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약 제쳐놓고 느닷없이 시간제 이야기만"

[인터뷰]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록 2013.06.05 15:00수정 2013.06.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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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총리,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합동 브리핑 정홍원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4일 정부가 발표한 '고용률 70% 로드맵'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춘 선언적 발표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부족하고, 법률적인 검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로드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에 대해서는 그 추진과정과 파장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정규직 시간제'라고 설명했지만, 한국사회의 노동에 관한 근본적인 시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또 다른 불안정 노동의 확대만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역시 "기존에 있는 불안정 노동부터 개선해야지 지금처럼 느닷없이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려를 표했다.

4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은 "시간제 일자리는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이야기"라며 "그동안 제법 좋은 공약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다 어디가고 느닷없이 시간제 일자리만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대선공약에 없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 급하게 내놓은 이유는?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창조경제를 통한 미래산업의 육성, 청년층의 창업지원, 공공부분의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금전보상제도 등을 일자리와 노동분야의 주요 공약으로 내놓았다. 어디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나와 있지 않았다.(관련기사1, 관련기사2)

이로 인해 지난달 말에 갑자기 등장한 '시간제 일자리'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에 의문이 생긴다.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내놓은 급조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수요조사나 직무분석조차 진행하지 않고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좋은 일자리를 쪼개 하위 개념의 일자리를 만들 일이 아니"라며 "현재 대부분 시간제 일자리인 사회복지 일자리를 공공부문이 끌어안아 지금보다 더 나은 일자리로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에 존재하는 불안정 노동에 대한 개선노력 없이 진행되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관련해 "지금의 방식대로라면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라는 간판을 들고 원래 하고자 한 노동 유연성을 들고 나온 것"이라며 "결국 일자리에 대한 안정성 기조가 유연성 기조로 전환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이 몸담고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 1986년 한국노동교육협회로 시작해 지금까지 27년 동안 한국사회 노동운동과 정책에 참여해온 권위 있는 민간연구기관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까지 연구소장을 맡아 왔다.

다음은 김유선 선임연구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4일 "기존에 있는 불안정 노동부터 개선해야지 지금처럼 느닷없이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려를 밝혔다. ⓒ 최지용


- 이번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을 요약하면 창조경제 활성화, 근로시간 단축, 시간제 근로 확대, 청년·여성·장년층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총평을 한다면?
"기존의 공약 중 '창조경제 활성화'는 사실 아직까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머지는 고용률을 7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연간 노동시간 단축, 상용지속적 일자리의 정규직 전환 등의 내용은 기존 보수 정당에서 내놓지 않은 전향적인 정책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

다만 의심이 있었던 것은 실현 가능성의 여부다. 고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시간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 정도가 있었는데, 이것만 갖고는 고용률 70% 실현이 불가능하다. 연간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에도 초과 근로를 함부로 못하게 한다는 것 정도만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노동시간을 OECD 수준인 1800시간으로 단축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 고용률 70%가 단지 선언적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지적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보다 종합적이고 구체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발표가 숫자 채우기로 가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고 나왔는데, 이건 그동안 공약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이야기다. 그동안 좋은 공약들이 제법 있었는데 그건 다 어디로 가고 느닷없이 등장한 시간제만 이야기 하는 건지 모르겠다.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닌가 한다."

- 시간제 근로 확대는 선진국에서 상당 부문 도입되고 있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평가도 있다.
"우리나라의 시간제 일자리는 계속 늘어 2012년 8월 현재 10%를 넘었다. 그럼에도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한국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은 34개국 중 23등인데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택한 비율은 3등이다. 시간제 일자리 대부분이 비자발적이란 이야기다. 이러한 비자발적 시간제 근무는 대부분 임시직일 수밖에 없다. 가장 조악한 형태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가 사실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상용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시간제 일자리의 90% 이상이 임시직인데 그런 관행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사전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별 다를 게 없다. 또 마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게 정당하다는 인식을 불러올 수 있다. 시간제 일자리는 아무래도 허드렛일을 하기 십상인데 그러면 또 직업의 하위 층이 생기는 것이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공무원을 늘린다고 했는데, 최근에 갑자기 '시간제 공무원'이란 것이 등장했다. 시간제 교사도 마찬가지다. 아직 법률적으로도 검토가 안 됐고, 현재 학교에 이미 정규직 교사와 계약직 기간제 교사가 있는 상황에서 여기에 또 시간제 교사가 들어가면 혼란은 뻔하다."

- 지적한 것처럼 기존의 비자발적 시간제 근로자를 전환시키거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 점이 없어 보인다.
"시간제 일자리와 풀타임 일자리의 사이에 '전환청구권'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 풀타임 정규직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환하는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 여성이 애를 낳고, 키우다 보면 업무 부담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때 일정 기한 동안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했다가 아이가 좀 커 업무 부담이 줄면 다시 풀타임 일자리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왕 시간제 공무원을 통해 모범을 보이겠다면 있는 현재 좋은 일자리를 쪼개 하위층을 만들 게 아니라, 현재 대부분 시간제 일자리인 사회복지 일자리를 공공 부문이 끌어안아 지금보다 더 나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이런 분야들이 민간에 그냥 맡겨져 다 임시직,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기존에 있는 불안정 노동부터 개선해야지 지금처럼 느닷없이 시간제 공무원을 만드는 건 맞지 않다."

