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청년과 함께 하는 '절실한' 공부의 길을 열다

[서평] 이계삼의 <청춘의 커리큘럼>을 읽고

등록 2013.04.15 10:43수정 2013.04.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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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커리큘럼(한티재) 표지 ⓒ 안준철

<이계삼의 청춘의 커리큘럼>(한티재)은 일종의 북 리뷰집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람의 성장이 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그가 읽은 책을 많이는 읽지 못 했다. 저자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오늘의 교육>이나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 북 코너에 실린 그의 리뷰를 읽고 몇 권의 책을 구입해서 읽은 정도다. 나의 지적 성장이 더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반갑게 다가온 구절이다. 

"1986년 4월 26일,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이 역사적 전환의 의미를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113쪽)


"그도 몰랐구나!" 나도 모르게 의식 밖으로 새어나온 소리였다. 그런데 왜 그는(도) 몰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지 않고도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우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신문이나 방송 매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가 장악하다시피한 대한민국 공영방송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책의 제목이 '청춘'의 커리큘럼이니 이 책을 먼저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나는 이 책을 교사들이 먼저 읽기를 바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를 포함한 상당수 교사들의 지적 성장이 이미 오래 전에 멈추어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넘은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악담을? 적절한 근거가 있긴 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금세기에 터진 가장 심대한 인류의 재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동료 교사들의 반응은 놀랄 만큼 냉담했다. 여기서 사용한 냉담이란 단어는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나도 뒤늦게야 알게 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서 그 심각성을 말해주어도 별 반응이 없었다. 반박을 하거나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다. 그냥 무표정이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한. 체르노빌 이야기가 나왔으니 먼저 한 대목만 소개할까 한다. 앞부분은 저자 이계삼의 글이고, 뒷부분은 그가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인용한 글이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간이 딱딱했고 심장이 정상이 아니었다. 네 시간 뒤에 죽었다. 아내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 사랑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임신한 아기에게 어떤 피해가 미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가 죽었다. 뱃속의 아기는 그의 몸으로 흡수된 방사선을 받아들인 것이리라.

딸이, 나를, 살렸다. (…) 그렇게 작은 아이가……, 딸이 나를 지켜줬다. (…) 사랑으로, 사랑으로 죽이는 게 가능한가? 이런 사랑으로! 사랑과 죽음은 왜 나란히 있을까? (…)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누가 알려줄까? 무덤에 가면 무릎을 꿇는다. (123쪽)


끔찍하지 않은가? 최근에야 이슈가 되기 시작한 핵 방사능 이야기는 그렇다 치자. 꽤 오래 전 일이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유역의 열대우림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글을 내가 가르치고 있는 영어교과서에서 읽고 놀란 적이 있다. 그 '머지않아'가 고작해야 이삼십 년 뒤라는 것. 그리고 그런 중요한 사실을 명색이 선생(지식인)이란 자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이 더 컸다.

그 주범은 햄버거였다. 햄버거를 만들려면 소가 필요하고 소를 먹이기 위해서는 초원의 풀이 필요하다. 결국은 소에게 먹일 풀을 제공할 초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마존 유역을 비롯한 지구의 열대우림이 몽땅 희생될 수밖에 없으며, 이미 그 진행상황이 가히 절망적이라는 것이 정부가 감수한 검정교과서에 실린 내용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수업준비를 하다가 옆에 있던 후배교사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자 즉각 이런 반응이 나왔다. 

"에이, 그렇게까지 되겠어요? 그 정도가 되면 무슨 조치가 나오겠지요. 그리고 요즘 과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그거 하나 해결 못하겠어요?"

<청춘의 커리큘럼>1부 첫 꼭지 제목이 '공황시대의 목전에서 슈마허를 생각하다'이다. 저자가 E.F 슈마허를 천착하게 된 것은 "슈마허의 사상에는 지속 가능한 삶의 조건으로서의 적정기술과 지역 공동체의 가치, 탈중심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인간 구원의 초월적 가치와 이것을 구원할 수단으로서의 노동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인류의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핵심이다. 과학이 이만큼이나 발달했는데도? 그렇다. 아니, 바로 과학이 발달한 것이 화근일 수 있다. 그가 소개하는 <온 삶을 먹다>의 저자 웬델 베리가 한 말이다.

