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권력 감시'는 실종, '언론자유 통제'만 남아

[주장] 통신비밀보호법, 원래 취지와 다르게 악용되고 있다

등록 2013.06.04 18:56수정 2013.06.0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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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안기부X파일' 사건과 관련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과,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전 MBC본부장의 비밀회동 내용을 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 사건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를 위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래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회단체의 활동을 함부로 도청하거나 감시하는 것을 방지하여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통신비밀보호법이 원래 만들어진 이러한 취지와 다르게 사회 권력기관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무를 가진 언론의 취재와 감시활동을 방해하는 족쇄로 악용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사회 권력기관이나 인사들의 비리나 불법행위를 감시해야 하는 언론인들은 불가피하게 잠입취재나 타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인터뷰 내용을 녹음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이러한 언론인들의 취재활동을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개인의 사생활 보호 이익과 정부기관이나 공직자의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 언론인들에게 보장된 취재와 표현의 자유를 통한 공익적 이익이 서로 충돌할 경우, 어떤 이익을 보호되어야 할까? 당연히 공익적 이익이 보호되어야 한다.

특히 사생활 보호의 대상이 비리와 부정을 저질렀거나 이와 연루된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일 경우에는 반드시 언론의 취재와 표현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즉, 언론인이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의 비리를 취재할 목적으로 타인의 대화를 녹음해서 기사작성에 사용한 경우, 언론인의 녹음행위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공익을 위한 행위였을 경우에는 처벌을 면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언론인들의 취재활동에 대한 위법성조각의사유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통신비밀보호법이 언론인들을 처벌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위법성조각의사유란 법률적으로 위법이 되는 행위라도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있을 경우에 그 행위의 위법성을 면책하는 사유를 일컫는 것으로 다른 법률에서는 진실성과 공익성을 위법성조각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도 '안기부 X파일' 사건 관련 기자들이나 정치인이 실정법을 어긴 측면은 있지만 충분히 면책 받을 만한 여지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불법 감청·도청된 내용을 공개한 것이라 하더라도 중대한 공익을 위한 것이고, 나아가 대화 내용의 공개로 침해되는 사익에 비해 달성되는 공익이 더 크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언론인들이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법성조각의사유를 명문화해야 한다. 통신비밀과 대화의 비밀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요청이 더 큰 경우엔 제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화자가 공인이고 공개할 내용이 진실일 때, 그리고 대화 내용의 공개가 공익을 위할 때는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범죄수사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통신에 대한 제한조치가 허용된다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권력기관의 비리와 부패를 감시하고 밝혀내기 위해 감청을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권력의 감청은 최소화 되어야 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부여받아 공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공익적 목적을 위한 권력기관 감시활동은 최대한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최진봉 기자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PD저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위법성조각의사유 #통신비밀보호법 #표현의 자유 #최진봉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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