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주정의 징후와 최초의 민주주의

[주장] 전쟁과 정치 지도자에 대한 소고

등록 2013.04.02 08:54수정 2013.04.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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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글쓴이가 2013년 2월 그리스 아크로폴리스를 다녀온 후 2500년 전 도시국가 아테네 민주주의와 우리 현실을 비교해 쓴 글이다. 여기서 "최초의 민주주의"와 "아테네 민주주의", "그리스 시민은", "2,500년 전 아테네" 등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은 폴 우드러프(Paul Woodruff)가 지은 <최초의 민주주의: 오래된 이상과 도전>(돌베개, 2012) 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용한 본문은 파란색이며 페이지는 별도로 표시하지 않았다. <기자 말> 

지식이 없는 상태의 추론과 결정

오늘날 한국사회에 참주정(tyrannia)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임에도 정치 지도자들이 법을 무시하거나 법을 자신들의 발아래 두고 통치 수단으로 삼으려는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법위에서 법을 무력화시키거나 자신들의 이해에 맞게 법을 고쳐서 통치하려고 시도한다. 때로 법이 참주정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게 되면 법은 한낱 돌에 새겨진 비문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법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이해와 다르다고 이를 개정하거나 폐기하려는 시도는 입법부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체제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특정한 제도로만 인식하면 큰 오산이다. 1987년 이후 여러 가지 제도-직선제 헌법 개정과 투표, 선거, 지방자치 등으로 시민권을 법으로 보장한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민주주의가 되었다거나, 민주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과거(또는 현재)완료형의 생각은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어떤 제도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가장 알맞은 정치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위와 같은 제도를 통해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2500년 전 최초의 민주주의자들은 투표, 다수결, 대표선출을 민주주의 대역(double)으로 여겼고 그런 제도 자체를 민주주의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투표를 행할 수 있는 권리 못지않게 무엇을 투표에 부칠 것인지 발언하고, 시민들이 무엇을 찍을 지 선택할 권리가 중요했다. 그리고 다수가 법위에 선다면 이는 독재 권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전체 구성원의 조화를 위해 어떠한 소수의 이익도 무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려 했다. 이 민주정의 본질은 참주정으로부터 자유이며 모든 시민들의 평등한 정치참여였다.  

한국사회를 보면 규범으로는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만 대중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이념갈등과 빈부차이, 소득 양극화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이를 직시하고 있었다. 대중이 절실히 요구하는 것을 스스로 실현할 수 없는 제도는 민주주의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평범한 시민들의 자기 결정권, 정치경제적 이해를 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열린 공론장에서 시민들이 자기들의 의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테네 시민은 누구나 아고라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자유롭게 발언하고 다른 사람의 연설을 듣는 것은 일종의 정치과정이었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합리적인 추론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이 과정에서 습득했다. 아테네인들은 평범한 시민의 덕성, 모든 인간이 공동체의 시민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었다. 최초의 민주주의자들은 이것을 정치를 위한 시민들의 지혜로 이해했다.

우리는 선거를 민주주의 최고의 제도 중 하나로 인식한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은 선거 대신 추첨으로 민회와 배심원을 구성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추첨 대상이 될 수 있었는데 인원이 많다보니 매수가 불가능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선거에 입후보하는 오늘날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누구나 의회의 일원이 되어 정치결정에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대변할 수 있었다. 최초의 민주주의는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대가로 충분한 급여를 지불했다.

그리스 민주주의가 역동적인 정치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하루 일하는 일당만큼 보수를 지급받았기 때문에 기꺼이 직접민주주의의 일원으로서 민회를 구성하고 배심원이 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추론을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물론 소크라테스 재판처럼 대중이 참주가 될 위험성 또한 안고 있고 민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참주정의 징후와 공직자의 도리

2013년 3월 퇴임한 지 8일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고소·고발당했다. 참여연대와 YTN 노조는 내곡동 사저 매입과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 대통령 재임 중 민·형사상 소추가 면제되었던 그를 범죄혐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고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상 그도 자연인으로서 법 앞에 서야 한다. 법의 지배란 결국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자, 누구도 법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눈을 감고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최초의 민주주의자들은 자신의 지도자들이 재임 중 잘못한 것에 대해 소추했다. 공직에 있는 동안 어떤 행적을 했는지 따져보기로 한 것이다. 이 제도는 오늘날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 등 선거와 청문회를 통해서 임명되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해당할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자신의 이익이나 이해관계자를 대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공직에 진출할 수 없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부를 위해서 국가의 정책을 집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테네에서 공직을 맡은 사람들은 일반 시민의 의지와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 지도자가 맡은 직을 그만둘 때에는 반드시 재임 중의 행위에 대해 검증을 했다. 자기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았던 것이다. 만약 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지도자가 있다면 이들은 법위에서 시민들을 모욕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법위에 서려고 하는 자를 통치자로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그의 먹이로 바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참주정의 분위기는 지도자들이 자기 이익을 가장 먼저 내세우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징후가 나타나면 경계해야 한다. 최초의 민주주의에서 밝히고 있는 참주정의 징후는 이렇다.

