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부터 과일까지... 선물만 팔아도 29만원 넘는다"

[인터뷰] '전두환-노태우' 택배기사의 눈으로 본 '추징금 미수' 논란

등록 2013.06.12 20:58수정 2013.06.1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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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가족 "전두환 추징금 환수하라" 광주에서 상경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가족을 비롯한 '5.18 역사왜곡 저지 국민행동 준비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전 전 대통령 은닉재산에 대한 진상조사와 추징금 징수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의 한 골목, "죄 없는 국민을 죽인 살인마 전두환을 왜 경찰이 보호하냐"는 원성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가족 등 '5·18 역사왜곡 저지 국민행동 준비위원회'가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180여명의 경찰과 바리케이드에 의해 저지됐다. 이들은 결국 전 전 대통령의 집과 약 500m 떨어진 연희파출소 앞에서 집회를 열어야 했다.

담장 길이만 약 100m쯤 되는 전 전 대통령의 집 앞 길은 평소에도 십여 명의 경찰과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일반 시민은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택배기사 천아무개씨(35)는 '일반인 접근 불가' 지역을 드나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반인이다. 천씨는 지난해부터 약 1년 동안 전 전 대통령의 집에 택배를 배달하고 있다. 연희1동에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 집도 그의 담당 구역이다.

10년째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천씨는 "물건을 딱 보면 이게 좋다, 안 좋다 감이 온다"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들어오는 선물만 팔아도 29만 원은 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또 "두 전직 대통령 주소는 번지수까지 외우고 있어서 그 집 물건은 유심히 보게 되는데, 가끔씩 '대통령님께', '각하'라고 쓴 것을 본다"며 "현직 대통령이 아닌데도 그렇게 쓴 것을 보면 어이가 없어서 뭐하는 사람들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천씨는 특히 "십몇 년을 놔둔 추징금이 4개월 만에 환수가 될까? 난 100% 안 된다고 본다"며 "물론 대통령에 대한 전관예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도에 지나치다"고 분개했다. 오는 10월 시효만료를 앞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6월 12일 현재 약 1672억 원이다.

천씨는 대통령들과 관련된 서적을 읽는 등 평소에도 정치·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다음은 천씨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전두환 집은 '성벽' 수준... 일반인은 대문 구경도 못 한다"

- 언제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집에 택배를 배달했나.
"1년 정도 됐다. 노태우 집도 마찬가지인데, 처음에는 집 앞에 경호원들이 서 있는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다. 전두환 집은 동서남북 사방이 다 '안전가옥(정부기관 등에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가옥)'이라 일반인들은 근처에도 못 간다. 나도 택배 배달트럭 몰고 가면 경호원들이 딱 막아선다. 택배 왔다고 하면, 누구에게 왔는지 물어보고, 자기들끼리 무전기로 확인한 후에야 들여보내주는 식이다."


-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 풍경은 어떤가?
"보통은 6~7명 정도의 경호원들이 집 앞에 항상 서 있다. 주로 20대 초중반인데 몸이 야무지고 탄탄하더라. 그런데 한 번도 웃는 표정이나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모습을 못 봤다. 젊은 애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진 않고, 아무래도 위에서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시키는 게 아닐까. 대화해본 적 있냐고? 예전에 딱 한 번, '전두환 전 대통령 잘 계시냐'고 말 걸어봤는데 대답도 안 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말더라. 다음부터는 그냥 조용히 물건만 배달한다.

전두환 집 자체에는 가족들이 살겠지만,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앞, 뒤, 옆집에는 모두 경호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택배가 온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직접 상주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말하자면 그 일대 전체를 국가에서 매입을 한 거다. 그렇다보니 일반인들은 드나들 수가 없고, 근처에 산다고 핑계 대고 갈 수도 없다.

내가 택배트럭을 몰고 가면 집 앞 대문까지는 들어간다. 골목길 초입에서 무전기로 확인받고 통과한 뒤, 대문 앞에 초소가 따로 있다. 거기 경호원에게 물건을 넘겨주는 식이다. 그런데 1년간 배달하면서 대문 안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담이 사람 키보다 높아 풍경도 안 보이는 게 뭐 거의 성벽 수준이다. 가족들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영화 <26년>에서 나오는 모습, 멀리서 총으로 조준하고 그런 건 할 수도 없다.

