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선 최고의 풍경, 물빛 담은 영벽정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37] 유서 깊은 고장, 능주 2

등록 2013.06.25 16:34수정 2013.06.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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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천과 연주산, 철길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영벽정 ⓒ 김종길


죽수서원에서 영벽정을 향해 지석천 제방을 따라 걸었다. 강 건너 멀리 이양으로 가는 철길이 산기슭을 돌아가고 그 아래 절벽 끝으로 삼충각이 보인다. 이따금 다슬기를 줍고 천렵을 하는 이들이 소박한 천변 풍경을 만들어낸다.

아카시아향이 코를 자극한다. 햇살이 금세 얼굴을 태울 기세로 작열한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다 손수건을 꺼내 차양을 만든다. 잠시 빛만 가려낼 뿐 이도 소용없다. 몇 번 손수건을 펼치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을 위안 삼아 미련하게 걸었다.


풀숲 아래에 몸뚱어리를 감춘 채 졸졸 흐르던 냇물이 서서히 물줄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벽정이 가까워지자 물길은 호수처럼 넓어졌다.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열을 지어 푸른 강에 머리를 감는 양 저마다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는 200년을 훌쩍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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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수서원에서 지석천을 따라 영벽정 가는 길 ⓒ 김종길


능주팔경, 물빛 담은 영벽정

영벽정을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양팽손과 김종직이 쓴 시 등으로 보아 16세기 후반에 관아에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1632년(인조 10)에 능주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고쳐지은 것으로 전한다. 1872년(고종 9)에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이듬해인 1873년(고종 10)에 목사 한치조가 중건했다. 이후에도 보수를 거듭해오다가 1920년에 주민들이 모은 비용으로 손질하여 고쳐 지었다고 한다. 1982년과 1983년에도 두 차례 보수했으며 1988년 해체·복원했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대개의 정자가 단층인 데 비해 2층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아 처음 지어질 때 관에서 지어져 보수를 거듭하면서도 그 형태를 2층으로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기둥은 원래 목조였는데 1988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석조 두리기둥으로 대체했다. 기둥 위에 마루를 깐 중층의 누각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는 눈 맛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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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벽정과 지석천을 가로지르는 경전선 철길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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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겹으로 처리한 지붕 처마와 영벽정 현판 ⓒ 김종길


이 정자의 특이한 점은 지붕 처마를 3겹으로 처리한 점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정자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큰 영벽정을 더욱 화려하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한다. 기둥머리의 익공형식 공포도 그렇거니와 마루의 둘레를 계자난간으로 장식한 점, 처마 밑에 활주를 세운 것도 그러하다. 또한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등천장에 가운데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한 점도 특이하다. 정자 안에는 9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에 오르면 지석천과 연주산이 기둥 사이로 들어오고 병풍 두르듯 빼곡히 걸린 현판들에는 옛 사람들의 글귀가 걸려 있다. 시원한 물줄기에서 불어오는 푸른 산바람에 풍류가 절로 인다.

지석천 상류에 자리 잡은 영벽정은 연주산을 마주보고 있다. 일찍이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풍류의 산실로 '능주팔경'으로 꼽혀 왔다. '영벽'이라는 이름은 정자의 맞은편에 있는 연주산의 자태가 지석천의 맑은 물빛에 비춰지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산이 비친 강을 담은 영벽정의 운치는 계절이 바뀜에 따라 아름다움도 달라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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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팔경의 하나로 꼽혀 온 영벽정 ⓒ 김종길


여기가 경전선 최고의 풍경!

영벽정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건 기차가 지나면서다. 경전선 철길이 지석강을 가로질러 영벽정 바로 옆을 지나면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낭만적인 강변 풍경이 빚어졌다. 영벽정 바로 곁을 지나는 기차는 지석천을 건너 화순으로 간다. 능주의 너른 들판을 달리다 지석천에서 잠시 머뭇거린 기차는 90도에 가까운 곡선 구간으로 강을 건너게 된다.

요즈음이라면 직선으로 곧장 뻗은 철길을 만들겠지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강 양쪽의 언덕으로 최대한 붙여 가장 짧은 거리의 철길을 내다보니 크게 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곡선 철로로 인해 오히려 이곳은 멋진 풍경을 연출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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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영벽정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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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영벽정 ⓒ 김종길


하루에 여덟 번 지나는 여객열차와 간혹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화물열차가 이 곡선구간 풍경의 주연배우다. 베테랑 연기자인 영벽정과 철로는 오히려 무덤덤한 편이여서 새로이 주연으로 발탁된 기차만 분주해진다.

