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역사학'과 '실천적 역사가'란 무엇인가

[서평] 이이화 자서전 <역사를 쓰다>

등록 2013.04.16 09:13수정 2013.04.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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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어느 날, 나는 서울 조계사 맞은편에 있는 어느 회관을 찾았다. 그날 그곳에선, 오늘날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초청강연이 진행됐다. 사실 나는 그동안 꾸준히 나름의 역사공부를 해오면서 늘 선생의 삶과 글을 흠모해오던 차였다.

강연장에서 뵌 선생의 첫 인상은 마음이 참 순박한 분일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선생은 거침이 없으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열정과 재기가 넘쳤다.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그런 탓에 청중들 역시 선생의 강연 내용에 곧 빠져들었다.


강연 내용은 대체로 현재 진행되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식민지 근대화론과 위안부 문제 등),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한국현대사 왜곡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과 같은 '역사전쟁'의 문제를 비롯해 과거 우리 역사 속 선인들의 역사인식과 오늘날의 역사교육의 문제점 등으로 채워졌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을 들으며 나는, 이이화 선생의 역사학은 그야말로 '민중의 언어'로, '민중적 정서'에 주목해 특정 시대 역사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것을 일반인들도 알아듣기 쉽게 구수한 이야기 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상적으로는 철저하게 '인간존중'에 바탕을 둔 역사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선생만의 개성과 향취가 선생의 역사학에서 물씬 배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선생은 어떻게 이와 같은 독특한 역사학을 일구어내실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선생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여 진다. 최근 출간된 선생의 자서전 <역사를 쓰다>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자서전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솔함 속의 냉철함'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솔함'과 '냉철함'은 자서전이 지녀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이겠지만, 사실 대부분 자서전은 이러한 덕목과는 거리가 먼 예가 많다. 게다가 개인 신상 이야기가 주류인 탓에 흥미를 놓쳐버리고 중도에 읽기를 그만둘 수도 있는 자서전 특유의 '지루함'도 존재한다.

하지만 선생의 자서전은 이 덕목에 '너무나' 충실하기에 그러한 지루함을 보기 좋게 뛰어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타자화해 반성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냉철함을 견지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진정한 역사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자서전의 제목인 '역사를 쓰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점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독자가 지레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중의적인 의미가 어쩌면 선생의 삶의 역정과 자서전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먼저 이 중의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를 쓰다'가 지닌 첫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과거의 역사를 '쓰다'라는 의미이다. 역사학자로서 '역사기록자'의 의미를 지니는 뜻일 것이다. 실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이화 선생은 많은 역사 관련 저술을 썼으며, 해방 이후 최초의 개인 통사인 <한국사 이야기>(전22권)를 펴냈다. 여기에서만 그친다면 솔직히 '싱겁다.' 물론 역사학자의 일차적 의무는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있지만, 사실 선생의 삶과 학문이 단순히 역사기록자의 의미에서 그쳤다면 이 자서전이 지니는 의미 역시 반감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의미는 따로 숨겨져 있다고 하겠다. 바로 '새 역사를 쓰다'라는 의미이다. 예컨대 어느 육상 선수가 새로운 신기록을 새웠을 때 우리는 곧잘 '새 역사를 썼다'며 박수를 보낸다. 독자의 눈높이에서 볼 때 여기에는 아마 선생 나름의 뿌듯함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해본다. 선생은 자서전에서 솔직히 고백하고 있듯 태생적으로 '서자'였고, 정규 학위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온갖 풍상을 견디며 고난을 거듭해야 했다.

그러나 이후 선생은 역사연구와 저술에서 독보적인 영역과 위치를 굳히며 나름의 역사학을 일구어왔고, 이를 집대성해냈다. 이러한 작업은 학계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일반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정말 선생의 삶은 그 자체가 새로운 역사를 써낸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사회와 같은 극심한 학력 위주의 사회에서 학위와는 전혀 관계없이 나름의 학문영역을 개척해오고 또 이를 학계와 대중 양쪽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인 것이다.

자서전의 중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듯 선생은 실제 새 역사를 쓰고자 몸소 실천해왔다. 우리 근대사의 새 장을 연 동학농민전쟁사의 성격과 의미를 복원하는 활동을 주도했고, 나아가 고구려사 보존과 과거사 청산작업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에 새로운 역사를 여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 책 이름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에 걸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선구적으로 중국 답사의 여정에 나섰다. 이때의 답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왜냐면 선생은 사실상 한국인 최초로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과 같은 일제 식민지시기 중국 관내(연안 일대)에서 전개된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쟁 유적을 답사하고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남쪽에선 극우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속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쟁 역사는 철저히 소외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편, 이 자서전 속에는 직접적으로 명시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선생의 저술과 삶, 경험담, 일화 등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몇 가지 뚜렷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그 첫째로는 '인간'을 들 수 있다. 이 책 속에는 선생의 인간적 체험과 면모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선생이 지금껏 추구해 온 삶과 학문 속에서 이 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선생은 민중사 연구에 천착해왔고,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했으며 과거사 청산·친일 청산 작업 등에 앞장섰다.

