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노란꽃 방울방울 피어난 산골

샛노란 유혹에 이끌려 간 지리산 자락 구례 '산수유마을'

등록 2013.03.24 10:27수정 2013.03.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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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샛노란 산수유꽃이 방울방울 피어났다. 구례 산수유마을 풍경이다. ⓒ 이돈삼


샛노란 산수유꽃의 유혹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만사 제쳐놓고 지리산 자락 '산수유마을'로 간다. 봄비가 내린 지난 20일이다. 또 한 차례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찾아왔지만 밀려드는 봄기운에 맞서기 버거워 보인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많이 불지만 마음만은 가뿐하다.

곡성 고달에서 구례 산동으로 이어지는 고산터널을 지나자 완연한 봄빛이 묻어난다. 도로변에 노란 산수유꽃이 줄지어 피어 있다. 산수유마을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산수유나무 시목(始木)지로 먼저 간다. 남원쪽 계척마을 동구에 있다. 수령 1000년쯤 됐다. 그럼에도 몽실몽실 노란 꽃을 피워냈다. 여기서 해마다 산수유꽃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풍년기원제를 지낸다. 올해도 29일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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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산수유꽃. 가까이서 보면 특별할 것 없지만 무리지어 피어난 꽃무더기가 환상적이다. '100미터 미인'이라는 말도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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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 산동면 계척마을에 있는 산수유나무 시목. 1000년 묵은 나무인데도 노란색 산수유꽃을 방울방울 피워냈다. ⓒ 이돈삼


이 나무는 옛날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사는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오면서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시목지 주변에 만리장성을 쌓고 한반도와 중국 지형을 형상화한 것도 이런 연유다. 마을이름도 그래서 '산동(山洞)'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명의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두 지역이 산수유 주산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전설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산수유가 지역특산물이 된 것은 조선시대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산수유나무를 많이 심었단다. 깊은 산골이어서 농사짓기가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형이 분지인데다 일교차가 크면서도 바람이 적고 볕은 잘 들어 산수유나무가 잘 자랐다고 한다.

산수유나무는 꽃이 진 자리에 초록색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가 가을에 빨갛게 익는다. 루비(Ruby)를 닮은 선홍빛 열매는 겉보기에 달고 맛있을 것 같다. 그러나 떫고 신맛을 낸다. 하여, 술에 담그거나 차로 끓여 마신다. 한의학에선 약재로 쓴다.

각종 유기산과 비타민이 풍부한 산수유는 건강식품으로 으뜸이다. '동의보감'에도 당뇨와 고혈압, 관절염, 부인병, 신장계통에 좋다고 적혀있다. 원기도 보충해 준다. 소문대로 남자한테 좋다. 여성들의 미용과 건강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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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와 어우러진 산수유꽃. 서시천이 흐르는 대음교 부근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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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계곡과 어우러진 산수유꽃.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풍경이다. ⓒ 이돈삼


시목지에서 내려와 산동면소재지를 거쳐 산수유마을로 간다. 샛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산수유꽃축제 준비도 한창이다. 꽃무더기 사이에 무대를 설치하고 있다. 도로변의 풀을 뽑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도 보인다.

"꽃이 만개했어요. 절정입니다. 근데 걱정이에요. 29일부터 축제가 시작되는데, 그때쯤이면 꽃이 조금 시들어버릴 것 같아서요. 몇 년 사이 꽃피는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올해는 축제를 조금 늦췄는데. 축제를 하기도 전에 꽃이 다 피어버렸네요."

김재용 구례군 산동면 부면장의 말에서 꽃축제를 준비하는 지자체 공무원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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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꽃이 활짝 피어난 지리산 자락 구례 산수유마을 풍경. 산수유꽃 사이로 놓인 나무데크를 따라 여행객들이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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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산수유마을 풍경. 서시천을 따라 샛노란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산수유꽃 피어난 길을 따라 간다. 나무 가지마다 꽃이 방울방울 피어났다. 서시천을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대음교 부근은 계곡의 너럭바위와 어우러져 더 매혹적이다. 산수유꽃이 계곡 주변은 물론 계곡물까지도 노랗게 물들일 기세다.

