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신부'가 김조광수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取중眞담] '국내 최초 동성결혼식', 기대됩니다

등록 2013.05.17 17:09수정 2013.05.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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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아침에 출근해서 댓글을 읽어 내려가다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기사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살아가면서, 댓글에 상처받는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내성'이 생겼달까요. 그런데 이번은 그렇지 않더군요. 이러한 댓글을 평생 보면서 살아왔을, 어쩌면 앞으로도 그래야 할 당사자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김조광수 감독님,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사회팀 홍현진 기자입니다. 15일 저는 김조광수 감독님과 김승환씨의 결혼 발표 기자회견 현장에 있었습니다.

댓글을 읽어 내려가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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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김조광수 감독과 (주)레인보우 팩토리 김승환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결혼식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입맞춤을 하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의 동성파트너는 19살 연하인 (주)레인보우 팩토리 김승환 대표로 이 날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했으며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결혼식 축의금을 모아 무지개(LGBT)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 이정민


기자회견을 취재하면서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조광수 감독님과 '화니(김승환씨 닉네임)'님이 2004년 처음 만나, 2005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 사실은 저도 김조광수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올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요. 남자친구 '곰씨'와 대학교 1학년 때인 2004년 처음 만나 2005년부터 사귀기 시작했어요. 저와 곰씨는 '화니'님과 동갑이기도 합니다.

기자회견 현장을 보면서 저는 두 분이 참 좋은 '동반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독님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이야기 하면, 화니님은 조금은 긴장하신 듯하면서도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에서 9년차 커플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오랜 시간 숙성시켜온 사랑과 신뢰가 엿보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두 분의 '키스타임' 이었습니다. 보통 연예인 커플 결혼 발표 기자회견을 보면, 사진기자들이 "뽀뽀 한번 해주세요"라고 주문하잖아요. 손으로 하트도 그려 보이고요. 그런데 이날 포토타임에서는 기자들이 어째 그런 말이 없더라고요. 그때, 감독님이 "결혼 발표니까, 뽀뽀 이런 것도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하자, 기자들이 "해주세요"라고 답하더군요.

이후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한 연인이 혹 부담스러울까 걱정됐는지 감독님이 "하지 말까?"라고 화니님에게 조심스럽게 묻는 입 모양이 보였어요. 참 다정해 보였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기자들이 짐을 쌌습니다. 일부 기자는 "이해가 안 간다, 이해가..."라며 자리를 뜨더군요. 기사 댓글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동성애 혐오 발언이 줄을 이었습니다. 또 다른 '가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발언은 다시 옮기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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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힐링캠프에서 그동안의 심경을 고백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홍석천 ⓒ sbs


감독님, 저에게도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가 있었습니다. 방송인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저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요. '어떻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가 있지'. 인터넷 토론게시판에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반대한다'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성소수자는 존재이지, 논쟁의 대상 아니다. 동성애자는 여러분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존재하고 있다. 여러분이 반대한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동성애자 없어지는 건 아니다. 동성애를 반대하시는 분들은 '우리도 반대할 권리가 있다, 인권이 있다'고 하는데, 사람을 혐오하는 것은 인권이 아니다."

화니님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한 개인이 바꿀 수 없는, 타고난 것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독님과 화니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전의 제가 생각났습니다. 아, 지금은 세상의 수많은 사랑 중에 '동성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이해하는 것, 머리와 마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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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사이?>의 한 장면. ⓒ 청년필름


2009년이었던가요. 저는 감독님을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감독님이 연출하신 영화 <친구사이?>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인터뷰 전, 저는 <친구사이?>가 동성애가 아닌 이성애를 다뤘다고 가정하더라도 청소년이 보기에는 다소 수위가 높은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그것이 제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그러자 감독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느낀 것은 동성애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 때문이라며,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황당했습니다. 당시 인터뷰의 취지는 "미성숙한 청소년이 일반적 지식으로 동성애를 이해하기 힘들고, 선정성 때문에 모방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린 영상물 등급 위원회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2010년, 법원에서는 이러한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 역시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린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영화 속 성행위 묘사 수위를 봤을 때 '청소년 관람불가' 결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이후 언론에서 김조광수 감독님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저는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영화가 '동성애 영화'였기 때문에 더 '야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머리로는 동성애를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9월 7일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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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김조광수 감독과 (주)레인보우 팩토리 김승환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결혼식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올 가을로 예정된 결혼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이정민


감독님 결혼식이 9월 7일이라고 하셨죠. 제 결혼식은 10월입니다. 사실 저는 결혼을 결심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결혼을 결심한 지금은 어떻게 하면 판에 박힌 결혼식이 아닌 '우리만의 결혼식'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저 같은 이성애자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될지 말지를 고민한다면 동성애자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한국에서는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와 관련해 화니님은 "한 개인이 나이, 성별, 국적, 인종 모든 것을 떠나서 성인이 되어서 가정을 꾸리고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적으로 관계를 인정받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며 "동성 결혼 합법화를 위해서 헌법 소원뿐만 아니라 법적 투쟁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조광수 감독님은 "어떤 분은 저한테 결혼이 '불법'이라고 하는데 합법이 아닐 뿐이다"라며 "아직까지 합법이 아닌 것은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스페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아이슬란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다양한 결혼식, 당연한 결혼식' 보도 자료에 나온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나라'들이에요. 우루과이에서는 지난 4월 10일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이 의회에서 최종 승인됐고, 영국 정부는 2015년까지 동성 결혼을 합법화겠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베트남에서도 동성 결혼 합법화를 추진 중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얼마 전,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민주당 소속 의원 51명과 함께 발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자진 철회했습니다. 법안에는 '학력·혼인상태·종교·정치적 성향·전과·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그러자,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특히 '성적지향'이라는 내용이 문제가 됐습니다. 해당 의원실에는 욕설이 담긴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국회의원 50여 명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라니, 얼마나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하지만 감독님과 화니님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니, 두 분이 앞으로 함께 잘 헤쳐나가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을 꼭 맞잡은 두 분이 너무도 행복해보였거든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혐오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결혼식, 당연한 결혼식'.

결혼발표 기자회견 현장에 걸렸던 무지갯빛 문구입니다. 결혼식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하실 거라고 하셨죠? '국내 최초 동성결혼식'이 축제 같은 결혼식, 행복한 결혼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9월 7일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조광수 #결혼식 #동성결혼식 #동성애 #동성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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