니아, 아슈트, 소하그, 케나, 룩소르, 에드푸 등에 잠깐씩 정차한다. 어느 정도 잠을 잤는지, 밖이 어슴프레해진다. 시간을 보니 벌써 아침 6시다. 창문의 커튼을 여니 나일강 변으로 시골 마을이 펼쳐진다. 나는 잠시 밖으로 나가 역무원에게 우리가 어디쯤 지나가고 있는지 물어본다. 우리 기차가 지금 디쉬나(Dishna) 지역을 지나간다고 말한다. 지도를 보니 아직 룩소르도 못 왔다. 그럼 우리의 목적지 아스완까지 8시에 도착하기는 틀린 것 같다. 왜냐하면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거리가 200㎞는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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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일출 2 ⓒ 이상기


6시 45분 마카드마(Makhadma)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동쪽으로부터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일출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창문이 열리질 않는다. 아쉽지만 창문을 통해 일출을 볼 수밖에 없다. 농경지 너머 길게 이어진 낮은 산 위로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마을과 농경지를 따라 안개가 낮게 깔렸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있다. 태양은 점점 붉게 타오르고 하늘이 모두 발갛게 물든다. 장엄하고도 멋지다. 기차가 이동을 하니 계속해서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붉은 해가 서서히 야산과 수풀 위로 올라온다. 새벽을 알리는 뜨거운 몸짓이다. 그렇지만 보고 또 보아도 뜨겁지 않다. 해가 꽤나 올라왔는데도 하늘은 여전히 붉다. 열대지방이기 때문인가 보다. 정말 멋진 일출이다. 우리는 이번 이집트 답사 기간 동안 몇 번의 일출과 석양을 보았다. 그 중 가장 멋진 장면이 아부심벨 가는 길에 만난 일출이었고, 두 번째로 멋진 장면이 이곳 마카드마에서 본 일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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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일출 3 ⓒ 이상기


해가 떠오르자 기차는 케나(Qena)를 지난다. 케나에 기차가 잠시 선다. 나는 플래트홈으로 내려가 본다.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은 검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의 표정은 순박하고 가식이 없어 보인다. 기찻길을 따라 농토가 이어지며, 그 뒤로 나일강이 흐르고, 나일강 너머로는 나무 하나 없는 낮은 민둥산이 이어진다. 가끔씩 나일강이 보이고, 그곳에서 노는 백로도 볼 수 있다. 

기차가 이제 나일강 크루즈의 기착지 룩소르(Luxor: 이집트식 El Uqsur)로 들어선다. 나일강 크루즈는 일반적으로 아스완에서 이곳 룩소르까지 운행된다.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수도였고 당시 이름은 테베였다. 기차가 이곳에서 약 5분 정도 정차하기 때문에, 나는 잠시 플래트홈에 내려 룩소르의 분위기를 살펴본다. 가방과 상자에 짐을 싼 승객들이 의자에 앉아 기차를 기다린다. 철길 너머로는 이슬람 사원과 콥틱 교회도 보인다. 도시가 상당히 큼을 알 수 있다. 자료를 보니 룩소르의 인구는 50만 명 정도다.

아스완 첫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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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풍경 ⓒ 이상기


룩소르를 떠난 기차는 나일강을 따라 계속 상류로 올라간다. 이제 나일강에는 크루즈선의 모습이 가끔 보인다. 1시간 30분쯤 지나 에드푸를 지나더니 3시간 만에 아스완에 도착한다.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다. 무려 3시간을 연착한 것이다. 이 기차가 연착한다는 사실을 알고 김은희 가이드가 이미 우리의 여행 일정을 변경해 놓았다. 원래 우리의 일정은 오전 10시에 아스완을 출발해 아부심벨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차질을 빚었기 때문에 오늘 일정을 미완성 오벨리스크와 누비아 박물관으로 바꾼 것이다. 아부심벨은 정해진 시간에 경찰의 콘보이를 받아야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부심벨은 내일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일정이 조정되었다. 정말 새벽 별 보기 관광이 되겠지만 모두들 일정 변경에 동의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를 통해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사막의 일출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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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 역전 ⓒ 이상기


기차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이곳이 종착역이기도 하지만, 나일강 상류의 최고 관광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차역 앞에는 버스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도시가 전체적으로 황량하고 무질서한 느낌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잠시 나일강이 보이고 강 건너 민둥산이 보이는 것 같더니 어느새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있는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신전 입구에 세우는 4각형의 길고 뾰족한 상징조형물로, 기원전 20세기 12왕조시대 파라오 세누스레트(Senusret) 1세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4면에는 태양신 아문-라에 대한 헌사와 세누스레트 1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오벨리스크의 재료가 되는 화강암은 이곳 아스완에서만 나온다. 그러므로 아스완이 오벨리스크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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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오벨리스크 ⓒ 이상기


석공들이 오벨리스크의 크기를 고려해 화강석을 채취한 다음 그것을 설치할 장소로 옮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돌을 다듬고 조각을 해 세우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돌의 채취과정에서 균열이 생겨 작업을 중단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보러 돌산으로 올라간다. 곳곳에 채석 흔적이 보이고, 잘라낸 돌도 보인다. 가까이 가자 오벨리스크를 잘라내기 위해 주변을 깊게 판 흔적이 드러난다.

그리고 오벨리스크로 사용할 돌의 상단부에 균열이 분명하게 보인다. 만약 이 오벨리스크가 완성되었다면 높이가 41.75m, 가로 세로 폭이 4.2m, 무게가 1,168t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오벨리스크는 하쳅수트 또는 투트모시스 3세의 주문으로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오벨리스크가 완성되었다면, 카르나크의 아문 신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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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크 신전에 있는 하쳅수트 오벨리스크 ⓒ 이상기


이 미완성 오벨리스크 주변 6㎞ 지역이 붉은 화강석 채석장이었으며, 여기서 반출된 돌은 피라미드, 건축의 석재, 석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증거는 기자에 있는 대 파라미드 중 카프라왕과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에서 확인된다. 현재 카프라왕 피라미드의 상단부에는 아직도 화강석이 붙어있는데, 이를 근거로 카프라왕 피라미드에1만7000m³의 화강석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아스완에 있는 이 화강석이 나일강 수로를 통해 기자까지 900㎞나 운반되었을 것이다.
#나일강 #옴 콜숨 #기자 #아스완 #미완성 오벨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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