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법안, 시각장애인은 '불안'하다

[주장] 시각장애인계, 한의약법 제정 관련 비판 여론 높다

등록 2013.06.29 15:28수정 2013.06.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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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 사이에 시각장애인계는 발칵 뒤집혔다. 지난 3월 20일 새누리당의 김정록 의원이 발의한 '한의약법' 제정(안) 소식 때문이었다. 더욱이 시각장애인들은 김정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대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을 대표하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민주당 최동익 의원이 찬성 서명한 것을 두고 비판 및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김정록 의원은 "최근 인구고령화로 인하여 만성퇴행성·뇌혈관계질환 및 근골격계질환 환자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치료방법으로 한방의료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당시 한방의료행위의 독자성을 인정해 지금까지 한방과 양방의 이원적 면허체계로 유지해오고 있지만, 획일적인 관리체계로 인해 한방과 양방 각각의 고유한 특성 발휘와 수준 높은 의료의 제공에는 미흡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의약의 특수성을 고려한 독립적인 법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한의약법 발의 배경을 밝혔다.

이 한의약법안은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 상정안에 오르지 못한 상황이며 국회는 정기국회 때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한의약법, 무엇이 문제?

이런 한의약법에 대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새롭게 발의된 한의약법에 그동안 의료법에서 다루고 있던 '안마사제도'를 한의약법으로 이관하면서 새롭게 조항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발의된 한의약법 제24조 3항의 ③은 "누구든지 한의사의 면허가 없는 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할 목적으로 강습 또는 교습행위를 하거나 의료행위에 관한 자격을 신설·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 규정대로 법안이 만들어질 경우 현재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에 포함돼 있는 한방 과목이 교육과정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이료교육학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편찬한 '안마·마사지·지압' 교과서에는 안마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풀어놨다.


"원래 안마는 침구와 함께 동양의학의 한 분과로서 경락·경혈설을 근거로 해 발전해 왔다. 안마의 '안'은 누른다는 의미로 '사법'이 되고, '마'는 쓰다듬는다는 의미로 '보법'이 된다. 따라서 안마는 허증에 대해서는 보법을, 실증에 대해서는 사법을 행하는 보사시술법이다."

즉 안마는 기본적으로 한의학 치료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마 교육에서는 한의학 관련 과목이 필수다. 이런 안마 시술을 위해 안마사 교육과정에서는 해부학·생리학·병리학등의 기초의료 과목과 함께 보건 안마론·전기 치료론·한방론·침구론·이료임상론·진단학·실기·실습 등의 한의학과 관련된 과목도 함께 이수해야 한다. 특히 특수교육 과정에는 안마 외에도 침구와 관련된 이론적 수업과 실기를 함께 가르치도록 돼 있다.

김정록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최동익 의원이 서명한 한의약법에서 '한의사가 아니면 한의학과 관련된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시각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불안함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은 특히 최동익 의원에게 불만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이유는 최동익 의원 본인이 시각장애인으로 현재 시각장애인의 대표 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누리집인 '넓은마을'과 시각장애인이 많이 이용하는 전화음성사서함서비스등에는 최 의원에 대한 강한 불만과 반대 의견들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일부 회원들은 "안마업을 팔아먹었다"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 시각장애인 밥 줄을 끊었다" 등의 격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그러자 최의원은 지난 19일 '한의약법안과 관련 최동익 의원실 입장'이라는 공지를 시각장애인 누리집에 게재했다. 최 의원은 "신설된 관련조항은 구당 김남수 옹이 불법 침뜸을 전수하는 행위(뜸사랑)를 막고자 하는 한의계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며 안마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변호사 검토 결과를 참조해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맹학교 등의 안마 등의 교육이 불가해진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라도 한의약법안으로 인해 시각장애인 안마업에 피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심의과정에서 수정·보완하여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이라며 진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최동익 의원의 입장 표명에도 시각장애인들은 더욱 이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 22일에는 대한안마사협회와 더불어 시각장애인의 대표적 이료시술 단체인 대한맹인침사협회(이하 침사협회)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섰다. 침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와 같은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최동익 의원이 이와 같은 한의약법안에 서명, 동참했다고 하니 개탄에 개탄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최 의원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또 침사협회는 "침 시술이 한방 의료행위에 속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비춰볼 때 한의사 면허가 없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대한 침술 교육이 폐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수정안을 적극 제시해 줄 것을 강력히 요망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이 같은 결과가 없이 이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상임위에서 논의될 시에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최 의원을 압박했다.