다만 그 근처 일대가 다 부자들이니까 집 조경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TV에서 나오는 부잣집 풍경처럼 대문 열면 잔디 쫙 깔려 있고, 피크닉 의자 있고, 비싼 돌 박혀 있고, 뭐 그런 식 아니겠나. 전두환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택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있을 수는 있지만 저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것은 있다. 작년 11월엔가, 노태우 집에서 누가 결혼하는지 청첩장 200~300통을 박스로 배달했던 기억은 난다. 인쇄가 잘못됐는지 반송을 보내더라.

노태우도 전두환처럼 얼굴 본 적은 없지만 딱 한 번, 외출했다 들어오는 건지 집 앞에 검은 차들이 에워싸고 에스코트하는 걸 봤다. 원래 노태우 집 근처에 두 대통령을 경호하는 중대가 따로 있다. 의경들이라고 하나? 아무튼 그 동네에 중대가 하나 있어서 계속 교대하면서 경호한다. 기동중대가 보통 알기로는 80~100명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대통령 각하'라 써보내는 사람 있어... 얼굴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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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전두환 골프대회가 열린 대구인터불고 골프장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축하화환을 보내고 직접 골프를 쳤다. ⓒ 조정훈


- 주로 어떤 물건들이 배달되나. 제일 기억나는 물건은?
"택배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은 한정적이다. 진짜 비싼 건 직접 주겠지. 대부분이 과일이나 굴비 같은 선물세트로, 라면박스 크기라고 보면 된다. 작은 건 거의 안 온다. 가끔 사과박스 같은 거 배달할 때면, 기사들끼리 '혹시 이거 돈 든 거 아냐?' 뭐 이런 얘기도 한다. 뜯어보지 않으니 내용물은 알 수 없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멸치 박스를 보낸 적도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안에 돈 들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정성스럽게 싸서 보냈더라. 근데 물건을 드는데 멸치 냄새가 팍 났다.

기억에 남는 건 올해 명절에 배달한 물건이다. 보통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써서 보내지는 않고, 보좌관이나 익명으로 해서 보낸다. 그런데 올 초 설날에 국무총리가 보낸 건 특이해서 기억이 난다. 그때 총리가 김황식이던가? 보내는 사람이 '국무총리실'로 돼 있고, 주소는 국회의사당, 그러니까 여의도동 1번지로 되어 있었다. 한우세트였는데, 한 15kg 정도로 굉장히 무거웠다.

우리는 물건을 딱 보면 이게 좋다, 안 좋다 감이 오는데, 그건 포장부터가 굉장히 비싸보였다. 웃긴 건 총리실에서 똑같은 박스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한꺼번에 선물을 보냈다는 거다. 한 사람만 주면 말이 나오니까, 아마 그렇게 했겠지. 그런 한우세트가 보통 40~50만 원 정도는 할 거다. 백화점에서 보니, 한우세트 비싼 건 100만 원대도 있더라. 전두환의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들어오는 선물만 팔아도 29만 원은 넘지 않겠나."

- 그런 비싼 물건 배달할 때 기분이 어떤가.
"뭐 내가 선물하는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지. 굳이 저런 사람들한테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나 싶다. 일단 세금 문제부터 그렇지 않나. 돈을 그렇게 해먹었는데, 당장 추징금부터 뱉어내야 할 거 아닌가. 얼마 전 TV조선에서에 한 '5·18 북한군 개입설' 방송도 봤는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 들으면 그때 가족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상처가 클까 싶다.

그리고 아직도 '대통령 각하'라고 써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택배 송장은 거의 프린터로 출력돼서 나오는데, 거기에도 그렇게 쓴다. 전두환은 서대문구 연희2동 95-4번지, 노태우는 연희1동 108-17번지, 이렇게 두 전직 대통령 주소는 번지수까지 외우고 있어서 그 집 물건은 유심히 보게 되는데, 가끔씩 '대통령님께' 이렇게도 보내더라. 현직 대통령이 아닌데도 말이다. 특히 '각하'라고 쓴 거 보면 어이가 없어서 어떤 놈들이 보내는지, 뭐하는 사람들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친구들에게 내가 전두환 사저에 택배 배달한다고 말하면 "전두환 얼굴 보면 욕 좀 해줘" 뭐 이러더라. 주변에서 전두환 좋아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본 거 같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더 싫어하고."

