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꿈속 같은 몽롱한 기분으로 걸어가는 꽃길

[여행] 진달래꽃 군락으로 유명한 여수 영취산

등록 2013.04.09 11:21수정 2013.04.09 11:22
0
원고료로 응원
a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로 오르는 산길. 영취산은 민둥산이다. ⓒ 전용호


억새들이 겨울을 보내면서 힘들어 했을 산길을 올라가면 산이 붉어진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인 꽃밭. 그 산으로 들어서면 서러움이 밀려온다. 큰 나무아래 수줍게 핀 꽃이 아니라 민둥산에서 꽃샘바람을 맞으며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피어난 꽃이라 더욱 서럽다.

영취산에 진달래가 예년보다 일찍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4월7일 여수 영취산을 찾았다. 봄은 변덕쟁이다. 며칠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졌다. 겨울옷을 입기는 어색해서 옷을 몇 개 겹쳐 입고 나선다. 영취산 등산로 입구에는 관광버스들이 도로가로 줄지어 서있다.


영취산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대표적인 등산코스는 축제장에서 오르는 길이 있고, 흥국사 코스, 상암 코스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지만 상암마을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원상암마을이 있다. 원상암마을에서 영취산으로 오르면 산 중간정도에 임도가 지나가는데, 산길이 임도를 가로질러 올라간다. 임도는 봉우재로 연결되고, 축제장으로도 연결된다. 산으로 올랐다가 임도를 따라 돌아오기가 편하다.

a

원상암에서 골명재로 오르는 진달래꽃길 ⓒ 전용호


a

산 입구에는 벌써 진달래가 지고 있다. 떨어진 진달래꽃도 아름답다, ⓒ 전용호


마을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니 이미 꽃들이 지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진달래꽃은 봄날 한순간 붉게 피어났다가 장렬히 산화하는 처절함이 배어나온다. 떨어진 진달래꽃을 보면서 김소월 시인이 노래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갈 때는, 진달래꽃을 뿌려 놓을테니, 사뿐히 즈려밟고 가란다. 어찌 꽃을 밟고 갈수 있으랴.

임도를 건너고 민둥산으로 올라서면 산길은 아직 풀이 돋아나지 않았다. 억새는 앙상한 모습으로 영역을 지키고 있고, 고사리가 가끔가다 순을 내밀고 있다. 등산객들은 앉을 만한 공간만 있으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먼 곳 풍경을 바라보거나 간식을 즐기고 있다.

산 정상으로는 온통 붉다. 등산객들은 그 속으로 들어선다. 진달래꽃 터널이다. 터널로 걸어가는 기분이 아늑하다. 바람을 막고 햇살을 가린 터널은 포근하다. 땅은 전날 비가 와서 촉촉하다. 터널을 벗어나면 능선으로 바로 올라선다. 골명재다. 축제장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줄을 지어서 간다.

a

진달래꽃길을 걸어가는 등산객들 ⓒ 전용호


a

진례산 정상으로 펼쳐진 진달래 군락지 ⓒ 전용호


a

여수산업단지와 어울린 진달래 ⓒ 전용호


골명재에서 사방을 빙 둘러본다. 여수석유화학공단이 진달래꽃과 어울린다. 꽃은 삭막한 공업단지도 아름답게 만든다. 공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난다. 진달래꽃 때문에 모든 게 여유롭게 보인다. 공단에 갇힌 바다는 답답하다. 광양만 한가운데를 자리 잡았던 묘도는 이제 육지가 되어간다. 매립지가 점점 늘어나는 바다는 바다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영취산 방향으로 산길을 오른다. 정확히 말하면 진례산이다. 오랫동안 영취산으로 불려 왔다. 최근에 이름이 진례산으로 바뀌었어도 그냥 영취산으로 부른다. 세상이 그렇게 무섭다. 진례산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지만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이름표는 진례산이지만 사람들은 영취산 진달래 보러 간다고 한다. 축제 이름도 '영취산 진달래 축제'다. 진례산은 답답하다.

진달래꽃이 햇살에 반짝인다. 꽃잎이 얇아서 햇살을 받으면 등불을 켠 것처럼 밝게 산란한다. 진달래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온 산에 핀 진달래가 봄 햇살과 어울리면 산은 반짝거린다. 바람이 분다. 꽃등이 하늘거린다. 봄날 꿈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몽롱한 느낌이다.

a

봄 햇살에 산란하는 진달래꽃. 온 산에 꽃등이 켜졌다. ⓒ 전용호


a

햇살을 받으면 아름답게 반짝이는 진달래꽃 ⓒ 전용호


a

진례산 오르는 길의 진풍경. 등산객들로 산길을 채웠다. ⓒ 전용호


a

진달래가 가득한 꽃길은 꿈속을 걸어가는 몽롱한 기분을 느낀다. ⓒ 전용호


철계단을 밟고 올라선 바위봉우리. 그곳에서 진례산을 보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래로 내려가려고 길을 잡는데 순간 머뭇거려진다. 엄청난 풍경을 보았다. 능선을 사이로 한쪽은 푸른 소나무 숲이고 다른 한쪽은 붉은 진달래밭이다. 그사이로 산길이 이어진다.

산길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엄청난 사람들이 산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좁은 산길은 사람들로 새로운 꽃길이 조성되었다. 한참을 내려 보고 있어도 사람들이 만든 꽃길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 저 길을 따라서 정상으로 오르기는 힘들겠다.
#진달래 #영취산 #진달래축제 #진달래꽃 #진례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