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근대를 말하다'

[서평] 이덕일 <근대를 말하다>

등록 2013.06.05 14:29수정 2013.06.0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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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현충일(顯忠日)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덕일 역사평설 <근대를 말하다>를 읽다 어느덧 현충일을 맞는다. 현충일이'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날이 맞다면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나라와 만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는 일 뿐 아니라 매국행위에 열을 올린 매국노들도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 이덕일의 표현을 빌자면 '근대'는 아픈 역사이며 '이 시기처럼 많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아는 것이 극히 적은 시기도 드물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를 맞는 비극을 겪는 고종의 재위 기간은 무려 44년, 또 그는 일왕 메이지(明治)와 1852년 생 동갑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일국의 리더들이 그들의 삶과 궤적을 같이 한 격동의 시기에 국제정세를 어떻게 파악하고 정책을 어떻게 펼치고, 또 인재를 어떻게 등용했느냐에 따라 한 나라는 식민지가 되고 한 나라는 점령국이 되었다. 정세파악에도 인재등용에도 실패했던 고종은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줄타기 정치수완'과'외교적 방법'에 의지해 중심을 잃고 헤매다가 급기야 나라도 잃고 본인조차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고종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정치노선을 선택할 생각이 없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가슴 아프다.

역사평설로서 사료(史料)에 의한 팩트(fact)에 그 뿌리를 두고 저자가 직접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며 편찬한 <근대를 말하다>는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망국의 몇가지 풍경'에서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을사오적이었던 매국노들의 이름을 그들의 직책과 함께 친절하게 나열한다.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그들이다. <황성신문>은 을사늑약 체결 다음 날 '수십 인의 군중이 학부대신 이완용의 집에 돌입하여 불을 질렀다'고 보도했다.

같은 해 11월 을사늑약의 굴욕적인 조약에 반기를 들고 시종부무관장 민영환, 조병세, 영국에 주둔하고 있던 서리공사 이한응 등이 자결하고 다음달 학부주사 이상철, 시위대 김봉학이 자결했다. 고종은 을사늑약 닷새 후인 1905년 11월 22일 조약체결 당사자인 외부대신 박제순을 의정대신으로 승진시키고 다음달 학부대신 이완용을 임시외부대신으로 삼는다. 이것이 당시 백성들이 믿고 있던 권력수뇌부들의 하는 짓들이었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국가적인 시스템을 동원하여 나라를 팔아먹는 한편으로, 1901년 2월 일본의 대(對)러시아 개전론을 주창하고 한국, 만주, 몽골, 시베리아까지 일본이 차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대(大)아시아주의를 제창한 국국주의의 첨병 '흑룡회'의 손발이 된 '직업적' 친일분자인 일진회와 송병준이 그야말로 직업적으로 프로페셔널하게 대한제국을 일본에 넘기는 작업에 충실하고 있었다. 저자 이덕일은 말한다.

조선이 일본과 '한.일수호조규'라는 새 조약을 체결한 1876년까지만 해도 조선 역시 많은 기회가 있었다. 일본은 평민 출신 이토히로부미가 초대 내각 수상에 오를 정도로 일관되게 근대화의 길로 매진한 반면 조선은 근대적인 정치·사회체제 수립에 실패한 채, 급진개화파 김옥균은 물론 온건개화파 김홍집까지 모두 죽여버리고 극도의 혼란에 빠져버린다.

고종도 을사늑약 이후 고립무원에 빠져버린다. 대한제국의 수뇌부들과 직업적 친일분자들이 나라를 일본에 갖다 받치기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한일강제합병 직전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서른 살의 열혈청년 '안중근'은 조선 초대통감인 68세의 이토히로부미를 단총으로 네발을 쏴 사살한다.

안중근은 자서전에서 '한국민 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황제를 폐위시킨 죄', '5조약(을사늑약)과 7조약(정미조약)을 체결한 죄',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교육을 방해한 죄', '정권들 강제로 빼앗은 죄',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 이토를 사살한 이유 15가지를 기술했다.

2장 '절망을 넘어서'에서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탈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지식인 관료들의 상반된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10년(순종3) 8월 22일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의 정식명칭은 '일한병합조약'이었다. 이 조약을 위해 이완용일파와 송병준의 일진회가 누가 망국에 더 큰 공을 세우는지 서로 경쟁하는 동안 '망하는 나라에서 눈뜨고 살아 있을 수 없다'며 자결하는 인사들이 너무 많았다.

