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점심 먹는 것도 여기선 행복이구나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실패기②] 떨리는 첫 출근, 다리는 퉁퉁 붓고...

등록 2013.07.06 11:32수정 2013.08.0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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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전문잡지에서 일했던 나. 지난해 가을 한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그리고 올해 봄 한 대기업의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이 글은 잠입취재기가 아니다. 한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기일 뿐이다. 또한 두 곳 모두 스스로 그만뒀기에 취업 실패기이기도 하다. 글에 나오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백화점의 아침은 분주했다. 개점 2시간여 전부터 사람들이 줄줄이 직원 통로로 들어섰다.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근무 태세를 갖췄다. 누구는 개인사물함이 있는 지하에까지 내려 가야 했다. 나는 매장 안 창고에서 바로 유니폼을 입는, 아침이 여유로운 '행운아 그룹'에 속해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우리 매장은 유니폼 입기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세콤을 해지하는 일. 창고에 수억 원대의 물건이 보관돼 있어서 그런지 보안업체에 경비를 맡기고 있었다. 면접 때 점장이 '둘째'라고 부른 혜수 언니가 매장에 들어서 센서를 바로 끄지 않으면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층 전체를 들썩이게 한다고 일러준다. 세콤이 지켜주는, 내 월급보다 비싼 핸드백을 보고 있자니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조화되지 아니하는 어설픈 느낌'이라는 위화감에 휩싸인다.

그렇게 첫출근에 어색해하는 내게 혜수 언니는 유니폼이라면서 검정 재킷과 검정 티셔츠를 건넨다. 바지와 구두는 면접 때 일러준 대로 검은색을 챙겨왔다. 유명 SAP(제조·유통 일괄화 의류) 매장이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강매한다는 기사를 보고선 여기도 그러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당연한 게 '다행'이 된 세상은 누가 만든 걸까. 아침부터 사색에 잠긴 나와 달리 혜수 언니는 급하게 옷을 갑아 입고선 전화 수화기부터 든다.

택배 하나에도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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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제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가슴이 쿵쾅쿵쾅해. 고객 컴플레인이 무서우니까…." ⓒ 김지현

"기사님, 그저께 보낸 옷이 아직 고객님 댁에 도착을 안 했대요. 오늘 오후에 외출할 때 입으셔야 한다는데 오전 중에는 도착하는 거죠?"

택배회사와의 통화인가 보다. "꼭 오전 중에 보내주셔야 해요"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은 언니가 다시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OOO 고객님이시죠? 어제저녁에 전화 주셨던 배송 건, 택배회사에 확인해 보니 물류가 밀려서 못 나갔다고 하네요. 오늘 오전 중에는 꼭 보내달라고 했으니 저녁 모임에 지장은 없으실 겁니다."

한참 만에야 전화를 끊는 혜수 언니의 붉혀진 얼굴빛이 서서히 제 색을 찾아간다.

"우리는 택배도 많이 보내거든. 택배가 제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가슴이 쿵쾅쿵쾅해. 고객 컴플레인이 무서우니까…."

언니의 설명만으로도 서비스일이 만만치 않음이 팍팍 다가온다.

본격적인 업무는 청소로 시작됐다. 아, 그 전에 할 일이 또 있었다. 바로 진열물품 숫자 맞추기. 전날 퇴근할 때 적어놓은 각 진열대 상품들의 개수가 맞는지 일일이 세야 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진 않았지만 도난 방지 때문인가 보다 했다. 매장에 상품을 많이 꺼내놓지 않는 명품의 판매 전략에 감사해 하면서 열심히 숫자를 셌다. 진열 개수를 맞추고 매장 곳곳을 쓸고 닦으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혜수 언니가 나를 매장 안에 놓인 소파로 잡아끈다.

"우리는 일하면서 계속 서 있어야 하니까 틈만 나면 앉아야 돼. 여기 앉아. 이 일이 다른 것보다 서 있는 게 힘들어. 특히 처음 두 주는 다리가 진짜 아플 거야. 나도 눈물 날 정도로 아팠으니까. 오늘 집에 가면 무조건 찬물 받아서 족욕을 해. 잠잘 때는 다리를 베개에 올려놓고 자고…."

'틈나는 대로 앉기', 혜수 언니가 내게 알려준 첫 번째 업무지침이다. 소파에 앉아 언니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기도 전에 야속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체조시간이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목소리 굵은 아저씨의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춰 국민체조를 했던 기억이 났다. 밝은 음악과 함께 고운 목소리의 여성이 순서를 일러주는 백화점에서의 체조는 국민체조보다는 가볍고 짧았다. 이걸로 스트레칭 효과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서비스 지침 숙지로 하루 시작

체조가 끝나자 바로 스피커에서 "직원 여러분, 오늘 하루도~"로 시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내 음성에 맞춰 다 같이 서비스 실천과제와 4대 구호를 외친다. 서비스 실천과제는 매주 달랐다. '매장 내부를 청결하게 하기' '고객이 매장에서 쇼핑하기 편하도록 50cm 이상 떨어져서 응대하기' 등 백화점이 그달, 그 주에 집중하는 서비스지침을 직원들이 숙지하도록 했다.

그에 따라 담당 직원이 불시에 매장에 들어와 서랍에 음식물이 있는지, 피팅룸이 깨끗한지 등을 점검했다. 중·고등학교 때 선도부가 소지품 검사를 할 때면 잘못을 안 했어도 괜히 위축되고 가방과 책상 속에서 물건들이 끄집어질 때면 발가벗겨지는 듯한 불쾌감에 휩싸였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다니 약간 서글펐다.