컴퓨터의 사용이 새로운 생각이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더욱 새로운 생각이다.(39쪽)

이계삼은 원델 베리와 IT산업의 귀재 스티븐 잡스의 삶을 비교한다. 스티븐 잡스의 삶에 대해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하지만 웬델 베리가 누구인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계삼이 책을 통해서 만난 웬델 베리는 스티븐 잡스가 실리콘 벨리의 총아로 전 세계의 각광을 받으며 수십 년 간 달려오는 동안, 1960년대 이후부터 고향 켄터키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43세이던 1977년에는 대학 교수직까지 사임하고 전통적 방식으로 지금껏 농사를 짓고 있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인류의 삶을 위해 이바지했느냐고 묻는 것은 웃음을 자아낼 수도 있는 우문에 가깝다. 하지만 거기에 몇 글자를 더 넣어서 "두 사람 중 누가 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이바지했을까?"라고 묻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저자 이계삼 생각은 어떨까? 

요컨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잡스가 추구한 첨단의 기술은 인간은 먹는 존재라는 사실, 그 먹을거리가 끊어지면 한순간도 생존할 수가 없다는 존재 조건을 한 치도 수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첨단의 기술 문명이란 실은 이렇게 허망한 것이 아니겠는가.(41쪽)

칼 구스타프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너무 많은 진실을 견디지 못한다." 석유고갈과 관련된 사실들은 너무 많은 진실이면서, 또한 너무나 자명한 진실이다.(137쪽)

<청춘의 커리큘럼>의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커리큘럼(교육과정)이란 용어에 걸맞게 각 부의 소제목에는 모두 '공부'라는 말이 들어간다. 공부의 이유(1부), 이 시대를 공부하다(2부), 희망을 공부하다(3부). 그리고 20개의 꼭지 글마다 제목과 더불어 일종의 키워드가 붙어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빨간 약, 쉽게 고르지 마시라! /대중문화
정당정치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민주주의
체르노빌 세계사/핵발전
고향 땅에 어린 슬픈 역사/한국 현대사
진실과 불복종의 교육/교육
<죄와 벌>을 거꾸로 읽다/문학
아름다운 하워드 진/지식인
가난한 이들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영성


저자 이계삼은 책 서문에서 "11년간의 교직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10대와 20대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의 고향 밀양에서 농사와 인문학을 큰 줄기로 하는 작은 학교에 둥지를 틀었다. 그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된 이유는 지금의 학교에서는 불가능한 '진짜 공부'를 함께 해보려는 마음에서인 듯하다. <청춘의 커리큘럼>은 그 진짜 공부를 위한 첫 길잡이인 셈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대공황기로부터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카톨릭 노동운동을 이끈 도로시 데이의 삶을 반추한다. 그녀는 젊은 시절, 급진적인 사회주의 운동에 관여한 언론인이었다. 먹을 것과 일자리를 요구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취재하다가 그들의 남루하고 초췌한 모습을 보면서 인근에 있는 성당으로 가서 "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치고는 일생의 동역자인 피터 모린과 함께 '환대의 집'을 연다. 그리고는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그 집을 찾아오는 이에게 따뜻한 수프와 빵을 대접하고, 진심으로 환대해주고, 그들의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들어준다. 

저자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생각할 때 이런 그녀의 삶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약자들과 더불어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라고도 얘기한다. 이런 타자에 대한 환대의 요구는 그의 미래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말하자면 세계에 대한 연민이 그의 삶을 몰고가는 에너지라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다만, 그는 이것을 어느 한 개인의 성품만이 아닌 당대를 사는(혹은 살아가야할) 청춘들의 커리큘럼으로 제시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혹자를 이런 그를 두고 이상주의자 내지는 지나친 비관론자라고 혹평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절실함이 곧 우리 모두의 절실함으로 전이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마땅히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면 이 책에 소개된 훌륭한 선배 스승들의 길을 함께 손잡고 걸어가면 된다. 청년이나 기성세대를 가릴 것 없이 말이다.

<청춘의 커리큘럼>이 읽기에 버거운듯 하면서도 절실하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교육공동체 벗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청춘의 커리큘럼 -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

이계삼 지음,
한티재, 2013


#이계삼 #오늘의 교육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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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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