1910년 8월 국록 한톨 먹지 않은 황현이 독약을 마시고 제자들에게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어서야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독약사발에서 입을 서너 번 뗄 정도로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나라를 망친 자들은 따로 있고 목숨 걸고 나라의 위상을 염려하는 인사들이 따로 있는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뒤이어 동생 황원이 저수지에 몸을 던졌고, 금산 군수 홍범식, 주러공사 이범진, 승지 이만도, 진사 황현, 환관 반학영, 승지 이재윤, 송종규, 참판 송도순, 판서 김석진, 정언 정재건, 감역 김지수, 의관 송익면, 영양유생 김도현, 태인유생 김천술, 연산 이학순 등이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4권 (순국의사)편에 실려 있는 순국의사 명단이다.

자결로 망국의 한을 달래는 선각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서전서숙'을 설립하는 이상설, 이회영 등이 주축이 되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었던 양기탁 중심의 애국계몽운동세력과 안창호 중심이 서북, 미주 지역의 신흥시민세력이 결집한  비밀결사조직, '신민회' 등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회영 6형제 일가가 전 재산을 정리해 마련한 독립운동 자금은 40여만 원이었는데 당시 3원 정도이던 쌀 한 섬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현재 돈으로 약 600억원의 거금이 된다.

지난 6월 3일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전두환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씨(54)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전 전 대통령은 현재 대법원에서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 원 중 1672억 원을 미납한 상태다. 지금 현재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했던 사람의 일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독립운동가 이상룡은 '생명과 의리를 모두 취할 수 없다면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들과 이들이 같은 대한국민일 수 없는 대목이다.

독립군에 관한 소개를 읽다 보면 저자의 해박한 지식의 끝이 어디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조선의 군사력은 1802년(순조2)1월, 노론 벽파의 영수인 영의정 심환지가 정조가 창설한 장용영을 해체시키면서 결정적으로 약화된다.'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무관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여기서 배출된 장교 500여 명 중 김창환, 이관직, 신팔균, 이장령, 이세영 등은 이회영 등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 교관이 되어 독립군을 양성하는 인재가 되는 한편, 나머지 인물들은 일본군으로 편입된 채 복무한다. 김좌진, 홍범도 장군의 '청산리대첩' 대승, '의열단'사건 등 일제를 경악에 빠뜨린 일대 사건들의 배후에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3장 식민통치구조, 4장 운동의 시대, 5장 대한민국임시정부, 6장 만주의 삼부 등은 책으로 직접이덕일 선생의 설명을 접하길 바란다. 한눈에 우리 근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 모습에서 현재의 우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안타깝지만 그 안에서도 노선간의 갈등, 반목, 통일 등의 모습이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사료를 통해 당시 일본의 경제상황을 알려준다. "군산복합체 성격이 강했던 일본 자본주의는 전쟁 특수로 급성장 했다. 전쟁이 발발한 1914년 11억 엔의 채무국이었던 일본은 수출액이 4배 이상 증가해 1920년에는 27억 엔의 채권국으로 탈바꿈한다"고 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에 놓인 철도를 비롯한 인프라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확연히 알 수 있는 설명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과 같은 같잖은 이론이 공분을 살 수밖에 없다.

애국순국선열들을 기리면서 경건하게 맞이해야 할 현충일이기도 하지만 청산하지 못한 일제가 남긴 구습, 악법, 구태를 타파하는 계기 또한, 현충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술자리에 여성을 동석시키는 잘못된 밤문화도 알고 보면 서울에 공창제도를 도입한 일제시대에 시작되었고, 스스로 자신을 갈고 닦다 보면 세상에서 알아본다는 의미의 '입신양명'이란 말 대신 어떻게든 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개인적 의미가 강한 '출세'란 말이 사용된 시작도 일제시대부터라고 한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3·1운동 횟수와 참가 인원을 전국적으로 1393회, 195만4000명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당시 서울에 있는 통신원의 기록을 토대로 "창으로 찌르고 칼로 치는 것이 마치 풀 베듯 해서 즉사한 사람이 3750여 명이고, 중상을 당해 며칠 후에 죽은 사람이 4600여 명"이라고 전한다. 새삼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현충일에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순국선열들에 이분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사실, 1956년 대통령령으로 지정된 현충일의 주요 추모대상이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 그 자체인 6·25전쟁으로 희생된 40만 명 이상의 국군들께도 고개 숙여 묵념한다.
덧붙이는 글 <근대를 말하다> 이덕일 씀, 역사의아침 펴냄, 2012년 6월, 372쪽, 1만6000원
첨부파일 현충일.docx

근대를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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