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수입 올리면 성공한 귀농인?... "현실 모르는 소리"

[귀농탐방]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에 자리잡은 귀농인 조성우씨

등록 2013.06.18 15:33수정 2013.06.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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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평의 밭에서 한 해에 20여가지 작물을 무거운 트랙터와 화학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경작한다. ⓒ 허갑열


경사진 비탈밭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능선을 휘감고 돌아오는 바람이 손 끝에 닿을 때 마다 정신이 맑아진다. 사람이 가장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고도 높이는 해발 700m. 굽이굽이 도는 길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더 올라간다. 계절의 경계선이 있다면 이쯤이 여름과 가을이 나눠지는 지점이 아닐까 싶을만큼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해발 850m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에 내가 반할 만한 귀농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나섰다.


14년 전, 삶의 수행에 목적을 두고 정착할 곳을 찾아 10년간 전국을 돌다가 이곳에 정착한 조성우(53) 농부. 구릿빛 피부에 단정하게 묶은 긴머리에서 선(善)남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 눈에 봐도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산나물 반찬에 고기와 생선까지... 차려진 밥상에서 좋은 기운이 입을 타고 내려와 온 몸에 스며들었다. 특히, 된장 맛을 뭐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성이 담긴 밥상을 차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보약같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귀농을 하기 전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면서 스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들어갔지만 전생에 업(業)이 많아서라는 말로 산을 내려왔다고 짤막하게 답을 한다. 그 당시 주지스님의 소개로 만나 3개월만에 결혼을 한 부인 이경애(49)씨는 남편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아주 많이 현실적인데 남편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되었어요."

결혼했다고 해서 상대방의 인생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부부는 내 삶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처럼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라고 했다. 그 때문일까 부부는 10년을 각자의 삶터에서 지내다가 4년 전 부인도 귀농을 했다.

원주의 고등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는 아들이 휴일에 잠시 쉬러 집으로 돌아왔다. 장래희망이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로 경찰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잘하고 있단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크다는 아들이 선택한 삶에 대해서도 부부는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는다. 아울러 아들의 인성형성은 자연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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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이 자라는 두둑에만 비닐을 쳤다. 고랑에 올라오는 풀과의 기(氣)싸움이 한창이다. 손쟁기로 풀을 매주고 있다. ⓒ 오창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좌절하고 희망을 만들다

처음에는 자연농법에 대한 기대를 하고 5천평의 밭에서 경운기와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단다. 그러나 농사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 컸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뛰어넘을 만큼 수확이 안되는 문제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 이후 자신과 땅에 맞는 실질적인 친환경농사법을 터득하여 지금까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사를 짓는다.

귀농후 10년간 농사를 통해서 벌어들이는 실질적인 수익은 크지 않았다. 초기에는 판로를 찾지 못해 도매시장에 가면 턱없는 경매가격에 좌절하기가 일쑤였다. 더구나 작고 못생기고 흠집이 있는 농산물이 제 값을 받을 리도 없었다.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자부심은 도매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현실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무를 600개 가지고 갔는데 백원이라는 거야. 상, 하차비 빼고 나면 4만5천 원이 손에 들어와 기가 막히는 거지. 첫 농사로 콩을 심었어요. 동네 주민들에게 배워가며 했는데 이래저래 첫 수확으로 열두 가마니를 털었지요. 농협에 가지고 갔더니 160만 원 값을 쳐주는 거야. 농자재값은 천만원을 썼는데 도저히 억울해서 팔 수가 없어서 다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방안에 쌓아둔 콩 가마니를 보고 있다가 된장을 담그기로 하고 이왕에 하는 것 몸에 좋은 된장을 만들기로 했단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신안의 염전을 찾아 가장 좋은 천일염 소금을 찾아내고 그것을 계기로 죽염까지 만들게 되기까지... 그의 노력과 열정은 삶의 수행을 목적으로 내려온 귀농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10년 뒤, 그의 죽염된장은 평창군 향토음식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을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된장 외에도 직접 농사를 지은 무농약 유기농산물과 오대산의 산야초로 효소, 식초 같은 발효음식도 만들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단골손님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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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결실을 맺는 사과나무.묵묵히 기다려준것에 대한 보답이다. ⓒ 허갑열


콩 심은데 콩 안나는 것이 농사

"농촌의 현실을 알고 귀농해야지 자신의 생각만을 믿지마라. 망상일 수 있다. 신중하게 선택하고 경제적인 부분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한다. 지속적인 농사를 통해서 기술과 경험이 쌓이면 귀농에 대한 삶을 터득하게 된다."

땅은 정직하다며 귀농하려면 생각도 많이 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농사라는 것은 콩 심은데 콩 안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밭작물만 하다가 최근 과수농사로도 조금씩 전환을 하고 있다. 작물의 특성상 포도와 토마토는 비닐하우스에서 하고 있다. 1천평의 사과농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5년만에 제대로 된 수확을 할 것 같다며 작년까지는 한두 개 달렸으나 믿음으로 묵묵히 기다렸단다. 기다림 끝에 만개한 사과를 보면서, 기다리는 것이 자연과 통하는 농사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탑동리에는 귀농1호인 조씨 외에도 전체 35가구 중에 귀농, 귀촌 세대가 절반 가까이 된다. 주로 은퇴 후에 전원의 삶을 찾아온 사람들이며 원주민들과는 농법이 다르기 때문에 농사로 교류할 일은 거의 없단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추천으로 이장을 지내기도 했고, 현재는 부인이 부녀회장을 맡아서 마을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저녁이면 주민들과 강릉으로 넘어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에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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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한 농산물 대부분은 발효식품으로 만든다. 이경애,조성우 부부 ⓒ 허갑열


방송국에서 성공한 귀농인으로 추천을 받았다며 취재요청이 오기도 했단다. 그들에게 '성공한 귀농인의 기준이 뭐냐'고 물었더니 '억대 연봉이면 된다'는 말에 '1억 수입에 9천만 원 농자재값 빼면 1천만 원 남는데 억대 연봉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했단다. 이후 제대로 된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그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10년 이상 버틴 귀농인을 찾는 거면 좋지만, 그런 것 아니면 오지말라고 했단다.

조씨 부부는 자연의 시간에 따라서 해가 뜨면 밭으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자유시간을 갖는다. 급하게 서두르거나 바쁘게 일하지 않으려고 조절을 한다. 귀농의 삶이 재밌다는 부부는 수입이 조금 더 받쳐주면 좋겠다며 농촌의 현실을 보면 귀농을 권장하기는 쉽지가 않다며 선한 웃음을 짓는다.
덧붙이는 글 성우농원(신선한 먹거리) http://cafe.daum.net/fresh400
#귀농 #평창 #된장 #자연농법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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