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선 이 음식이 24시간 끓고 있습니다

[먹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야근 후, 술 먹은 후 먹었던 뼈다귀해장국

등록 2013.05.15 18:14수정 2013.05.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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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다귀 해장국. 새벽까지 이어진 근무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단어만 들어도 피로가 풀릴 그런 음식입니다. 늦게까지 일을 한 날, 혹은 늦은 술자리가 끝나고 첫차를 기다리며 먹었던 음식. 체면 불구하고 손으로 잡아 우걱우걱 살을 뜯어먹고 젓가락으로 뼛속 구멍을 찔러 남은 살점까지 먹었던 음식. 야근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맛봤을 뼈다귀 해장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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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뼈와 우거지, 육수가 어우러진 뼈다귀해장국 ⓒ 임동현


뚝배기에 담아나오는 뼈해장국은 돼지뼈와 우거지를 주재료로 하고 된장과 각종 양념으로 간을 한 육수를 가득 부어 내옵니다. 해장국에는 큰 뼈다귀가 두세 개 정도 들어있게 마련입니다. 감자탕을 시키기 조금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머릿수 대로 뼈해장국을 시켜 먹으면 돈을 조금 아낄 수 있습니다. 간혹 뼈해장국을 시키면 감자탕을 시키라고 은근히 장삿속을 내보이는 식당도 있다고 하는데… 설마 제가 잘못 들은 거겠죠?

주연 돼지뼈와 조연 우거지의 조합

어쨌든 뼈해장국의 주연은 당연히 돼지뼈입니다. 혹자들은 감자탕의 '감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감자가 아니라 탕 속에 들어있는 돼지뼈 부위를 일컫다고 하는데, 확인된 사실은 없어요. 깨끗하게 먹는다고 젓가락으로 살을 발라서 먹기도 하지만 사실 돼지뼈는 두 손으로 뼈를 잡고 손으로 살을 발라 입으로 뼈를 쪽쪽 빨아가며 먹어야 비로소 맛있게 먹었다는 느낌이 들죠. 뼈를 입으로 쪽쪽 빨다보면 감취졌던 고기 살이 구멍을 통해 빠져나옵니다. 이걸 먹는 재미도 빼놓으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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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뼈는 역시 손으로 잡고 뜯어먹어야 맛있죠. ⓒ 임동현


하지만 주연이 훌륭해도 조연이 좋지 않으면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죠. 뼈해장국의 주연이 돼지뼈라면 조연은 바로 우거지입니다. 이 우거지가 맛있어야 비로소 좋은 뼈해장국이라고 할 수 있죠. 잘 익은 우거지는 고기만 먹으면 더부룩해질 수 있는 속을 다스려줍니다. 고기 맛도 더 나게 하고요.

맛좋은 돼지뼈와 잘 익힌 우거지. 뼈를 푹 고은 육수, 여기에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 매콤한 풋고추를 곁들이고 소주 한 잔까지 하면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온몸에 쌓인 독이 땀이 되어 밖으로 나가는 거죠. 그야말로 '해장'. 몸의 독이 빠져나가면서 사우나를 한 듯 시원함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소주 한 병을 더 추가하려하면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뼈 국물을 한 그릇 다시 담아줍니다. 우거지까지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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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해장국의 최고의 조연, 우거지입니다 ⓒ 임동현


간혹 돼지뼈로 다른 레시피를 개발할 수도 있죠. 저희 어머니는 종종 돼지뼈에 콩비지와 묵은 김치를 넣어 맛있는 비지찌개를 만들어주시곤 합니다. 콩비지와 돼지뼈 살을 함께 먹으면 정말 부드럽게 입 속에서 녹습니다. 으음… 이 이상은 더 말씀 못드립니다. ㅎㅎㅎ

'감자탕'이 아닌 뼈다귀 해장국을 사주던 생의 마지막 날

돼지뼈를 맛있게 먹던 사형수의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2009년 개봉된 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입니다. 과거에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인해 사형수가 된 성환(김재건 분). 그는 감옥에서 같이 장기를 두며 친하게 지내는 김 교위(박인환 분)에게 감자탕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법무부가 12년 만에 사형 집행을 결정하기로 한 날, 성환도 사형 집행이 결정된 3명의 사형수 중 한 사람이 됩니다. 김 교위는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감자탕을 사다 줍니다. 그런데 돼지뼈를 맛있게 뜯어먹는 성환의 앞에는 작은 그릇만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김 교위가 사온 것은 사실은 감자탕이 아닌 뼈해장국이었던 겁니다. 자신의 삶이 내일이면 끝날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돼지뼈를 맛나게 먹던 사형수의 모습을 해장국을 보며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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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 사형수 성환(김재건 분)이 전날 밤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이 바로 뼈해장국이었습니다. ⓒ 스폰지


야근의 피로를 풀어주던, 술로 쓰린 속을 달래주던, 그러면서 결국 술 한 잔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어주던 뼈다귀 해장국의 맛. 굳이 품위를 갖출 필요없이 손으로 허겁지겁 먹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음식. 서민의 24시간을 지켜주는 뼈다귀 해장국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맛있게 끓고 있습니다. 서민의 쓰린 속을 달래주기 위해서요.
#뼈다귀 해장국 #돼지뼈 #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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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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