그럼에도 기차와 어우러진 영벽정의 멋들어진 풍경을 함께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아침 7시 26분경 능주에서 두 기차가 만나는 일이 더러 있으니 운이라도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두 기차가 시간차를 두고 곡선을 돌아 강을 건너는 진풍경이 펼쳐지니 언제 한번 다시 들러야 할 풍경임에는 틀림없겠다. 여길 두고 경전선 최고의 풍경이라고 한들 지나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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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천과 연주산, 철길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영벽정 ⓒ 김종길


너무나 예쁜 능주역의 유일한 여행자이자 마지막 승객이 되다

영벽정에서 다시 능주 소재지로 향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능주에서 하룻밤을 묵어야겠지만 생각보다 일찍 여정이 끝나 화순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화순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는 오후 7시 7분에 있었다.

능주역에 다다르자 오랜 간판을 단 역전 슈퍼가 보인다. 기차역에 사람이 붐볐을 때만 해도 이 가게에는 제법 많은 손님들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역 앞 광장은 꽤나 넓었다. 광주와 화순 일대를 오가는 버스가 이곳을 거쳐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모양인지 공터에는 버스 두어 대가 정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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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역 풍경 ⓒ 김종길


넓은 광장 끝에 홀로 오도카니 서 있는 능주역은 주변과는 조금은 어색한 듯 무슨 놀이공원의 건물처럼 홀로 '뻘쭘하게' 서 있었다. 역은 아담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역사엔 손님이라곤 없었다. 역무원도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대합실에는 다 늦은 오후 여행자의 긴 그림자만 벽에 얼른거렸다.

화순역과 이양역 사이에 있는 능주역은 1930년 12월 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945년 10월 5일 역사가 소실되자 1957년 1월 10일에 지금의 역사를 준공했다. 이 아담하고 예쁜 역 건물이 지어진 지가 50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무궁화호가 하루 8회 왕복하고 있다. 작은 겉보기와는 달리 능주역은 지금은 폐역이 된 만수역, 석정리역까지 관리하고 있는 엄연한 보통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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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월에 준공한 너무나 예쁜 능주역 ⓒ 김종길


대합실은 너무나 깔끔했다. 시골의 간이역들이 대개 사람의 온기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하고 버려진 듯한 황량함마저 감도는 데 비해 이곳은 대합실 안이 갖은 화초로 꾸며져 있었다. 정성스레 가꾼 화분들과 한쪽에 전시된 수석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액자들에서 사람의 손길이 하나하나 미쳤음을 엿볼 수 있었다.

역사 밖으로 나와 철로에 들어서면 이 역을 가꾸느라 얼마나 역무원들이 애썼는지 알 수 있다. 대합실에서 승강장으로 가는 길 좌우에 온갖 꽃을 심은 화분들이 양옆으로 전시돼 있다. 안에서 보이지 않던 역무원이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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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화초로 꾸며진 능주역 대합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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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무원들이 갖은 화초로 꾸민 능주역 ⓒ 김종길


작은 대합실과는 달리 승강장은 꽤나 넓다. 능주역이 역무원이 없는 작은 간이역과는 달리 인근의 역까지 관리하는 보통역임을 알 수 있다. 역장을 포함해서 3교대로 근무하는 직원들을 포함해서 모두 네 명이 근무한다. 작은 규모의 역만 보고 간이역으로 오해할 뻔했다. 허기야 간이역이면 어떻고 보통역이면 어떠한가. 그저 추억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인 것을.

역무원이 다가왔다. 이 역을 찾은 유일한 여행자이자 마지막 승객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시골역을 찾은 여행자의 행색이 자못 궁금했는지, 요리조리 캐물었다.

해가 뉘엿뉘엿 역사 너머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역무원들은 좋은 여행이 되라며 역사 안으로 들어갔고 여행자 홀로 승강장에 남았다. 7시 7분, 어스름이 내릴 즈음 화순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가 들어왔다. 너무나 예쁜 능주역. 난 이 작은 시골역의 유일한 여행자이자 마지막 승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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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7분, 화순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가 능주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 김종길


덧붙이는 글 * 2013년 5월 17~18일 화순여행에서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는 실렸고 코레일에는 실릴 예정입니다.
#영벽정 #능주역 #경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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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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