- 고용률 70%를 위해선 시행되는 일자리 창출 가운데 공공 분야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민간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로 보인다. 민간이 나설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세제혜택이나 지원금 지급 정도를 얘기 하는데 이것만으로 가능할까.
"아주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사기업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 대부분이 형편없는 일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한국의 상황엔 맞지 않다. 예를 들어 현재 고용률이 떨어지는 계층은 여성이다. 그 중에도 고학력 여성이다. 저학력 여성은 OECD 평균과 거의 비슷한데 고학력 여성의 경우엔 OECD 평균보다 낮다. 이는 우리나라가 출산·육아로 노동시장에서 빠져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서 극복될 문제가 아니다. 고학력 여성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시간제 일자리에 취업하는 것보다 주부로 사는 것을 택한다. 고학력 여성과 마찬가지로 청년 고용률도 똑같은 사례다. 그들의 기대에 상응하는 일자리 만들어져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노동시장유연화 확대를 위한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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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합동 브리핑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 장시간 근로를 없애겠다는 것도 정부의 큰 목표 중 하나다. 현재 년 2100시간 이상인 근로시간을 2017년까지 1900시간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 나온 정책만으로는 100시간도 못 줄인다. 현재 50% 정도에 머물고 있는 주 5일제를  전면 실시하고, 12시간으로 돼 있는 연장근로의 한도를 장기적으로 8시간까지 줄여야 한다. 또 통상임금 같은 경우 대법원 판례대로 하면 노동시간 줄 요인이 생긴다. 대법원 판례에 준해서 법령 재개정하면 노동시간 단축 요인이 생기고, 노동자들이 유급 휴일도 더 쓰게 하는 구조가 마련될 것이다."

- 갑자기 튀어나온 시간제 일자리가 결국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여전히 보수적인 정부가 노동 유연성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전에 노동시장 유연화, 신자유주의 등이 전면 재검토 되고 있다. 한국은 2011년까지만 해도 노동시장 유연화가 거론되다가, 2012년 총·대선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말 자체가 여야 막론하고 사라졌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의 이야기가 나온 게 그만큼 우리 사회 양극화 문제가 심각했음을 반증한다. 박 대통령도 대선 시기에는 유연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시간제 일자리가 거론되는 거 보니 우려가 된다. 지금의 방식대로라면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라는 간판 들고 원래 하고자 한 노동 유연성을 들고 나온 것이다."

- 이번 발표가 산적한 노동현안을 무시하고 고용 부문에만 집중해온 결과로 보인다. 노동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지금도 철탑에 오른 노동자들이 여럿 있다. 미우나 고우나 정부가 노동 문제에 손을 댔으면 현안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번 발표엔 전혀 없다. 공약 중에 법원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이 있으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하나도 시행되지 않았다. 현대차의 문제를 언제까지 방관만 할 것인가? 정부는 고용률 70%에 올인하고 있다. 정말 의미 있게 '고용률 70%'란 수치를 달성하려면 노동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행정가들이 그러기는 싫고 자신이 없으니 유일한 수단으로 찾은 게 시간제 일자리이다. 결국 일자리에 대한 안정성 기조가 유연성 기조로 전환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5년 내 고용률 70% 어려울 것... 숫자만 채우려는 무리수 부작용 부를 것"

-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고용률 70% 달성이 가능하다고 보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어렵다고 본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5년 내에 달성이 힘들더라도 정량적 목표를 두고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과도하게 책정되고 그것을 숫자로 채우려고 하다가 무리수를 둘 수가 있다. 그러면 그 부작용도 심각하다. 나는 시간제 일자리 등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 박근혜 정부가 100일이 됐다. 노동분야에서 지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비교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극단적인 노동시장 유연화 표방했고, 극우적인 논리를 당당하게 밝혔다. 5년을 거치면서 그 방향이 한국사회엔 전혀 맞지 않다는 게 드러나 철퇴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상당히 실용주의다. 야권에서 나올만한 공약들을 잘 흡수했다. 그게 선거에서 승리한 요인으로 본다. 사실 누가 되든 백성들이 잘 먹고 살게 해주면 그게 좋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좋은 정책을 빨리 수용하는 것을 보고 약간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100일 지나면서 모두 '허당'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지금껏 나온 이야기가 통상임금과 시간제 일자리뿐인데 원래 공약은 어디가고 엉뚱한 것만 나오는지 안타깝다. 예쁘게 봐주려고 해도 봐 줄 수가 없다."
#고용율 #로드맵 #박근혜 #비정규직 #시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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