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을 여는 비밀번호가 있다

[시인 서석화의 음악에세이] 패닉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등록 2013.04.20 16:38수정 2013.04.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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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한 시절에서 다른 한 시절로 넘어간다는 건 무엇일까? 그것을 시간상의 수치로 구획을 정할 수 있는가? 공간이 이동되었다고 그때의 나와 다른 지금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닐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마음 깊은 곳으로의 순조로운 진입. 왜 그 아득하고 내밀한 곳으로 들어서게 됐는지, 연유를 알 수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냥 나를 불러내보고 싶을 때, 한 사람의 한 시절이 조용히 꺼져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보낼 준비가 됐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일에 있어 격동과 혼란은 한 시절의 막을 내리지 못한다. 그것은 그 시절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한 시절의 끝과 또 다른 시절의 도래는 격동이 멈췄을 때, 혼란스러움이 조용해졌을 때, 따라서 비로소 자신과의 직접대면이 가능해졌을 때라야 가능하다. 사람들은 그때에 자신이 가장 정직해질 수 있는 비밀번호를 눌러 자신의 원형을 찾게 된다.

전혀 외부적이지 않은, 전혀 의도적이지 않은, 전혀 불편하지 않은, 전혀 격동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긍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염려하며 나와 마주 서 보는 시간. 한 시절이 조용하게 물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물러나는 모든 것은 그림자를 남긴다. 그림자는 다음 시절이 당도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즉 시절이 교차되는 지점, 그곳을 여는 비밀번호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득한 곳에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부르는 비밀번호,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내 바다 속에는 깊은 슬픔과 헛된 고민들 회오리치네
그 바다 위에선 불어 닥치는 세상의 추위 나를 얼게 해
때로 홀로 울기도 지칠 때 두 눈 감고 짐짓 잠이 들면
나의 바다 그 고요한 곳에 무겁게 내려와 나를 바라보네
난 이리 어리석은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그 어린 날의 웃음을 잃어만 갔던가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인가
...
나 어릴 적 끝도 없이 가다 지쳐버려 무릎 꿇어버린 바다
옛날 너무나도 고운 모래 파다 이젠 모래 위에 깊은 상처 하나
행복하고 사랑했던 그대와 나 생각만으로 웃음 짓던 꿈도 많아
그런 모든 것들이 저 큰 파도에 몸을 맡겨 어딘가 가더니
이젠 돌아보지 않아
바다 앞에 내 자신이 너무 작아 흐르는 눈물 두 손 주먹 쥐고 닦아
많은 꿈을 꾸었는데 이젠 차마 날 보기가 두려워서 그냥 참아
그때 내가 바라보던 그 드라마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눈을 감아
나의 낡은 서랍 속의 깊은 바다 이젠 두 눈 감고 다시 한 번 닫아

패닉의 비밀번호는 "바다"다. 그는 자신의 다음 시절을 맞이하기 위해 바다를 호명한다. 바다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끄집어내며 씻어 말리기 위한 도구요 그의 근원이다. "낡은 서랍" 같은 마음의 칸칸들, 그것들을 들추고 그것들을 다독이며 그것들을 보내기 위해 그는 바다를 부른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 안에 '바다'라는 광활한 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다는 그의 원형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불러낼 수 있는 비밀번호다. "홀로 울기도 지칠 때 두 눈 감고 짐짓 잠이 들면" 마음자리 "고요한 곳에 무겁게 내려와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인 것이다.

원형 앞에서 사람들은 정직하다. 현재 내가 살고 있고 겪어내고 있는 시간의 풍경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마주한다. "깊은 슬픔과 헛된 고민들"이 "회오리치"고 그 위로 "불어 닥치는 세상의 추위"는 그를 "얼게" 한다. 그는 자신의 원형 앞에서 묻는다. "난 이리 어리석은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은/ 나 버릴 수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이냐고.

사람이 한없이 스스로가 작아져 보일 때는 자신에게 진실할 때이다. "모든 것들이 저 큰 파도에 몸을 맡겨 어딘가 가더니/ 이젠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 사람은, 그동안 밀쳐두거나 외면했던 "자신이 너무 작"음도 인정하고야 만다. 자신과 상황에 대한 처절한 인식, 한 시절이 끝난다.

그의 "낡은 서랍 속의 바다"는 다시 잠긴다. 그동안 "내가 바라보던 그 드라마"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시절에 대한 결심이자 자각이다. 다시 잠긴 바다는 또 한 시절을 묵묵히 내 안에서 출렁일 것이다. 나의 역사와 배경과 사연이 "낡은 서랍"에 다시 찰 때까지 나의 방문을 또 기다려 줄 것이다.

대중가요로서는 은유와 상징이 돋보이는 패닉의 노래, 자신을 직시하는 순간의 회한과 그러면서도 다시 올 시절에 대한 뼈아픈 예의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누구나 자신을 여는 비밀번호는 있다. 머무르다 주저앉을 것인가. 뼈아픈 진실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마음에 들어가 볼 것인가. 비밀번호는 당신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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