또 일찍부터 '한국의 파벌'에 주목했다. 뿐만 아니라 허균·정여립·정인홍·전봉준 등 전통시대 역적으로 몰린 역사인물들을 발굴, 재평가하기에 주력해왔다. 곧, 불평등 관계 속에서 차별받아 온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제대로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민중의 삶과 정서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 속에도 인간사회에서의 '평등'관계를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한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이 있었던 점을 부각시켰다.

그런데 선생의 책에서 일관되게 제시되는 평등이란, 결국 인간들끼리 더불어 사는 삶이요, 서로 부대끼며 때론 갈등을 겪으면서도 상호 존중하는 삶이다. 곧,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과 더불어 결코 누군가에게 어떤 굴레를 씌어 압제를 가하거나, 불평등관계를 조장해 억울한 이를 양산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다.

선생 자신도 언급한바 있듯 이러한 메시지는 결국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 이 점은 이 책의 전반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선생의 1차적 삶 및 고난에 찬 청년시절과 맞닿아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실 역사는 그 자체가 '인간'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이끌어 온 주체도 넓게 보면 인간이요, 오늘날 역사를 공부하는 이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훌륭한 역사학자는 정말이지 '인간'과 널리 소통할 수 있는 이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인간'은 '역사 속의 인간' 및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선생의 삶과 학문은 한국사 전반에 걸쳐 양쪽을 모두 포괄해왔다.

전술한 것처럼 선생은 역사 속의 인간을 재조명하며 불평등관계를 배척하는 역사학을 추구해왔고, 동시대인들에게는 인간이 살아 숨 쉬고 현장의 감각이 녹아들어가 있는 에세이식의 문체로 역사를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선생의 역사학을 '인간적 역사학'이라 부르고 싶다. 이러한 점들이 이 책 속에는 '진솔함'이라는 포장 속에 담겨 있다.

두번째는 '실천'이다. 나는 예전에 선생의 어느 저서에서 '학행일치'의 덕목을 강조한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2004). 현실을 외면한 채 고답적인 학문만 추구해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선생은 자서전의 전반에서 다루어지고 있듯 한국사의 미개척지인 중국 답사에 나섰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과거사 청산과 국치 백년 사업에 앞장서는 등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했다.

이 같은 관점은 '역사 대중화'로 연결되었고, 그리하여 많은 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인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끔 했다. 아무튼 이 자서전이 암묵적으로나마 담고 있는 '인간'과 '실천' 이 두 가지 메시지는 결국 역사학자, 나아가 지식인의 사명과 연결될 문제일 것이다.

한편, 선생은 역사학자로서의 엄밀성을 자신의 삶에도 투영시키고 있다. 가령 이 책 50쪽에 어린 시절의 작은 일화를 들며, "…내 정직성은 평생 이 수준이었다. 나름대로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려 마음을 썼지만 철두철미한 정직성은 지니지 못했고 무슨 일이든 과감한 행동을 하지 못한 채 어중간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민주운동 과정에서도 이런 한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선생 특유의 인물평가 방식이 자신의 삶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렇지만 역사가로서 한 개인이 겪은 경험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자신들이 사는 현대와 맞물려 있기"(7쪽)도 하거니와 역사가는 역사와 현실의 중간에서 고뇌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자서전 속에서 한국 근현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이 선생의 역정과 겹쳐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자서전을 읽으며 나는 한 역사학 지망생으로서 오늘날 역사가의 사명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무엇보다 역사가의 사명은 끊임없이 진실을 규명하고, 이를 오늘의 시대정신에 맞추어 구현(실천)해내는 데에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삶은 역사가로서의 사명에 충실한 삶의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서전에 녹아 있는 선생의 삶은 오늘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어떤 공감대와 위로를 건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자서전이 내뿜고 있는 위로는 결코 관념적이고 작위적인 위로가 아닌 한 개인의 고난에 찬 삶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에게 이 책이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그러한 점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여운이 글쓴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삶과 생각을 되돌아볼 계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역사를 쓰다> 이이화 씀, 한겨레출판사 펴냄, 2011년 7월, 523쪽, 2만 원

역사를 쓰다 - 이이화 자서전

이이화 지음,
한겨레출판, 2011


#이이화 #역사를 쓰다 #인간적 역사학 #실천 #역사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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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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