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자격증' 사는 청년들, 참 슬픕니다

[청년의 대안①] 청년단체와 서울시 청년부채 실태조사 나서

등록 2013.06.04 18:28수정 2013.06.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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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도깨비방망이 같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에 맛이 들어 1~2백만원 빚을 졌던 것 말고는 부채를 안아본 적이 없다. 자랑삼아 하는 말은 아니다. 서른 중반까지 큰 빚 없이 살아왔다는 점은 일종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생활을 더 윤택하게 가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빚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적게 벌고 적게 쓰며 느슨하게 보내온 세월이 신용등급을 높이는 원천이 됐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걱정이다. 남들처럼 살고자하니 늘 몇 천만원 정도가 부족한 느낌이다. 집도 더 넓은 곳으로 옮겨가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 몇 천만원 정도로 해결되면 다행이다. 머릿속에서 대출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생소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경제활동을 하고 소득이 있는 입장에서 어지럽고 암담한 고민까지는 아니다. 정 안되면 그냥 뭉개도 된다. 남들보다 좁은 곳에서 소박하게 지내면 된다. 어떻게든 빚지고 살지 말자는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다움의 조건, 학자금 대출

2012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0세미만 부채보유가구의 평균 부채금액은 2624만 원이며 전체의 54.9%를 차지하고 있다. 전년 대비 같은 조사에 비해 부채보유 가구의 비중이 6.1%증가했다. 이 수치에 따르면 부채를 지닌 20대가 증가 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자료만 보게 되더라도 빚이라는 수렁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절반이 넘는 이들이 뻔히 알면서도 그 시커먼 웅덩이에 발을 담근다. 허리가 잠기고 목이 잠겨 턱을 치켜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허우적대는 발길질을 멈출 수 없다. 빚을 내려놓기 위해 다시 빚을 진다. 수렁이라는 것이 괜히 수렁이 아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갓 스무 살이 된 청년 다수가 사회의 견고한 기틀 위가 아니라 빚이라는 진창 위에 첫 발을 내딛고 있다.

학자금 대출이 가장 큰 문제다. 큰 액수도 그렇고 필수적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학자금 대출은 대학 입학 여부가 달린 중대한 사안이다. 대학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졸 취업자와 대졸 취업자의 임금격차는 거론할 것도 없다.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대학을 가야 한는 분위기가 팽배한 대한민국이다.

즉 집안에 여력이 없는 청년의 입장에서 학자금 대출은 '인간의 자격증'을 사는 것과 흡사하다. 꽤 비싼 자격증이다. 원금과 이자는 취업 후 분할 상환해야 한다. 이 빚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의 사회진출에도 왜곡된 영향을 끼친다.

적성과 지향을 떠나 무조건 연봉이 높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것이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나가기에는 빚의 압박이 무겁고 초조하다. 대학생들 눈높이가 높아서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들의 부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청년부채, 실태를 파악하고 공정하게 다뤄야

2013년 6월 3일, 연세대 정문 앞에 청년부채의 실태를 조사하는 현장조사원들이 나타났다. 청년부채의 문제의 심각성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청년부채 문제에 공정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다. 대학 진학을 기호와 취향에 따른 선택으로 치부하며 이자율 조정을 빼고는 모든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대학이나 학자금 대출 문제를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높은 실업률과 이직률을 기록하는 일자리 환경에서 청년은 사회적 약자다. 안정된 자립을 이루기까지 아무런 보호망이 없는 조건에서 대출의 유혹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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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연대은행 토닥토닥협동조합과 금융정의연대가 6월 3일부터 한 달간 진행되는 '청년부채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이뤄진 첫 현장조사에 대학생들이 모여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 청년허브


청년들의 연대은행인 '토닥토닥협동조합', '금융정의연대',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서울시 청년부채 실태조사'는 청년부채 문제를 공정하게 다루고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청년조사원들이 6월 한 달 동안 1000명의 서울시 청년들을 만날 계획이다. 개인은 개인의 치부라서 가리고 사회는 사회의 약점이라 쉬쉬했던 청년부채 실태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길 기대해본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당장의 필요 때문에 빚을 졌다가 신용불량에 빠지면 사금융만이 유일한 출구로 남는다. 이러한 청년들에게 손가락질 말고 근본적인 해법과 함께 따뜻한 손길을 내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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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채 실태조사 개시를 알리는 행사에서 현장조사원인 강홍구(24) 씨가 대학을 다니려면 무조건 빚을 질 수밖에 없는 문제를 지적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청년허브


"청년이 빚을 져야만하는 구조는 고착화" 

청년부채 실태조사 현장조사원 강홍구씨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 어떻게 이번 실태조사 현장조사원 일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를 통해 토닥토닥협동조합에 대해 듣고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대학등록금은 상상을 초월하고 청년이 빚을 져야만 하는 구조는 고착화되고 있다. 취업에도 사교육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빚 없이는 살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알리고픈 마음으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 청년이 빚을 져야만 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의 이야기인가?

"2008년 모 대학에 입학해 호주 유학 과정을 밟았다. 1년 동안 국내에서 공부하고 유학을 떠나는 프로그램이었다. 부모님이 첫 학기 등록금으로 600만 원을 여기저기서 끌어왔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크게 보여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로 호주 달러가 크게 올랐다. 그때 직감이 왔다. 나의 대학생활은 유지될 수 없었다."

-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빚을 져야 하는 청년의 처지가 당장에 바뀔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청년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문제를 개선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면 실태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부채를 안고 있는 서울시 청년들의 많은 참여와 사회적 관심을 고대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혁신일자리 모델 워킹그룹 프로젝트의 매니저입니다.
#청년의 대안 #청년부채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토닥토닥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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