지리산이 품은 마을들도 온통 샛노랗다. 논두렁과 밭두렁도 예외가 아니다. 신평마을 돌담 아래서 봄나물을 캐는 아낙네도 정겹다. 여행객들의 표정도 꽃처럼 환하다. 부산에서 달려왔다는 두 여인은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주며 즐거워한다. 사진작가들의 셔터 소리도 부산해졌다.

산 깊은 하위마을과 상위마을도 샛노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마을도 산도 송두리째 노란 색깔로 채색됐다. 작은 계곡과 어우러진 꽃무더기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골목길과 돌담에도 꽃이 방글방글 피어났다. 그 길을 따라 싸목싸목 걸을만하다. 연인들도 뉘엿뉘엿 걸으며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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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산수유마을 대음교 풍경. 봄비가 그치고 지리산 자락의 구름이 걷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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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마을'로 알려진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풍경. 지리산과 계곡, 산수유꽃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답다. ⓒ 이돈삼


"산수유꽃을 이렇게 추운 날 보니 더 좋은 것 같아요. 다른 봄꽃보다 앞서 피어나 사랑도 독차지하고요. 근데 이 꽃은 100미터 미인인 것 같아요. 가까이서 꽃송이 하나하나를 보면 특별할 것이 없지만 조금 떨어져서 전체를 보면 정말 환상적이잖아요."

윤보혁(53) 씨의 말이다. 사실 산수유꽃은 한두 그루 있을 때보다 한데 어우러질 때 더 아름답다. 뭉쳐서 큰 힘을 발휘하는 공동체 같다. 그 모습에 우리의 마음도 설렌다. 금세 몸도, 마음도 노란 색으로 물든다.

산유정이 보인다. 산수유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꽃으로 노랗게 물든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밤사이 누군가 노란색 물감을 부러 풀어놓은 것 같다. 노란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기도 하다. 옛 노래에 나오는 '꽃피는 산골'과 '꽃대궐'이 여기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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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산수유마을 풍경. 샛노란 꽃이 활짝 핀 돌담 옆 밭에서 아낙네들이 봄나물을 캐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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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산수유마을에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주택가, 골목길은 물론 산자락과 계곡, 논두렁 밭두렁에도 산수유꽃이 피어 온통 샛노랗게 물들었다. ⓒ 이돈삼


파릇파릇 싹이 돋아나는 들녘 풍경도 예쁘다. 지리산 만복대에서 내려오는 산줄기도 그 풍경에 들어가 있다. 한 폭의 수채화다. 봄비가 내려서 더 멋있다. 꽃의 노란 빛깔도 빗물 머금어 더욱 선명해졌다. 비안개도 희미하게 깔려 은은한 파스텔화처럼 몽환적이다.

19살 처녀 백부전의 '산동애가(山東哀歌)'도 떠오른다. 여순사건 때 오빠를 대신해 국군에 끌려가며 불렀다는 애절한 노래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열아홉 꽃 봉우리 피어보지 못한 채로/까마귀 우는 골에 아픈 다리 절며 절며/달비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지네(후략)'

산수유 꽃길은 월계마을과 대양마을, 평촌마을로 이어진다. 이 길에도 산수유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이렇게 한 바퀴 도는 거리가 20리 정도 된다. 평소 두세 시간이면 거뜬하다. 하지만 화사한 꽃구름에 꽃멀미를 한 탓일까. 시간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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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구례 산수유마을 풍경. 여행객들이 산수유꽃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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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꽃과 산수유 열매 조형물. 상위마을 산유정 옆 풍경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길
호남고속국도 곡성나들목으로 나가 곡성로를 타고 곡성읍 버스터미널까지 간다. 여기서 고달면 방면으로 고달교를 건너 고달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 구례 방면으로 고산터널을 넘으면 지리산온천 관광단지(산수유마을)로 연결된다.
#산수유꽃 #산수유마을 #구례 #지리산의봄 #계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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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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