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되면 6시 '땡' 하면 퇴근하는 줄 알았어요"

새내기 공무원, 이진희씨 이야기

등록 2013.05.28 12:06수정 2013.05.2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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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섬, 인위적인 개발이 적은 쾌적한 곳이다. ⓒ 신광태


붕어섬. 강원도 화천읍내 앞강에 펼쳐진 수채화를 닮은 섬이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화천군민들은 이 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곳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것도 야영도 하락하지 않는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모두 그대로 남겨두자는 거다. 만들어 놓은 시설 또한 초라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검소하다.

시설이라야 작은 도랑을 파서 만든 맨발 지압장, 미니어처라고 부르는 북한강 수계 축소판 발전소 모형이 있다. 평화의댐,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을 일일이 찾지 않더라도 100여 미터 정도만 나무 그늘을 따라 걸으면 한눈에 볼 수 있다.

'하늘 가르기'라는 이름의 짚라인(zip-line)과 레일바이크를 이용해 한 바퀴만 돌면 그 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동화 속에서나 만날 것만 같은 잔디밭. 울퉁불퉁 자전거길. 이것이 붕어섬이 허용한 시설 전부다.

붕어섬에서 하늘 가르기를 운영하고 자전거를 대여하는 일은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직원들이 맡았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교대로 근무를 편성했다. 4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됐다.

휴일근무, 난 단 하루밖에 하지 않았는데... 


지난 5월 25일 토요일, 늦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무더운 날씨. 기온은 30여 도 가까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아이스크림을 한 보따리 샀다. 휴일에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그랬더니 뜻밖으로 일주일 전에 근무를 같이 했던 이진희씨가 반긴다.

"진희씨, 지난주에 나랑 같이 근무했었잖니. 근데 왜 또 나왔어?"
"저는 벌써 휴일에 여기서 근무한 게 열 번은 넘는걸요."

붕어섬 프로그램 운영 이래 난 딱 한 번 근무한 기억밖에 없는데 이 친구는 어떻게 열 번을 넘게 근무를 했을까. 휴일 관광지 배치는 모두 기피하는 일이다.

화천군청 관광과에 근무하는 이진희씨는 지난해 8월에 입사한 새내기직원이다. 그녀의 담당업무는 서무. 휴일 근무편성을 하는 등 부서를 위한 잡다한 일은 모두 그녀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근무 차례가 된 직원들이 '결혼식 참석 때문에, 또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라고 말하면 그냥 그 직원을 대신해왔단다.

"직원들이 알아서 다른 사람과 근무를 바꾸라고 하지 그랬니?"

그렇게 말하려고 했단다. '아이들도 있는 직원, 그리고 미혼인 사람들도 휴일엔 소중한 개인적인 계획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그냥 내가 하는 게 편하지'라고 생각해서라고. 4월부터 붕어섬 프로그램이 운영된 이후 10번이나 근무를 했다면 거의 매주 휴일마다 나온 셈이다.

시커먼 남자 직원들이 내 놓은 커피가 맛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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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사 주인공, 강원도 화천군청 이진희씨 ⓒ 신광태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는 아침 9시 정시에 출근하고 6시 '땡' 하면 퇴근하는 줄 알았어요."

"왜 공무원 할 생각을 했니?"라는 내 질문에 "국민들에 대한 봉사 어쩌구"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20여 년 전 내가 그녀와 비슷한 위치에 있을 때 어떤 계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묻기에 난 그런 대답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진희씨의 대답이 참 솔직하다.

"입사 이후 밤 10시 이전에 퇴근했던 것은 발령받던 날 딱 하루뿐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 못하면 내일로 미루고 또 다음 날 못하면 그 다음 날로 미루면 되지'라는 사고방식으로 생활해온 내겐 다소 충격적인 말이다.

"왜 그렇게 늦게까지?"

이유를 묻는 내게 '잘 알면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듯 웃는다. 알 것 같다. 전달을 위해 하루에도 수 없이 호출하는 타부서의 미팅 참석, 관광과를 방문하는 일일 평균 20~30여 명의 민원인들에게 차(茶)를 접대하는 것도 그녀의 일과다.

"차를 나르는 건 해당 민원 담당자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지 그래"라고 말했더니, "시커먼 남자직원들이 가져다 드리는 것보다 여직원인 내가 하는 게 손님들이 기분 좋을 거 같아서"라는 게 그녀의 대답이다.

새내기 직원에게 배운다

"동기 공무원들 중에 시(市) 단위 자치단체로 발령이 난 직원들이 '정시에 출퇴근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자신들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당연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죠."

자신의 작은 역할이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기분 좋게 비춰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보람 아니겠냐"는 그녀의 말. 20여 년을 넘도록 공직생활을 해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화천군청 관광기획담당입니다.
#이진희 #신규 공무원 #화천군청 #붕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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