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대기 중 뒤로 밀려 부딪힌 사고...뺑소니 아냐"

차량 번호판만 조금 찌그러지고 피해자 상해도 경미한 경우

등록 2013.03.26 14:26수정 2013.03.26 14:26
0
원고료로 응원
오르막길에서 신호대기 중에 차량이 뒤로 조금 밀리는 바람에 뒤에 있던 차와 접촉사고를 낸 경우, 번호판만 조금 찌그러질 정도로 차량이 파손되지 않고, 신체적 피해도 경미하다면 비록 사고 후 현장을 이탈했더라도 '뺑소니'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K(59)씨는 2011년 10월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김해시의 한 편도 2차로 오르막길에서 신호대기로 정차했다가 차량이 뒤로 밀리면서 1.5미터 뒤에 있던 택시의 앞 범퍼와 부딪혔다. 이 사고로 택시 번호판이 조금 찌그러졌다.

사고 직후 차량에서 내린 K씨는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택시기사가 볼펜과 수첩을 가지러 택시로 간 사이 차를 몰고 그대로 갔다. 택시기사는 K씨의 차량번호를 알고 있던 터라 추격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다.

택시기사는 사고 5일 뒤에 병원을 찾아 일주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전치 2주 진단(경부 및 요부 염좌)을 받았다. 한편 택시에 동승했던 승객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K씨가 사고 즉시 정차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차량), 도로교통법위반(사고후미조치)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인 창원지법 형사4단독 김정일 판사는 2012년 8월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정일 판사는 "피해자인 택시기사는 사고 당일이나 다음날 몸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으나, 그 후 목과 허리가 뻐근해 5일이 지나서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점, 또 엑스레이 촬영 결과 상해부위와 정도를 파악하기 힘들었고 다른 특이 소견도 없었던 점, 접촉사고로 차량 파편물 등이 도로에 떨어지지 않는 등 피해자를 구호하거나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검사가 항소했고, 창원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상균 부장판사)는 2012년 11월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K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비록 피해자가 교통사고 직후 피고인에게 통증을 호소했다거나 피해자에게 외관상의 상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사고현장을 이탈했다면 도주차량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신원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피고인이 무시하고 가버리는 바람에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에 경찰이 도착해 사고현장을 확인하기 전까지 피해차량이 그대로 정차해 있게 됐다"며 "이러한 상황이라면 또 다른 교통상의 위험과 장애가 야기될 수도 있어, 비록 피해차량이 경미한 피해를 입었고, 사고로 인한 파편이 도로에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피고인이 교통사고 발생 시의 필요한 조치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도주차량 및 사고후미조치 혐의로 기소된 K(59)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교통사고는 오르막길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피고인의 차량이 뒤로 밀려 피해차량의 앞 범퍼를 충격해 발생한 점, 피해자는 일주일 입원해 약물치료 등을 받았고 2주간 치료가 필요한 경부 및 요부 염좌를 입었다는 진단서를 받았으나, 사고 당일부터 5일 동안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은 점, 엑스레이 촬영 결과도 피해자의 상해 부위와 정도를 알 수 없었던 점, 당시 동승했던 승객은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않은 점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사고로 피해차량에 부착된 번호판이 조금 찌그러진 것 외에는 파손 흔적이 없는 점, 아울러 사고로 피해차량 및 가해차량의 부산물이나 파편 등이 도로에 떨어지지 않았고, 사고 후에도 피해차량이 정차해 있자 다른 차량이 피해차량을 피해 앞질러 가는 등 교통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를 종합하면 교통사고 당시 피고인이 실제로 피해자를 구호하거나 나아가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해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렇다면 피고인이 자신의 인적사항 등을 알리지 않은 채 사고현장을 이탈했더라도 도주차량 및 사고후미조치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도주차량 #뺑소니 #접촉사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