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많아 왔는데... 뽑긴 뽑는거야?"

[현장]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 박람회 가봤더니

등록 2013.03.14 21:36수정 2013.03.14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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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 구직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 김동환


"채용 박람회라고 해서 옷도 차려입고 왔는데 회사 홍보하는 분위기지 채용하는 분위기는 아니더라고요. 팸플릿도 준비 안 된 회사들도 많고... 박람회는 처음 온 거니까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려고요."

14일 오후 4시 서울 코엑스. 감색 정장 차림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졸업반 대학생 신아무개씨는 "얻어가는 게 있느냐"고 묻자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는 자리를 떠나면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현대·기아차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열었다. 1차, 2차, 3차 부품 및 정비 협력사까지 총 430여 개의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채용 박람회다. 14일과 15일에 서울 코엑스에서, 오는 21일에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8일과 29일에는 대구 엑스코 등 3개 도시에서 차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구직자들 "채용하는 회사는 거의 없어"

현대·기아차는 이날 박람회 개막식에 앞서 열린 '협력사 동반성장 설명회에서' 지난해 동반성장 결과와 올해 계획을 설명했다. 협력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노력 차원에서 기획한 이 박람회를 통해 지난해 채용된 인력은 약 1만 5000여 명. 올해 목표는 대졸 및 고졸 사원 1만여 명이다. 14일에만 8000여 명의 인파가 박람회장을 찾았다.

그러나 박람회에 온 구직자들은 채용규모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는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들이 직접 부스를 돌며 받은 인상에 비해 채용된 인원이 너무 많다는 게 이유였다. 기자가 만난 15명의 구직자들은 "채용을 하려는 회사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가리봉동에서 온 이정열(28)씨는 "10여 군데 넘게 돌아다녀 봤는데 자기 회사에 지원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면서 "박람회로 사람을 뽑긴 뽑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이력서를 보여주면 채용 일정을 알려주고 다음 상담을 받는 식인데 그 정도는 인터넷봐도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나이가 있는 편인 구직자들은 한층 높은 수위의 불만을 털어놨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용 아무개(45)씨는 "여기서 사람 뽑는 줄 알고 왔는데 한참 돌아다녀 보니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들렀던 기업 부스 중에서는 "인사담당자가 직접 오지 않은 곳이 태반이었다"면서 "경력이 있지만 월급 120만 원이라도 받고 일할 생각하고 왔는데 서류 놓고 가면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만 하더라"면서 박람회장을 나섰다.

고졸 학력으로 생산직 취업시장을 두드리는 학생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K공고에서 온 최 아무개군은 "대기업 협력사는 안정적이어서 연봉도 높고 지역만 맞으면 가고싶어하는 애들이 많다"면서 "몇 군데 이력서를 냈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군은 "붙으면 좋고 아니어도 이력서에 한 줄 쓸 수 있으니까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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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조건이 설명된 게시판을 보고 있다. ⓒ 김동환


"긍정적인 인상 남기는 구직자 거의 없다"

드물지만 현장에서 면접까지 성사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C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지아무개(27)씨는 "다음주 중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지씨는 이날 3명의 대학 친구들과 함께 박람회를 찾았지만 긍정적인 '신호'를 받은 것은 지씨 뿐이었다.

지씨는 "평소 캐드(CAD, 컴퓨터를 활용한 설계)를 좋아해서 학교에서도 시험 보면 거의 100점 맞을 정도로 파고들었는데 그 점을 좋게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이 온 친구들에게 쌀국수를 사기로 했다"면서 박람회장을 떠났다.

기업 관계자들이 본 구직자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날 현장에서 만난 현대차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10여 명 취업 상담을 했는데 대부분 구직자들이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지 못하더라"면서 '준비'를 강조했다.

"79년생 구직자 한 분이 와서 상담을 했어요. 활동은 많이 했는데 요점이 없더군요. 회사도 2년 이상 다닌 적이 없고요.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은 아닌 거죠. 한 분야에서 3년 이상은 일해야 일을 좀 안다고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자동차 엔진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의 초봉은 3500만 원에서 4000만 원 사이. 이 관계자는 "하반기 정식채용에 합격하는 사람들 중 10~20%는 인턴 출신"이라면서 "구직하는 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미리 일해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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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 온 구직자들이 면접 컨설팅을 받고 있다. ⓒ 김동환


'왜 왔나' 물으니 "현대차 계열사니 연봉이 높을 것 같아서"

자동차 관련 계열사 채용 박람회였지만 이곳을 찾은 이들의 전공은 다양했다. 특히 인문계열, 법학 전공자들이 눈에 띄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전아무개(29)씨는 "취업이 워낙 안되는데 현대차 계열사니까 연봉이 높을 것 같아서 구경왔다"면서 "전공은 취업과 관련없는 시대 아니냐"고 말했다.

전공을 '문과'라고 밝힌 박아무개(33)씨 역시 높은 연봉에 대한 기대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그는 "나이가 있다보니 적어도 연봉이 30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하겠더라"면서 "지방에 있어도 회사 내에 기숙사만 있으면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구직 기업을 물색하고 있다"고 했다.

화학공학과에 재학 중인 허진주(22)씨는 "졸업 앞두고 있어서 경험삼아 구경왔는데 위치 가깝고 돈 많이 주는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교수님들은 우리가 눈이 높아서 취직을 못한다고 하는데 요즘은 사람도 적게 뽑고 애들도 스펙(조건)이 없는 애들이 없다"면서 "적성보다는 가깝고 안정적인 직장이 선호받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송아무개(27)씨는 플랜트(건설관련 기계) 기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채용난 때문에 자동차 계열로 눈을 돌린 경우. 송씨는 "요즘 국내 기업 플랜트 수주량이 별로 없어서 사람을 안 뽑는 추세"라면서 "가고 싶었던 기업이 2년만에 채용 인력을 1/4로 줄이는 바람에 자동차쪽도 함께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기아차 #동반성장 #채용박람회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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