"한 달 전부터 심해진 경호, 사복경찰도 눈에 띄게 늘었다"

- 최근 분위기는 어떤가. 좀 달라진 점이 있는지?
"전두환 사저 경호가 더 삼엄해졌다. 노태우 쪽은 평소처럼 경호원들이 집을 둘러싸고 동서남북 4명 정도만 배치돼있다. 전두환 집은 경호원이 6~7명으로 더 많은데, 요즘에는 사복 입은 경호원도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게 눈에 띈다. 예전엔 전경만 있었는데, 4·5월쯤부터 사복 입은 경찰들이 어슬렁거리는 거다. 옆에 워키토키 같은 무전기 딱 들고, 동네 집 근처만 서성이는 거 보면 딱 경호원인 게 티가 난다.

최근엔 오는 택배도 많이 뜸해졌다. 예전에 명절에는 하루에도 6~7개씩 매일 배달했는데, 최근에는 한 달에 한두 번이나 갈까? 아무래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도 있고, 관련 보도도 나고 하니까, 정치인들도 몸을 사리는 거겠지. 반면 노태우 집은 그나마 물건이 온다. 전두환과 달리 노태우 쪽은 가끔 가족들이 홈쇼핑 같은 데서 자잘하게 생활용품 등을 사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물론 두 집에 들어가는 택배기사가 나 혼자는 아니다. 대기업 택배는 물량이 2~3배로 훨씬 많으니까, 전두환 집에 배달하는 물품도 우리보다 두 배 이상은 많겠지.

어제(10일)도 전두환 집 지나가는데 근처가 시끌시끌했다(관련기사 : "왜 경찰이 전두환을 보호하는데? 저 살인마를…"). 일터가 거기라서 일요일 빼고는 매일 연희동에 가는데, 유독 다른 날보다 경찰도 많이 서 있고 어수선했다. 사실 노태우 사저 앞으로는 일반인들도 지나다닐 수 있고 시위도 적어 조용한 편이다. 전두환은 관련사건 있을 때마다 노태우 쪽보다 더 시끄럽긴 하다. 일단 일반인이 못 다니게 집 앞 길을 막아놓은 것 자체부터가 그렇지 않나. 전두환 관련해서 집 근처에 풍자 포스터도 붙이고 그런다는데, 그래서 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봤다. 붙이자마자 경호원들이 떼니까 그런 거겠지.

근데 오히려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은 그 대통령들이 사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경호원이 만날 상주하면서 지키는데 도둑이 있겠나. 그 집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배달 왔다고 전화하면 집 앞에 놓고 가라면서 '괜찮아요, 아무도 안 가져가요' 하더라. 보통 사람들은 못 그러지 않나. 그래서 그 동네 배달하기가 편하다. 잘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다."

"17년 끈 1672억 환수를 4개월 만에? 제대로 추징 않는 건 국가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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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 4차 명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 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비영리 독립언론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취재한 결과물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4차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뉴스타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Chun Jae Kook)씨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 Corporation)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을 밝혔다고 공개했다. ⓒ 권우성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가 논란이 됐는데.
"아들들도 그렇고 원래 말 많지 않나. 대통령 자식들이면 거의 대한민국 1% 아닌가. 그런 거 보면 추징금 당연히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제대로 하지 않는 국가 잘못이 크다.

얼마 전에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한 일 알고 있나? 전두환이 골프 치러 갔다가 내기에서 져서 지인에게 양주를 준 모양이다. 근데 이 사람이 SNS에 '드디어 먹어보다, 각하께서 주신 선물' 뭐 이렇게 써서 사진을 올렸다. 그것도 엄청 비싼 양주였다. 전두환이 돈은 많은 건 알고 있다. 근데 그 주위 사람들이 아직도 '각하'라고 하면서 추종하고 떠받드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열 받는다. 주위에서 '각하, 각하' 하는데 스스로도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 문제를 언급하고 나섰는데. 추징금 환수가 올해 내에 되지 않을까?
"추징금 선고받은 게 1996년인가 그럴 거다. 십 몇 년을 놔둔 추징금이 4개월 만에 환수가 될까? 난 100% 안 된다고 본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전관예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도에 지나치다. 택배에 '대통령 각하'라 써서 보내는 거 보면 모르겠나. 전두환 추종세력은 지금도 대통령인 것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런 게 국민으로써 화나는 거다. 노태우는 그나마 몸도 안 좋고 자기가 추징금도 많이 냈는데, 전두환은 그런 것도 없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 1672억 원, 그거 추징 안 되는 거 보면 아직도 파워가 센 거다. 힘이 없고 그러면 벌써 추징이 됐겠지, 국가에서 가만히 있었겠나."
#전두환 #추징금 #택배기사 #전두환 추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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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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