4대 구호도 모니터의 대상이었다. 고객이 올 때마다 맞이 인사,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천천히 둘러보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에 추가 멘트,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배웅 인사,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등의 4대 구호를 빼먹지 말라고 조회시간마다 강조했다. 어느 고객이 모니터 요원인 줄 모르니 늘 긴장할 수밖에.

모든 직원이 정자세로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개점 인사가 끝나자 혜수 언니가 내게 고객상담실로 면접을 가라고 한다. 형식적이나마 백화점 측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면접을 본다고 했다. 순간 '쫄았다'. 혹시 떨어지는 거 아냐. 이 달의 서비스 실천과제와 4대 구호를 알고 있는지를 물을 테니 긴장하지 말라는 언니의 말을 믿으면서 고객상담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상담실 팻말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바닥을 청소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고객님, 어딜 찾으십니까?"
"고객상담실을 가려고 하는데요."
"네, 고객상담실은 이쪽 왼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너무도 친절하다. 백화점은 청소원까지도 서비스교육을 받나 보다. '상량'과 담 쌓고 살아온 내가 과연 저처럼 친절하게 '고객님'이라고 잘 부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건 나중 문제, 우선 나는 백화점 면접이란 산을 넘어야 했다. 손에 쥔 종이에 적힌 4대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우면서 고객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면접은 싱겁게 끝났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었다. 옆 직원은 "원래 매장 직원 면접을 우리가 보나?" 의아해하면서 서비스 실천과제랑 4대 구호를 외우라고만 이른다. 괜히 긴장했네, 헛웃음이 나면서 백화점 내 정직원보다 훨씬 많은 비정규직들이 이렇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살겠구나 싶었다.

휴식시간도 들쑥날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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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점심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사진 내 백화점은 기사 내 언급된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밝힌다). ⓒ 김지현


다시 매장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일과 중에는 두 번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하나는 점심시간. 정오부터 매장 직원들끼리 한 시간씩 점심을 먹고 왔다. 우리 매장이야 거의 둘이서 있으니 혜수 언니가 정오, 내가 낮 1시에 가면 됐지만 직원 수가 많은 곳은 2시가 넘어서 밥을 먹으러 가는 직원들도 많았다.

우리도 제 시간에 밥 먹기가 쉽지는 않았다.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또 둘 중 한 명이 쉬는 날 매장 점장인 매니저와 일을 할 때면 점심시간은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공사가 다망한 매니저가 출근하는 시간이 점심시간이 되곤 했는데 낮 1시는 기본, 지하식당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3시가 다 돼 출근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전에는 몰랐다. 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백화점 생활 며칠 만에 그 스트레스가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위장을 병들게 하겠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도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수천 명이 일하는 건물에 직원용 엘리베이터는 두 대뿐이었다. 점심시간에 사람이 몰리니 지하식당까지 가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급하게 밥을 먹고 다시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휴게실에서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빠듯했다. 오전 내내 서 있어서 퉁퉁 부은 다리가 쉴 짬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휴게실엔 빵 등으로 점심을 때우고 남는 시간을 잠으로 대신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휴게실 문에는 '눕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지만 그 경고를 따르기에 우리 몸은 너무 무거웠다.

오후에 휴게실에서 좀 오래 앉아있을 시간이 주어지긴 했다. 오후 5시 넘어서 30분씩 돌아가면서 쉴 수 있었다. 물론 그 시간도 온전히 쉬기는 만만치 않았다. 손님이 몰리는 날에는 매장 안 창고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는 게 전부였다. 딱딱한 소파라도 휴게실에서 쉬어야 그나마 쉬는 것 같았지만 그러려면 부단히 애를 써야 했다.

백화점의 겉과 속, 그 큰 차이

휴게실 얘기가 나왔으니 집기 문제 좀 짚고 가자. 처음 직원 휴게실에 들어갈 때의 느낌은 '휑하다'였다. 소파 몇 개와 작은 탁자, 철 지난 잡지 몇 권이 꽂혀 있는 책장 두 개가 좁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 층 휴게실이 그나마 넓은 편이라고 했다. 소파들은 혹시 백화점 개점 때 들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솜이 푹 꺼져 있었다. '눕지 말라'는 안내는 누우면 등이 배기고 허리가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었을까.

백화점 경영진은 아침마다 '서비스' '서비스'를 외칠 게 아니라 직원들 몸 편하게 할 방법을 찾길 권한다. 서비스는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은 몸이 편할 때 동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직원 휴게실에 발 마사지기와 안마의자 정도는 들여놔달라고 백화점 사장에게 건의하고 싶었다. 그 전에 직원들 공간을 넓히는 것부터. 물론 정직원도 아닌 일개 임대매장 직원의 말이 높은 사장실까지 전달될 통로는 없어 보였다.

첫날 휴게실의 존재가 유난히 크게 다가왔던 것은 폐점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묵직해 오는 다리 때문이었다. 오후 5시께 혜수 언니가 빵과 커피를 챙겨주며 휴게실에 가서 쉬고 오라고 했다.

"다리 아프지? 내가 그 마음 알지."

언니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백화점의 번듯한 겉모양에 감쳐진 초라한 속 모습을 보고 씁쓸해 하던 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뻣뻣해진 다리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공감은 삐딱이도 일하게 한다'도 덧붙여야겠다. 날 걱정해주는 혜수 언니가 있어서 출근하는 내내 아침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 다음 회에 계속)
#감정노동 #백화점 #판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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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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