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살고 싶다고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서울처녀 제주착륙기 21] '이민자' 정착 위한 집 공사 이야기

등록 2013.07.05 16:47수정 2013.07.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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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기간 목수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옆에서 자재를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 조남희


육지 사람들의 '제주 이민' 연착륙을 돕기 위해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농가주택을 임대했다.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오지 말라"고 했지만 여러 사람이 살 만한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공사를 해야 했다. 식당으로 쓰이던 집이라 마땅한 방이 없었다. 개인공간을 만들기 위해 벽을 만들고, 문을 달고, 가구를 짜 넣기로 했다.


집을 번듯하게 꾸밀 자본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사람이 몸으로 때우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목수는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었다. 때문에 목수 인건비가 가장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작년에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알게 된, 직업이 목수였던 언니가 마침 제주도에 놀러온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제주도 놀러 오시는구나. 언니 근데 혹시 벽 만들 줄 알아요?" 
"만들 줄은 아는데…. 왜? 무슨 일 있어?"

불안해하는 목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취지를 설명하고 집을 수리할 예정이니 2, 3일만 공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정도면 대강 공사가 끝날 줄 알았을 정도로 나는 이쪽 방면에 아는 게 없었다.

무선드릴, 원형톱, 직소기, 타카, 컴프레셔 등 내가 살아오면서 거의 듣거나 본 적이 없는 공구들을 구하기 위해 곳곳을 수소문했다. 서울의 지인들이 휴가를 내고, '손에 손에' 공구를 든 채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의 지인들도 원래 잘 빌려주지 않는 법이라는 공구를 기꺼이 빌려줬다. 또 본인은 쓰지 않지만 우리 집에는 요긴한 물품들을 바리바리 싸주기도 했다.  

보름 넘게 걸린 공사... 전우애로 뭉치다


철물점을 가기 위해 달려가는 도중 만난 모슬포 바다 ⓒ 조남희


공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 차로 삼십분을 달려 모슬포의 철물점까지 나가야했다. 중간에 모슬포 바닷가에 슬쩍 들러, 공사를 도와주러 온 서울 친구들을 바닷가에 풀어놨다.

"집 앞에 다들 이런 바다 하나씩 없나?" 
"우리 집 앞에 철물점은 있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뒤꼭지'에 대고 제주바다가 내 것인양 자랑을 했다. 그런 내게 돌아오는 건 '집 앞에 철물점도 없냐'는 원망 섞인 목소리였다.

공사는 결국 보름이 넘게 걸려 끝이 났다. 지난해 처음 만나 이제 두 번째 보는 사이인데도 목수 언니는 인건비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주머니를 털어 부족한 자재를 사 벽을 세우고, 문을 달고, 책장·테이블·서랍장 등을 만들어주고 떠났다. 언니는 공사 내내 '능력자'로 인정받았고, '슈퍼 갑'으로 모셔졌다. 여행 왔다가 나한테 잘못 걸려 꼬박 보름을 일만 하고 간 그녀는 "이제 제주도는 십년 후에나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서로 잘 모르는 사이들이라 처음에는 서먹해했지만 공사를 하면서 목수와 지인들은 전우애로 똘똘 뭉쳤다. "사장님 나빠요 여권 돌려주세요"를 외치며 밤마다 서로의 아픈 몸을 밟아주는 사이가 됐다.

저지리까지는 배달을 못해주겠다는 건재상 때문에 승용차에 단열재 스티로폼, 장판, 벽지 등을 싣고 달려야 했다. ⓒ 조남희


같이 살 동료가 왔다

공사 기간 중 집으로 아가씨들이 찾아왔다. "제주도에서 한 번 같이 살아 보실랍니까?"라는 나의 제안에 찾아온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중반의 여자들이었다. 나를 감성적이고 친절할 거라 생각하고 왔을 텐데···. 더위에 '육수'가 줄줄 흐르고 '몸빼 바지'를 입고 서 있는 아저씨같이 털털한 모습에 그녀들이 흠칫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언제 와서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에요? 제주도에서 뭐하고 싶어요? 할 줄 아는 건 뭐에요? 혹시 공구 잘 다뤄요? 이 집은 화장실도 밖에 있고 버스도 별로 없는데. 괜찮겠어요?"

쏟아지는 질문들에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답했다. 제주도가 그저 좋아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들을 앞에 놓고 나는 일장 연설을 했다. 익명성이 거의 없는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때로는 불편하다는 것, 일자리가 많지 않고 대도시에 비해 급여 수준도 좋지 않다는 점, 여자 혼자 내려왔다고 하면 괜히 한 번 '들이대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 생활의 불편함,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들의 대답은 이랬다.

"아…. 그래요?"

말하는 이만 허무할 뿐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야, 말로는 알 수 없는 일들이니 말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다고 말해도 그녀들의 제주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 또한 1년 전 이 아가씨들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별 대책 없이 육지에서 내려왔던 사람이지 않나.

결국 29살 먹은 만화 그리는 아가씨와 7년 다닌 좋은 직장을 접고 제주도에서 목공일을 배우며 지내겠다는 33살 먹은 아가씨에게 "그럼 우리 한번 살아봅시다"며 손을 내밀었다. '좌충우돌, 고군분투 제주 착륙은 이제부터 시작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제 나도, 그들도 혼자가 아닐 것이다.
#제주도 #저지리 #제주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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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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