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찌질이'는 어떻게 총리가 되었을까

[서평] 김태권의 <히틀러의 성공시대 1>

등록 2013.03.13 18:22수정 2013.03.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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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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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성공시대1> 표지 ⓒ 한겨레출판

히틀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히틀러는 독재자의 고유명사이면서 대명사다. 얌체 같은 콧수염에다가 '하이, 히틀러!' 하는 경례 동작 때문에 곧잘 희화화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고집이 세고 독선적인 사람을 일컬어 성씨와 함께 '틀러'를 붙여 별명을 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의 별명은 '최틀러'였다.

요새는 <코미디 빅리그>라는 프로그램에서 장동민이 '장틀러'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좋게 얘기하면 무슨 일이든 과감하게 밀어붙이기를 잘한다는 뜻이고, 나쁘게 말하면 남의 의견 안 듣고 뭐든지 제멋대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에게 '친숙한(?)' 히틀러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보통 그가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벌인 일들에 대해서는 듣고 본 바가 많지만 '듣보잡 찌질이'였던 청년은 어떻게 총리까지 될 수 있었을까? 전설처럼 그가 악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사회적 힘'이 키운 괴물

김태권의 교양만화 <히틀러의 성공시대 1>는 히틀러를 뛰어난 악당이 아니라 증오라는 '사회적 힘'이 키운 괴물로 그린다. 히틀러는 증오와 혼란을 먹고 자란 독버섯이다. 1차 세계대전 후, 좌익과 우익의 끝없는 대립, 최악의 경제난이라는 토양이 '우파 생계형' 안보강사를 일약 중요한 정치인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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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나? ⓒ 한겨레출판


<히틀러의 성공시대 1>는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에 관한 여러 권위 있는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배치의 능력. 김태권은 '어떻게 찌질한 청년이 총리가 될 수 있었는가', '그렇게 만든 사회적 힘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하는 주제에 집중했다.

히틀러라는 제대 군인이 정치인으로 성공해나갈 때, 어떤 사건이 있었고 또 어떤 인물이 그를 도왔는지 보여줌으로써 히틀러를 탈신화 하는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저자 김태권의 탁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인간이 거대한 악을 혼자서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공범이 있든가 아니면 잠재적 협력자가 있든가 침묵하는 다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에다 역사적 우연이 겹치면 걷잡을 수 없는 피바람이 불게 된다. 극좌파와 극우파의 대립이 없었다면, 전쟁 이후 경제난이 없었다면, 우파 거물의 지원이 없었다면, 영구집권을 하려던 늙은 권력자가 없었다면 히틀러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 지금 히틀러인가?

<히틀러의 성공시대>에는 히틀러가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도록 자의든 타의든 도움을 준 여러 인물이 나온다. 그들도 히틀러가 유럽을 참화에 빠뜨릴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격렬한 좌우익 대립 속에서 좌익의 확산을 기필코 막아야 했던 우익들이 써먹고 버릴 카드로 선택한 것이 히틀러였다. 히틀러에게 능력이 있다면 바로 그렇게 버려질 운명에서 요리조리 나간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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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에 참전에 히틀러 ⓒ 한겨레출판


저자 김태권은 독자들이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에 관한 권위 있는 책들을 읽는 수고를 대신해주면서 히틀러를 탄생시킨 시대의 공기를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히틀러인가?

저자는 <히틀러의 성공시대>를 한겨레에 연재하고 있는데, 독자들에게 이런 요구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민주적이지 않은 한국의 보수세력을 나치간부처럼 그려달라, 혹은 길거리에 나와 떼를 쓰는 진보성향 시민들이야말로 나치당원으로 그려달라 등등. 바로 이런 요구에서 왜 우리 시대에 히틀러와 그의 시대에 관한 고찰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증오를 기반으로 하는 좌우의 대립과 경제적 어려움은 극단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비옥한 토양이다. 우리 편은 괜찮지만 저쪽 편은 죽어도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어느 순간 절대적 힘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고 그 속에서 독재자는 잉태되는 법이다.

김태권은 히틀러라는 듣보잡 찌질이 청년의 성공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극단적 대립을 지양할 것을 권한다. 따라서 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증오 상업시대>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증오로 거둔 성공은 반드시 세상에 해를 끼친다.
덧붙이는 글 김태권, <히틀러의 성공시대 1>, 한겨레출판, 2012. 값 14,000원.

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글.그림,
한겨레출판, 2012


#김태권 #히틀러 #히틀러의 성공시대 #파시즘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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