이렇게 되자 최 의원은 24일 같은 누리집 게시판을 통해 '한의약법과 관련한 회원들에게 드리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최 의원은 "회원들의 입장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또한 향후 한의약법안과 관련해 제24조 3항과 안마업에 관련된 부분(제59조) 삭제에 대해 안마사협회와 침사협회의 뜻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의약법안과 관련된 대한안마사협회의 정리된 의견을 요구하며 의견이 없을 시에는 법안의 철회를 추진하겠다"고 공을 대한안마사협회로 떠넘겼다.

그러나 이러한 사과문을 접한 시각장애인들은 '사과문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최 의원은 사과문에서 이 법에 서명한 것을 두고 "보좌진들의 보고만 듣고 법안 발의에 서명을 해준 실수를 한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국회에서의 법안 발의는 대표 발의 의원외 9명의 서명만으로 이뤄지고 있어, 대개의 의원들은 심도 깊은 내용 검토보다는 취지에 동의하면 법안 상정에 서명을 해 주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대법 판례에도 반하고, 국민 기본권 박탈하는 조항 있어

이번에 발의된 한의약법안 중 문제가 되고 있는 24조3항 ③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만 반대하는 게 아니다. 이는 현재 구당 김남수 선생이 행하고 있는 뜸사랑회등의 침·뜸 교육을 반대하는 한의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조항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뜸사랑회의 한 관계자는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이라며 "또한 침과 뜸은 우리 겨레가 수천 년 이어온 의술이다, 만약 이런 침과 뜸에 대한 교육을 못하게 하면 사고 발생 위험이 더 커지고 국민의료비가 증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도 침·뜸 교육은 국민의 기본권이란 입장이다. 구당 김남수 선생이  온라인 침뜸 교육 신고를 반려한 서울시 동부교육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2011년 7월 "평생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침·뜸 교육을 규제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침사협회도 성명을 통해 "한의사들의 직업 집단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일반 국민들의 교육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조항에 법리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동익 의원, 안마사 보호 법률에 힘써야

이번 한의약법 발의를 두고 벌어진 문제는 단순히 침·뜸 교육을 허용하느냐 금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동·서양 의학을 모두 인정하는 동·서 의학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의약법의 제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법안 제정에서 어느 특정 이익 집단만을 위해서 법이 만들어진다는 의혹이 생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안마사 문제·대체의학 허용 여부·침구사 제도의 부활 등 한의학과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은 거의 유일한 직업인 안마를 배우기 위해 특수교육 과정에 정식으로 포함된 침·뜸 교육을 이수하고도 침 시술을 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행정부인 보건복지부가 3호침(두께 0.2mm) 이하의 침시술은 안마사의 업무범위에 포함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음에도 그동안 사법부에서는 침·뜸 시술을 한의사의 고유 업무로 판단해 수많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벌금형이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모처럼 한의학과 관련된 새로운 법의 제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시각장애인의 대표인 최동익 의원은 단면적인 법안 접근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한의학과 안마사 문제를 다뤄주길 바란다. 보좌진의 보고만으로 서명했다는 식의 안일한 의정활동은 곤란하다. 한의학은 5000년 동안 우리 겨레의 건강을 지켜온 의술이다. 한의약법이 우리 겨레의 민족의학인 한의학을 발전시키면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돼야 할 것이다.
#한의약법 #시각장애인 #안마사 #최동익 국회의원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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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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