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비화, '은밀하게 찌질하게'

국정원 출신 간첩들의 생존일기

등록 2013.06.19 16:53수정 2013.06.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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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남파간첩에 관한 영화 포스터 ⓒ 쇼박스

20XX년 국가정보원의 업무가 산업스파이 위주로 재편되면서 공안 인력의 대규모 감원 계획이 발표됐다. 민간인들을 사찰하던 원달봉도 하루아침에 백수가 될 위기에 처했다.

"휴, 인제 뭐 해서 먹고 살지…."

고민하는 달봉에게 놀랍게도 헤드헌팅 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축하드립니다. 국내 최고의 사설탐정업체가 귀하를 채용하겠답니다."
"앗! 정말인가요? 제가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원달봉 님의 전문지식과 경험에 걸맞은 일을 하시게 될 겁니다."

시원하게 사표를 내고 새 직장으로 출근한 원달봉. 기대와는 달리 구멍가게 수준의 회사였다. 임대한 사무실 출입문에는 초라한 간판이 걸려 있다.

'큰형님 심부름센터'

"실례합니다~ 경력사원 달봉인데요~"
"어이, 신참 왔노?"


사장인지 건달인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나타나 손에 메모지를 쥐어줬다.

"원달봉! 여기 가서 돈 좀 받아 온나. 빈손으로 오면 알재?"

사장이 손목 관절을 우두둑 꺾었다. 달봉은 첫 번째 임무인 '빌려준 돈 받아드립니다'를 천신만고 끝에 완수했지만 채무자에게 얻어 터져 눈자위가 탱탱 부었다. 사장은 달봉의 어깨를 두드리고 손에 카메라를 쥐어줬다.

"욕봤다. 그럼 이제 모텔 앞에서 사진 좀 찍어 온나."
"에이씨…"
"와, 꼽나?"
"아닙니다."

달봉이 굴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심리정보국 요원 이동팔도 실직의 아픔을 곱씹는 중이었다. 하지만 유능한 심리전 전문가인 그를 헤드헌터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이동팔씨! 국내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인 '쥐마켓'에서 귀하를 채용하겠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어떤 일이죠?"
"온라인 마케팅입니다."
"아, 그쪽은 제가 문외한인데…"
"해보시면 압니다."

동팔은 다음날 새 양복을 차려입고 쥐마켓 본사로 출근했다. 마케팅 팀장이 그에게 보직을 부여했다.

"이동팔 씨? 시간제 아르바이트인 거 알죠?"
"시, 시간제? 장난하나! 내가 어디서 온 줄 알아요?"
"알죠. 국정원에서 댓글 달았잖아요? 댓글 요원 아니에요?"
"댓글, 댓글 하지 마! 대북 심리전이야!"
"뭐 어쨌든. 내일부터 댓글 달아요."

동팔의 업무는 소비자를 가장하여 상품 추천 댓글을 올리는 일이었다.

[할인이벤트] 청계천 심층수 '에리카' 30% 할인판매!
Re : 적극 추천합니다. 아버님이 당뇨신데 하루에 1리터씩 드시고 새장가드셨어요. (동팔)
Re : 사지 마세요. 알고 보니 수돗물이네 (피해자)

심부름센터 직원과 쇼핑몰 댓글 알바로 고단하게 살게 된 두 사람은 오랜만에 포장마차에서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한참 신세한탄을 하던 중 달봉이 비장한 얼굴로 외쳤다.

"동팔아! 나 이대론 못 살겠다!"
"못 살면 어쩌게? 죽기라도 하게?"
"조국이 우릴 버렸으니 나도 조국을 배신하련다!"
"뭐야! 설마 달봉이 너…."

한때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원이었던 두 사람은 북한의 고정간첩을 찾아갔다. 북한의 대남공작원이 되어 생활고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고정간첩은 달봉과 동팔을 뜨겁게 껴안았다.

"잘 생각했소! 미제와 괴뢰정부가 배반한 동무들을 우리 공화국은 영웅으로 대접할 것이오!"

한 달 뒤 달봉과 동팔은 고정간첩의 호출을 받았다.

"축하 하오 동무들! 김정은 동지께서 동무들의 경력을 존중하여 아주 적절한 임무를 맡겨주시었소!"

달봉과 동팔은 고정간첩이 주는 붉은 카드를 허겁지겁 펼쳐보았다. 카드에는 그들의 새로운 임무가 적혀 있었다.

원달봉 : 심부름센터 직원
리동팔 : 쇼핑몰 댓글 알바

달봉과 동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왜 우리가 다시 이 걸 해야 하는 거죠?"

고정간첩은 정색하고 명령을 하달했다.

"동무들 임무는 외화벌이요. 월급 받으면 달러로 바꿔 송금하라우!"
"헉….
#국정원 #댓글 #댓글사건 #은밀하게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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