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같은 눈이 매력적인 아이..."6년 뒤 또 보자"

[취재후기] <오마이뉴스> '더불어 입학식'... 관심과 정이 필요했던 아이들

등록 2013.06.18 14:54수정 2013.06.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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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 하나가 주뼛거리며 <오마이뉴스>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등에는 자동차 모양의 커다란 파란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앞쪽 스크린에서 만화영화 <마법 천자문>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이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아이와 함께 온 어머니는 대회의실 맨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가 '두두두두' 하며 '전쟁놀이'를 시작하자 비로소 아이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만화영화보다 '친구'와 같이 노는 게 더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지난 12일부터 3일간 열린 <오마이뉴스> '더불어 입학식'에 함께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08년부터 '나홀로 입학생' 30여 명을 초대해 2박 3일 동안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다. 나홀로 입학생은 도시와 떨어진 전국 농어촌지역 초등학교에 '홀로 입학한' 아이들을 말한다. 이번 입학식에는 전국 23개 시골 초등학교 및 분교 등에서 온 32명 학생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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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입학식'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단체사진' 촬영이다. 전교생 중 동갑내기가 자기 혼자 뿐인 아이들이 이날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 이희훈


'전쟁놀이'와 '좀비놀이'를 하며 친해진 아이들

아이들과는 의외로 쉽게 친해졌다. 첫째날(12일), 출석번호 1번답게 가장 먼저 입학식장에 온 성빈이는 서른여 명의 아이들 중 몇 안 되는 내 '전우'다. '전쟁놀이'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입학식에 함께한 사진기자가 '두두두두' 하며 따발총을 쏘면 성빈이는 '으악' 하며 쓰러졌다가 다시 '부활'해 반격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내 쪽으로 와서 수류탄을 던진다. 내 앞에서 '뻥' 하고 터졌다며 얼른 쓰러지라고 한다. 잔인한 녀석.

둘째날(13일) 오후 용인 에버랜드에 가서는 아이들과 내가 갑자기 '좀비'가 되기도 했다. 성빈이와 두환이가 서로 좀비가 되어 쫓고 쫓기다가 두환이가 내 뒤로 쏙 숨자, 성빈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팔을 '앙' 깨무는 시늉을 했다.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이다. 나는 두 눈을 뒤로 뒤집고 흰자위만 드러낸 채 아이들을 쫓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으아악' 하며 도망가면서도 히죽히죽 웃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섭이가 "자기도 끼워달라"며 다가왔다. 나는 곧장 남섭이에게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려주었다.

아이들은 장난을 걸다가도 내 반응이 조금만 시원찮으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도 내가 잠시 휴대폰을 살피거나 수첩을 뒤적거리려고 하면 아이들은 바로 표정이 바뀌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면 아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게 된다. 나는 그 즉시 '군인' 혹은 '좀비'가 되어 아이들을 쫓아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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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입학식' 둘째날(13일). 이날 오후 아이들은 용인 에버랜드를 찾아 사자와 호랑이, 곰과 독수리 등 다양한 동물 친구들을 만났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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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입학식' 둘째날(13일). 이날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이희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와 '관심'

놀이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울음'을 달래주며 친해진 아이도 있다. 입학식 메인 이벤트인 '또래와 단체사진 찍기'를 마치고 같이 '뽀로로 케이크'를 나눠먹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 사이로, 태준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 해서 가봤더니 태준이 엄마가 태준이보고 "다른 친구들과 좀 어울려보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태준이는 뭐가 그리 서운했던지 울음을 쉽게 그치지 않았다. 엄마 옆에 꼭 붙어있을 뿐. 내가 태준이와 같은 '경남 진주' 출신임을 내세우며 "형이랑 같이 다니자"고 하니, 그제서야 눈물을 닦기 시작했던 태준이.

엄마 정미경씨는 그런 태준이의 모습에 속상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안 그래도 학교에 같은 나이대 또래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데, 태준이 성격이 내성적이기까지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이다.

처음에는 쑥쓰러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 가장 밝게 지냈던 성빈이도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성빈이에게 문득 "학교 재밌냐"고 물어봤더니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재미없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온 것이다. 성빈이는 올해 강원도 정선 남선초등학교에 친구 없이 '나홀로' 입학했다. 학교에서는 3, 4학년 형이나 누나와 주로 지낸다고. 하지만 4학년 형한테 축구공을 빼앗긴 적도 있는 등 같은 또래가 아니어서 힘들 때가 많았다고 성빈이가 알려줬다.

사슴 같은 큰 눈이 매력적인 남섭이도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했다. 둘째날 아침, 강화도 오마이스쿨 운동장에서의 아침 운동 시간. 다른 아이들은 모두 모여 축구공을 차고 있었는데, 남섭이 홀로 운동장 한쪽에서 놀고 있었다고. 그런 남섭이를 발견한 남자 선생님이 공 하나를 가져와 같이 공을 찼다. 그 뒤부터 남섭이는 종일 그 선생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한번 정을 붙이면 온 마음을 다하는 남섭이었다.

남섭이는 자존심 하나는 센 아이이기도 했다. 둘쨋날 점심시간, 남섭이가 밥을 먼저 먹고 옆으로 지나갔다. 나는 남섭이 이름이 갑자기 기억 나지 않았다. 무심코 "이름이 뭐예요~" 하며 유행하는 노랫말처럼 물어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름 알려주세요" 하면서 가슴에 달고 있던 이름표를 확인하려고 해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으로 가리기도 했다. 곧 이름이 떠올라 "남섭이!" 하고 부르자 그제서야 웃으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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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입학식' 둘째날(13일), 아이들은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한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이들은 쑥스러운 가운데서도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 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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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입학식' 둘째날(13일), 아이들은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한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날 저녁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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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입학식' 둘째날(13일), 아이들은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한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이들이 벗어놓은 신발이 앙증맞다. ⓒ 이희훈


얘들아, 형은 잊어버려도 친구는 평생 간직하기를

아이들은 인솔 선생님이나 부모님 도움 없이도 곧잘 친해졌다. 아이들은 생일이나 취미, 장래희망 같은 공통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서로 쉽게 다가가고 말도 잘 걸었다. 친구들에게 다다가기도 힘들어했던 태준이에게는 민영이라는 여자 친구도 생겼다. 한번 잡은 짝꿍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이런 아이들이 다시 전국으로 흩어져야 한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혼자'가 된다면, 과연 이번 2박 3일 동안 보여줬던 해맑은 표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다른 일정 때문에 하루 먼저 서울로 출발해야 했던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숙소를 나왔다.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속으로 아이들에게 내 바람을 전했다.

'얘들아, 형은 잊어버려도 오늘 사귄 친구들은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6년 뒤 '더불어 졸업식'에서도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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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입학식 #나홀로 입학생 #농어촌 학교 # 학교 통폐합 #농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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