1. 참주가 정치적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이 두려움이 그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 참주가 종종 말로만 법을 따라야한다고 주장하며 실제 통치함에 있어서 자신을 법위에 세우려한다.
3. 참주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
4. 참주가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받지 않으려 한다.
5. 참주가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 자로부터 어떤 조언이나 충고도 들으려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자신의 친구라고 할지라도.
6. 참주가 자신과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 자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오늘날 입법·사법·행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참주정의 징후는 여실히 드러난다.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을 향해 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많은 법을 어기고도 다시 공직자가 되겠다고 국회 청문회장에 섰다. 또한 여러 가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정부는 모든 다른 의견을 억압한다. 그리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처럼 용산개발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재판은 노회찬 전의원의 경우처럼 정치재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지도자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국정을 이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찍지 않은 48% 대한민국 시민은 "내부의 적"이란 말인가.

최초의 민주주의자들은 '조화'를 중요시했다. 정치에서 조화란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이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화의 중요성을 등한시 했을 때 아테네는 정치 갈등이 분분했고 결국은 전쟁이 발생했다. 계급갈등이 폭발했던 것이다. 그리스 민주주의에서 조화는  획일을 의미하지 않으며 조화로운 문화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는 갈등과 분개를 낳을 뿐이고 불화를 일으킨다. 만약 시민들 사이의 차이를 수용할 수 없다면, 그래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법의 힘에 기대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한다면 이는 내전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어떤 정부도 사람들에게 조화로울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전쟁과 안보 그리고 시민권의 확장

아테네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기원전 450년 전후,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에 만족해 있었다. 민주주의는 문화와 경제, 군대와 안보에까지 아테네의 모든 것을 강성하게 뒷받침해주었다. 그리스의 다른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의 손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의 도시 국가는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확장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은 결국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대상을 넓히는 것이었지만, 아테네는 다른 도시국가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민권을 확장했다면 마케도니아 알렉산더왕으로부터 몰락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력한 민주주의는 안보를 튼튼히 한다.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군사력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민주주의가 꽃을 활짝 피웠을 때였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 체제가 자신들의 이익과 문화·예술을 가장 잘 보호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그들이 아테네 군대를 강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었다. 민주주의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도시를 지키는 것이 쉽다는 것을 알았다. 민주주의는 사회계층을 뛰어넘어 모든 시민들을 군대에 동원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가장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전쟁, 그 중에서도 내전이다. 내전은 민주주의 체제가  참주정으로 변하게 될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다. 전시는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고 대개의 경우 통치자와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들은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제약받거나 억압당하고 심한 경우 적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자유는 유보되고 도덕은 붕괴한다.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지적한대로 "전쟁은 난폭한 선생"이다.

자유 시민들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에 기꺼이 나섰다. 반면 지도자들을 위해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은 자유롭다고 보기 힘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통치자와 시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바로 민주주의라고 하는 제도에 대한 동일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사람이나 특정한 집단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누가 전쟁을 불러일으키는가, 시민인가 정치인인가? 그들은 정치인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을 결정하면 군인이 전쟁을 실행한다. 그렇다면 그 피해는 어떤가. 현대전의 본질상 시민, 민간인의 피해가 군인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반도 전쟁에 관한 시뮬레이션에서 시민들이 당하는 피해는 군인들의 피해보다 크게 나타났다.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 폭격무기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을 따질 것인가? 무력으로 상대방의 의지를 제압하는 전쟁의 본질은 정치에 있다.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공리를 아테네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사악하게 변해야만 한다고,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해야한다고 충동질한다. 정치의 다원성과 토론은 사라지고 내부의 적으로 묘사된 이들은 전쟁의 상대방, 곧 적으로 명명된다. 이 난폭함의 절정은 대량학살이다. 아테네가 겪은 내전의 상징이 된 코르키라(Corcyra, 현재의 코르푸 Corfu)는 끊임없는 폭력 속에서 마침내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2년간 지속된 내전은 정의를 죽였고 도덕의식을 붕괴시켰다. 도덕적 붕괴의 시작은 동료 시민들을 배반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민주주의파와 과두정파 사이의 전쟁은 보복의 연속이었다.

대한민국 시민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면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산불이 나면 맞불을 놓아 불을 잡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방에 대한 보복 위협으로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용기 있는 지도자가 물러서서 대화를 시도하고 상대방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의 생명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정치인의 의무다. 대한민국의 어떤 시민이 정치 지도자에게 전쟁을 결정할 권한을 위임했다고 생각하겠는가.

최초의 민주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유를 원했고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스스로 자신과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가졌다. 아테네 시민들은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군대는 누가 통솔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아테네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이끌어 페르시아 군대를 대파했을 때 그리스인과 페르시안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문화적 이유, 곧 아테네인들이 자유를 통해 얻게 된 힘이 승리의 원천이었다. 문화적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테네인들이 누린 자유였고, 이를 통해 얻게 된 시민의 힘과 통합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한반도는 전쟁발발 위험을 안고 있다. 누가 폭력을 사용해서 내전의 씨앗을 뿌리는가. 그런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참주정을 원하는 정치집단이다. 자신들의 힘을 시민들에게 강요하고 군림하려고 하는 자들만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권력을 가지려고 한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민주주의 속에서 나오는 조화와 자유의 힘으로 시민을 통합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참주라면 두려움에 눈이 멀어 시민을 신뢰하지 않고 치유할 수 없는 불신으로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전쟁은 시민들의 삶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2500년 전 아테네 최초의 민주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민주주의도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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