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능요원 과로·스트레스로 자살... "산업체 60% 책임"

"병가신청 낸 망인에 대해 보호조치 취하기보다 업무복귀 압박"

등록 2013.05.31 20:45수정 2013.05.3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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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대체하는 산업기능요원이 과중한 업무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돼 정신병이 발병해 결국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했다면 방위산업체에게 60%의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A씨는 2009년 3월부터 경남 김해시에 있는 방위산업체 B회사 공장에 산업기능요원 자격으로 입사해 근무했다.

그런데 회사가 공장을 증축·가동하면서 기존 공장에서 일하던 5명 중 3명을 새로운 공장으로 파견해 A씨를 포함해 2명으로 감축됐다. 이로 인해 업무가 늘었다. 또한 회사는 2010년 12월 제공하던 기숙사를 폐쇄해 A씨는 회사와 떨어진 곳에서 숙소를 잡았다.

A씨는 2011년 1월 공장의 인원감축이 있은 후부터 모친에게 가중된 업무 부담에 대해 고충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그해 5월에는 위장염 진료를 받았고, 어깨통증으로 병원진료를 받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병원진료를 받았고, 그해 6월에는 건강상태에 이상이 생겨 2일간 병가를 내기도 했다. 심지어 A씨는 돌연 회사 정문 경비실로 가서 "회사에 사표를 냈다"는 말을 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에 모친은 아들 A씨를 한의원에 데려갔고, 한의사는 "심신불안, 무기력증, 두통, 떨림증, 양측 견배부 긴장 등으로 인해 현재 정상적인 근로활동이 불가능해, 심신의 안정가료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사료되며 향후 4주간 경과관찰을 요하는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에 모친은 진료소견서를 회사에 팩스로 보내며 병가처리를 부탁했다.

A씨는 이후 다른 2곳에 병원에 가서도 진료를 받았는데 특히 정신과 진료에서는 정신분열적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항우울제 및 향정신성 약물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B회사는 "병가처리를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회사에 와서 서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탈영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독촉했다. 이에 A씨와 모친은 2011년 7월 병가 신청을 위해 회사에 방문했다. 그런데 회사의 차장은 A씨에게 평소 근무태도 등에 대해 다그치듯 추궁했고, 이에 모친이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에 고성이 오가는 등 소란이 있었다.

그 후 A씨는 울산 자택으로 돌아와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2011년 7월 진료를 받고 돌아온 후 자택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이에 A씨의 유족이 방위산업체 B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울산지법 민사4단독 신원일 판사는 "B회사는 망인의 부친과 모친에게 각 8560만원을, 망인의 형에게 6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인정 사실에 따르면 망인의 지위, 망인이 수행하고 있던 업무의 성격 및 내용, 망인의 연장근로시간 및 월 휴무일수, 연속근무일수의 정도를 종합해 볼 때 망인이 업무가 상당히 과중했고, 그로 인해 망인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됐다"고 밝혔다.

또 "이에 망인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해 회사로서도 망인의 병원진료 및 병가신청, 정신적ㆍ신체적 고충토로 등이 잦아지기 시작한 2011년 5월경부터는 망인의 신체적ㆍ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생겼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망인에 대해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산업기능요원으로서의 지위를 상기시키면서 명시적ㆍ묵시적으로 업무 복귀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 과정에서 망인의 상사인 차장과 망인의 모친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일까지 벌어졌고, 망인은 직장상사와 모친 간의 갈등을 목격하면서 다시 회사에 복귀했을 때에 겪게 될 상황에 대해 고민이 깊어졌을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 산업기능요원으로서 군 재복무에 대한 불안감 등이 중첩되면서 정신질환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망인의 자살은 정신병적 기질이 원인이 됐거나 혹은 망인의 가정불화 또는 여자친구와의 애정문제 등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회사에게 자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망인으로서도 과중한 업무가 힘들더라도 이를 이겨내면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거나, 업무에 문제가 있다면 간부 등 상급자들에게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해 이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선택한 잘못이 있다"며 회사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자살 #산업기능요원 #방위산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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